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 배출 건물들 인기 ‘웃돈’ 오가…“‘명성 자자’ 건물주들 될 사람에만 임대”
6·13지방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캠프 명당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과거 여러 선거에서 공보팀장 등을 맡아 활동했던 한 인사는 “선거판에 오래 있어 본 사람은 각 후보의 선거캠프만 가봐도 누가 당선될지 대충 감이 온다. 선거캠프의 크기에 따라 후보의 자금력을 알 수 있고, 위치나 인테리어 등에 따라 후보가 얼마나 선거를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알 수 있다. 유동인구도 별로 없는 곳에 허름하게 캠프를 차린 후보가 당선되는 사례는 거의 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6월13일 실시하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1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관위 청사 외벽에 지방선거 홍보 대형 현수막을 게시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선거 현장에선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건물주에게 웃돈을 제시하는 사례까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방선거는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모든 선거 중 출마자가 가장 많다보니 경쟁이 더 치열하다. 2014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정치인은 총 3489명이었다.
경선을 통해 최종 후보로 등록했던 사람만 해도 9000명에 달했다. 선관위에 후보로 등록하지 않고 출마를 준비하다 포기한 예비후보자들까지 포함하면 약 5만 명이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했었다는 통계도 있다. 후보자는 많은데 명당은 한정되어 있으니 선거기간 임대료가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2배 가까이 상승한다.
그러나 부동산 관계자는 “선거 때 임대료를 평소보다 많이 받는 것은 단기계약이기 때문”이라며 “선거 캠프가 들어서는 곳이 대부분 번화가이지 않나. 가만히 놔둬도 나갈 사무실인데 고작 3개월 임대를 주면 건물주로서는 골치만 아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선거현수막이 다른 사무실 창문까지 가리고, 선거기간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건물 주변이 시끄러워진다. 기존 세입자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어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대부분의 건물주들이 선거캠프보단 일반 세입자를 선호한다”면서 “물론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후보들 간 경쟁으로 임대료가 오르는 점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 같은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선거캠프 활동 인사는 명당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동인구’와 ‘접근성’을 꼽았다. 이 인사는 “선거캠프에 내거는 현수막 광고효과가 크다. 그래서 돈을 더 쓰더라도 중심가에 선거캠프를 차리려 하는 것”이라며 “선거캠프는 선거 운동하고 후보자와 수행원들이 잠시 쉬는 베이스캠프 역할도 하는데 너무 외곽에 떨어져 있으면 오가는 데 시간을 다 버린다. 지지자들도 쉽게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 선거 때 캠프가 북적거려야 당선된다”고 말했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후보자일수록 선거캠프 위치의 중요성이 커진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현수막을 내걸어 후보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당선자를 배출한 건물들은 선거명당으로 불리며 더욱 인기를 끈다. 이에 대해 이 인사는 “선거 공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같은 값이면 로또 1등 당첨된 곳에서 로또를 사려는 심리와 비슷한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앞서의 부동산 관계자는 “선거명당으로 소문난 건물 소유주들은 명성을 유지하려 당선될 만한 후보에게만 사무실을 임대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선거명당이라 불리는 건물에는 여러 후보가 동시에 캠프를 차리기도 한다.
선거캠프에서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 일부 후보들은 선거 기간 캠프 사무실 임대료로 수천만 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초의회 시의원이나 구의원 출마자들 중에서는 아예 사무실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선거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 사무직원도 고용하지 않고 후보 본인 휴대폰 연락처를 선관위에 등록한 후 모든 업무를 자신이 처리하는 식이다.
이렇게 선거 캠프 사무실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미처 중심가에 사무실을 구하지 못한 후보들은 선거 중반 불출마자가 나오면 뒤늦게 불출마자가 쓰던 사무실로 이전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후보자들은 명당에 선거캠프를 마련하기 위해 풍수지리학자의 도움까지 받기도 한다. 도선풍수철학원 박민찬 원장은 “지난 지방선거만 해도 출마자 10여 명의 선거캠프 자리를 봐줬다”면서 “책상 방향이나 사무실 내 공간 위치 등 인테리어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풍수지리학적인 선거캠프 명당의 조건에 대해 “각 위치마다 명예운이 있는 곳이 있고 재물운이 있는 곳이 있다. 선거캠프는 명예운이 있는 곳에 마련해야 한다”면서 “건물방향이 동남향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거캠프 위치선정 의뢰에 대한 비용은 “영업 기밀이라 말씀 드릴 수 없다”고 했다.
박 원장은 “물론 풍수만으로 승패를 좌우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 20%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서로 지지율이 비슷한 후보라면 선거캠프 위치에 따라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과거 한 후보 선거캠프 위치를 선정해주기 위해 지역을 돌아보다 명당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사무실이 들어와 있었다. ‘여기가 제일 명당인데 아쉽다’고 말하고 다른 자리를 몇 군데 찍어줬는데 선거 때보니 어떻게 구했는지 제일 처음 찍어준 명당 자리에 선거 사무실을 차렸더라”라고 말했다.
지방선거의 메인이벤트라 할 수 있는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중심지라 할 만한 곳이 많아 캠프를 어디에 차리느냐가 더욱 고민거리다.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의 경우에는 여의도에 캠프를 차렸고, 박원순 시장은 종로에 캠프가 있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어느 지역이 명당이냐는 질문에는 “종로가 더 낫다. 박 시장 캠프가 있던 곳이 좋은 위치”라고 말했다.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캠프가 위치해 있던 자리. 현재는 기존 건물이 철거되고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박 시장의 캠프가 있던 곳을 직접 가봤다. 광장시장 옆에 위치한 과거 박 시장 캠프는 2014년 선거를 치를 당시 이미 철거가 예정되어 있던 곳이다. 현재는 건물을 철거한 후 재건축을 준비 중이었다. 주변에 유동인구도 많고 지하철역도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다. 서울시청까지의 거리도 가까웠다. 종로는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정치 1번지로 불렸다.
서울 구청장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예비후보자는 “과거에는 무조건 돈 많이 쓰고 큰 선거 사무실 차리는 후보가 이겼는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는 국민들이 비용을 아껴 검소하게 선거를 치르고 대신 공약개발 등에 내실을 다지는 후보자를 선택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