[언더커버] 남북정상회담 성사 앞과뒤1-한반도 빅뱅 서막 올랐다
북미 간 교섭자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무모한 도전을 성공으로 마칠 수 있을까.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지난 3월 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 윤건영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 우리 측 대북특사 대표단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마주했다. 노동당사로 대표단을 초청한 김 위원장은 여동생 김여정과 부인 리설주까지 배석시키며 파격적으로 이들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받아든 김정은 위원장은 오는 4월 말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며 적극 화답했다. 대표단은 ▲4월말 판문점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남북정상 핫라인 설치 및 통화 ▲군사적 위협 해소 및 체제안전 보장 조건 하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 ▲북측,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 위한 미국과의 대화 용의 표명 ▲북측, 대화 지속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도발 재개는 물론 남측에 대한 재래식 무기 사용 없을 것 ▲북측, 남측의 태권도 시범단 및 예술단 초청 등 6개의 합의 사안을 들고 서울로 돌아왔다.
평양에서 김정은의 친서를 들고 돌아온 대표단의 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은 곧바로 8일 워싱턴으로 향했다. 김정은의 친서에는 앞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더불어 5월 중 북미 정상회담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을 갖고 이 친서를 전달했고,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정의용 실장의 브리핑은 물론 미국 백악관 대변인실 브리핑에서도 공통적으로 언급됐다.
문 대통령은 이전 민주 정권 정상들의 남북관계 구축을 넘어 판을 키우는 모양새다.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남북 채널을 넘어 북미 채널 구축에 교섭자로서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이미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을 때부터 문 대통령을 ‘네고시에이터(교섭자)’라 칭하며 이 같은 액션을 어느 정도 예상해 왔다. 통미(通美)를 원하는 북한과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리스크를 관리하고자 하는 미국 사이에서 문 대통령은 대단히 어려운 도전에 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단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특사 대표단의 결과물에 대해 ‘기대 이상’이란 반응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대표단의 합의 사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일단 평화의 열차에 북한의 지도부를 탑승 시켰다”라며 “물론 북한이 중간에 내릴 수도 있지만 북한을 열차에 태워 출발했다는 것 자체는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기자와 통화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특히 판문점 남측 장소인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된 것을 두고 “완전히 파격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접근”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의 대담한 성격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정 위원은 핫라인 개설과 북한의 추가 도발 중단 의지에 대해서도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이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은 이번 특사 방북의 최대 성과”라고 강조했다.
북미 간 대화 의지를 직접 이끌어낸 특사 대표단의 워싱턴행 후속조치 결과 역시 예상치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무엇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문 대통령의 교섭자로서 역할론이 조명받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임 평론가는 “남북 간도 그렇고 미국과도 굉장히 사전 이야기가 잘된 것 같다”라며 “미국도 북한도 서로 탐색해 왔을 것이다. 지금은 ‘남한의 대통령이 믿고 들어볼 만 하다’라는 신뢰감을 양 쪽에 준 것 같다. 그래서 올해 들어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미 간 교섭자로 나선 문 대통령의 첫 발은 속도와 범위 모든 면에서 예상을 넘었다는 평가다. 특히 5월 경 북미 정상 간 대화 의지가 교환됐다는 것만으로도 전례가 없었던 성과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이블에서 전개될 남북 및 북미 간 실질적 대화와 협상, 그리고 진일보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데는 여전히 ‘산고’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특히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내비쳤지만, 군사적 위협 해소 및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대단히 넓은 범위의 조건을 붙였다. 이전 협상에서도 그렇듯 그 범위는 물론 무엇이 먼저냐를 두고도 격론이 예상된다.
앞서의 임상훈 평론가는 “비핵화는 당장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물론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대화 가능성은 높다. 다만 북한은 앞서 핵을 포기해서 무너진 국가를 여럿 봤다. 북한이 핵을 쉽게 양보하진 않을 것이다. 실제 양보하더라도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성장 위원은 보다 현실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의 안정적 관리를 넘어 북핵 폐기로 나아가는 길은 매우 험난할 것”이라며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시한 것처럼 당장 시험에 나서진 않더라도 핵과 탄도미사일의 대량생산 및 실전배치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원심분리기 제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스스로 핵 동결을 밝힌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완벽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라며 “또 북한이 이를 조건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및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한국과 미국 모두 이를 수용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단 정의용 실장의 발표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이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조건’의 언급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교섭자 문재인 대통령에 놓인 숙제는 여전히 녹녹치 않은 형국이다.
마지막으로 정성장 위원은 “북핵 문제의 전망과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청와대 내 북핵 T/F팀 구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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