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통합우승 향해 끝까지 달린다”…생애 첫 식스맨 수상부터 미디어데이 감독대행까지
자신의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를 마친 김주성. 사진=KBL
[일요신문] “끝까지 달린다.”
농구 팬들은 이번 2017-2018 시즌을 끝으로 김주성이라는 또 한 명의 레전드를 떠나보내게 됐다. ‘농구대잔치 세대’ 이후 최고의 스타인 원주 DB 프로미 빅맨 김주성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김주성은 지난 15일 오전 2017-2018 정관장 KBL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플레이오프에 임하는 각오를 여섯 글자로 표현해 달라고 하자 “끝까지 달린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김주성의 현재 심정과 자신의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해 낸 말이었다.
올 시즌 이후 은퇴를 예고한 김주성은 지난 13일 자신의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를 치렀다. 이튿날 열린 KBL 시상식에도 참석했으며 이어진 15일에는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도 나섰다. 이에 ‘일요신문’은 그의 3일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 정규리그 우승 확정, 큰 점수차에도 ‘끝까지 달린’ 김주성
김주성에게 이제 더 이상의 정규리그는 없다. 지난 13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그의 정규리그 경기 출장은 742경기로 마무리됐다.
김주성의 얼굴이 새겨진 ‘레전드 매치’ 티켓. 사진=KBL
벤치 한편에서 몸을 풀던 김주성은 경기 막판 10분을 소화했다. 소속팀 DB가 1쿼터부터 17점 뒤처지며 승부가 기운 듯했지만 40세 노장 김주성은 누구보다 저돌적으로 공격코트를 항해 뛰어 나갔다. 전날 확정된 정규리그 우승에도 이날까지 승리를 노렸다. 경기는 결국 DB가 패배했지만 크게 벌어진 점수차를 한 자릿수로 줄였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김주성의 마킹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팬들과 사진촬영 행사를 가졌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에 팬들의 사인 요청이 빗발쳤다. 예정에 없던 간이 사인회였지만 그는 라커룸으로 떠나는 마지막까지 모든 요청을 들어줬다.
비록 플레이오프가 남아 있지만 그의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에 아쉬움이 남는 팬들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 옆 구단 숙소 앞을 떠나지 못했다. 숙소에서 정비를 마친 그는 버스에 오르기 전 자신을 기다린 팬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버스가 떠난 이후 팬들이 각자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는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식스맨상을 수상한 김주성. 고성준 기자
시즌 최종전 다음날인 14일에는 2017-2018 정관장 KBL 시상식이 열렸다. 김주성은 데뷔 시즌 신인상으로 시작해 정규리그·챔피언 결정전·올스타전 MVP, 최우수수비상, 베스트 5, 야투상, 블록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더 이상 받을 상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도 프로농구의 축제일인 이날을 즐기러 온 듯 보였다.
하지만 시상식 초반부터 그의 이름이 불렸다. 김주성은 식스맨상 트로피를 품에 안게 됐다. MVP를 받은 선수가 식스맨상을 받는 경우는 주희정 이후 역대 두 번째였다. 그는 수상의 기쁨과 함께 “식스맨을 오랫동안 했던 더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안다”며 동료 선수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데뷔 시즌부터 경기당 평균 36분 31초를 소화하며 줄곧 주전으로만 활약해왔던 김주성에게 올 시즌 주어진 보직은 식스맨이었다. 평균 출전시간 10분대(12분 43초)를 기록한 것은 커리어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철저하게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후반에 이르러서야 경기에 나섰다. 올 시즌 기록한 모든 득점(272점)을 후반에 집중시켰다. 덕분에 DB는 리그에서 4쿼터 역전승을 가장 많이 거둔 팀(13회)이 됐다.
# 뜻밖의 감독대행(?) 김주성
식스맨상 수상자 김주성은 다음날에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KBL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 건강상 이유로 불참한 이상범 감독을 대신해 참석했다. 각 팀 감독과 선수 1명이 나선 미디어데이에 “감독님 대신 제가 왔다.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진땀을 뺐다.
그는 은퇴 이후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해프닝이지만 감독 자리에 앉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시즌 중 ‘태업 논란’이 일었던 팀 후배 두경민이 이날 행사에 지각한 것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팀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선수들이 해이해질 수 있다. 팀원들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겠다”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상범 감독 대신 참가한 미디어데이. 사진=KBL
이날 하루 김주성이 감독석에 앉자 동료들의 너스레로 미디어데이 현장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구단별 질의응답 시간에서 전주 KCC 이지스 빅맨 하승진은 “김주성 감독대행께 묻겠다”는 돌발 발언으로 김주성을 당황케 했다. 여전히 선수 신분으로 단순히 이날 행사에만 대신 나선 김주성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쳐야 했다.
# 남은 게임은 최대 12경기
김주성은 이번 시즌 개인상 수상에 더해 팀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가장 행복한 은퇴’를 맞게 됐다. 하지만 아직 시즌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DB는 4강에 직행하며 울산 현대 모비스와 안양 KGC의 6강 플레이오프 승자와 오는 28일 4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5판 3선승제로 치르는 4강을 넘어서면 챔피언결정전이 기다리고 있다.
