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터지자 ‘강력 부인’…잘못된 대처가 끝내 안타까운 결말로
# 전형적인 연예계의 물의 대처법의 치명적인 한계
검찰에서 시작돼 문학계와 연극계를 거쳐 연예계까지 확대된 미투 운동 열풍이 가장 먼저 지목한 유명 연예인이 바로 고 조민기였다. 인기 배우이자 대학 교수이던 고인은 자신을 향한 미투 폭로에 강한 부인으로 대응했다. 심지어 이와 관련해 불특정 세력의 협박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진 제공 = 윌엔터테인먼트
사실 이런 행보는 전형적인 연예계의 물의 대처법이다. 실제로 사실이 아닌 내용의 악성 루머가 워낙 많은 데다 이를 빌미로 한 불특정 세력의 협박도 존재하는 곳이 연예계이기 때문이다. 사실일지라도 겉으론 강력 부인 입장을 견지하며 물밑에서 조용히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이런 행보는 미투 열풍의 폭발력을 과소평가해서 범한 우가 되고 말았다. 첫 번째 폭로를 강력 부인하는 사이 연이은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심지어 청주대 연극과 11학번을 중심으로 한 재학생 및 졸업생들은 공동 성명을 내놓고 변호사까지 선임했다. 사안은 학교 밖까지 확대됐다. 제자가 아닌 일반 여성에게 보낸 음란한 내용의 카톡 메시지까지 공개된 것. 공개된 음란 카톡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듣는 내용보다 당사자가 보낸 메시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공개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메시지를 보낸 시점이 SBS 예능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 출연 당시였다는 부분도 충격을 더했다.
한 연예관계자는 “어찌 보면 조민기 씨는 잘못된 연예계 물의 대처법을 따라해 사태를 키웠다”라며 “조민기 씨가 아닌 다른 연예인이었어도 미투 운동에서 최초로 가해자로 지목됐다면 비슷한 카드를 꺼내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다른 연예인들은 조민기의 사례를 통해 다른 대처법을 꺼내들었다. 대부분 사실을 바로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것. 공식사과문을 통해 피해자를 한 명 한 명 직접 언급하며 사과한 연예인도 있고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사과한 뒤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이도 있었다.
# 사과조차 쉽지 않았던 고인의 고뇌
‘강력한 부인’ 카드를 먼저 꺼낸 고 조민기에겐 사과 역시 쉽지 않았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손편지를 공개한 ‘디스패치’는 이를 2월 26일에 입수했다고 밝혔다. 고인이 손편지를 디스패치로 보내 공개를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당시 고인은 소속사를 통해 사과문을 공개하려 했지만 이미 전속계약을 해지당했고 학교 홈페이지를 통하려 했으나 이미 면직돼 로그인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디스패치’는 자칫, 언론에만 사과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손편지 공개를 거절했다. 다음날인 2월 27일 조민기의 공식 사과문이 소속사를 통해 언론에 공개됐다. 전속계약이 해지된 소속사가 사과문 배포까지는 도움을 준 것. 결국 손편지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공개됐다. 내용은 공식 사과문과 유사한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서울 광진경찰서 과학수사대가 9일 오후 배우 조민기가 숨진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을 감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너무나 당황스럽게 일이 번지고, 제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시간들이 지나다보니 회피하고 부정하기에 급급한 비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모멸감으로, 혹은 수치심을 느낀 제 후배들에게 먼저 마음깊이 사죄의 말을 올립니다. 덕분에 이제라도 저의 교만과 그릇됨을 뉘우칠 수 있게 되어 죄송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조민기에겐 냉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불명예 하차하며 배우 생활이 심각한 위기에 내몰렸으며 청주대 연극과 교수 자리에선 면직 처리됐다.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도 해지됐다. 매서운 주위 시선도 부담이 됐다. 고인의 이웃 주민은 “기사 터지고 난 이후에는 모자로 눈을 다 가리고 다니더라. 표정이 좋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조민기의 한 측근은 “지난해 11월에 이 사건 때문에 학교에서 잘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아 잠복기가 있었다”며 “만약 이게 언론에 터지면 자살할 거라고 측근들에겐 얘기했었다”고 전해왔다. 결국 언론을 통해 미투 운동 가해자로 지목된 뒤 고인은 ‘이데일리’ 기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이미 죽음의 턱밑에 와 있다”며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 해결된 것은 경찰 수사뿐, 남겨진 상처는 더욱 깊어져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반응은 엇갈린다.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애도, 그리고 유족을 비롯해 가깝게 지내던 이들의 상처가 남았다. 그렇지만 애도도 쉽지 않다. 일부 연예인은 SNS에 고인을 애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글이나 사진을 남겼지만 논란에 휘말리고 말았다. 빈소도 기존 연예인의 자살 때와는 사뭇 다르다. 동료 연예인들 역시 조문을 가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까지 돼 버렸다. 이런 까닭에 유족의 비공개 요청에 취재진도 대부분 철수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피해자들이 그의 죽음으로 상처를 받았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미투 운동이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3월 9일 오후 고 조민기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이를 통해 달라진 것은 경찰 수사는 마무리됐다는 것 정도다. 고인의 죽음으로 경찰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한 것. 그렇지만 피해자들의 상처는 오히려 더 깊어질 수도 있게 됐고 유족과 측근들의 상처로 더 커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논란까지 가열됐다.
고인은 유서를 통해서도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경찰은 A4용지 크기의 종이 6장 분량의 자필로 쓴 유서를 발견했지만 유족 입장을 고려해 공개하지는 않았다. 학생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