정규리그를 마무리한 ‘선수 김주성’에게 남은 경기는 최대 12경기다. 김주성은 남은 경기에서 통합우승이라는 선물을 팀에 안기며 팬들과 작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든 코트를 떠나는 김주성에게 농구팬들은 이미 고마운 마음을 보내고 있다. “굿바이 레전드, 땡큐 김주성”을 연호하면서 말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원주 DB 10관왕…KBL 시상식은 ‘DB 천하’ 이번 2017-2018 정관장 KBL 정규시즌을 앞두고 원주 DB에는 악재가 겹쳤다. ‘동부산성’을 구축하며 강력함을 자랑했던 김주성-로드 벤슨-윤호영이 세월이 흐르며 과거와 같은 몸놀림을 기대하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호영은 전 시즌 입은 부상으로 복귀 시점 또한 불투명했다. 최근 몇 년간 팀의 간판으로 활약하던 허웅은 상무에 입대했다. DB는 이번 시즌 샐러리캡 소모(연봉 지출)가 가장 적은 팀이었다. 자연스레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DB를 하위권 후보로 지목했다. 국내선수(두경민)와 외국인선수(디온테 버튼) MVP를 모두 석권한 원주 DB 프로미. 고성준 기자 하지만 DB는 보기 좋게 이러한 예상을 깼다. 리그 개막과 동시에 5연승을 달린 이들은 지난 1월부터 리그 선두에 올라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정규 시즌이 끝난 이후 시상식에서도 이 같은 결실을 맺었다. DB는 지난 14일 열린 프로농구 시상식에서 주어진 21개의 트로피 중 10개를 차지했다. 시상식에 참가한 DB 선수들은 수상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동료의 수상을 축하해주기 바빴다. 국내선수와 외국인선수 부문으로 갈린 MVP 수상은 DB가 독식했다. 올 시즌 돌풍을 이끈 두경민과 디온테 버튼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감독상 또한 ‘꼴찌 후보’팀에 정규리그 우승을 안긴 이상범 감독의 차지였다. 이외에도 버튼은 베스트 5, 인기상, ‘Play of the Season(최고의 장면)’을 수상하며 4관왕에 올랐다. 두경민도 베스트 5에 선정됐다. 팀의 최고참 김주성과 주장 김태홍은 각각 식스맨상과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보상을 톡톡히 받았다. 이에 더해 DB는 팀 치어리더 ‘그린 엔젤스’가 치어리더팀상까지 거머쥐며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상] |
서장훈-이승엽-김주성 다음 은퇴투어 후보는?…농구 양동근 축구 이동국 야구 이대호 ‘예약’ 김주성이 지난 12월 시즌을 마치고 은퇴할 것을 선언하며 KBL 10구단들은 분주해졌다. 은퇴투어 진행이 결정되며 저마다 김주성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 등의 은퇴투어가 진행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레전드 선수들의 은퇴투어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프로농구에선 지난 2013년 ‘국보급 센터’ 서장훈의 은퇴 당시 각 구단이 행사와 선물을 준비했다. 서장훈은 자신이 뛰었던 전자랜드와 SK의 이벤트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엔 프로야구에서 ‘국민타자’ 이승엽의 공식 은퇴투어가 진행됐다. 프로야구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불어 이호준 또한 ‘미니 은퇴투어’를 치르기도 했다. 김주성의 은퇴투어는 지난 1월 SK의 홈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시작됐다. 각 구단은 피규어, 기념액자 등으로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의 은퇴행사는 리그에서만 펼쳐진 것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부터 농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주기적으로 국내에서 열리게 됐다. 2019 농구월드컵이 예선 경기를 홈앤어웨이로 치르며 국가대표 경기에서 김주성의 은퇴행사가 열렸다. 김주성은 리그뿐만 아니라 국가대표에서도 역사상 유일하게 두 개의 아시안게임 금메달(2002년, 2014년)을 목에 걸며 족적을 남겼다. 은퇴투어는 소속 구단만의 영웅이 아닌 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레전드로서 은퇴선수와의 작별을 기념하는 행사다. 그렇다면 앞으로 은퇴투어를 치르게 될 프로선수는 누가 있을까. 프로농구에서 김주성의 뒤를 이을 선수로는 울산 현대 모비스의 양동근이 첫 손에 꼽힌다. 지난 15일 열린 2017-2018 정관장 KBL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도 그에게 은퇴투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이에 “나는 주성이형처럼 은퇴투어를 할 만한 선수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본인은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양동근은 정규리그 5회, 챔피언결정전 5회 우승으로 국내 커리어만큼은 김주성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선수다. 프로축구 K리그에서 최초로 은퇴투어가 열린다면 그 주인공은 이동국이 될 확률이 높다. 이동국은 모두가 인정하는 K리그 최고 스타다. 그는 역대 471경기에 출전해 203골을 넣어 리그 역대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72개 도움을 기록하며 70-70클럽(70골, 70도움)의 유일한 가입자이기도 하다. 자녀들과 함께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얻은 국민적 인기는 덤이다. 농구에 양동근, 축구에 이동국이 있다면 프로야구에는 이대호가 있다. 앞서 은퇴투어를 치른 이승엽과 서장훈은 각각 ‘국민타자’, ‘국보급 센터’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이들 모두 소속팀뿐만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있다. 이대호의 별명은 ‘조선의 4번 타자’다. 그는 지난 2011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미국 메이저리그를 거쳐 지난해 국내로 복귀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