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지방선거 관심 분산시켜 추격 따돌리려는 속셈” vs 청와대 “대선공약 지키려는 것”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힘줘 말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특위)가 3월 13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헌법 개정 자문안을 보고한 직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한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받아든 헌법 개정 자문안을 검토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정부 개헌안을 마련, 3월 21일까지는 발의한다는 뜻이다.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는 만큼 공고 및 이송절차 등을 감안하면 3월 21일이 마지노선이라고 청와대는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1일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으로부터 방미 성과를 보고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야권은 “개헌은 여야 합의를 통해 국회에서 하는 것”이라며 청와대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연이어 쏘아대고 있다. 이런 시도 자체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며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문 대통령은 개헌에 매달리는 것일까? 순수한 의도인가? 야권의 주장처럼 뒤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 국민 눈높이에 맞춘 것?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합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면서 이번에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를 이끌었던 정해구 위원장은 기자와 만나 자문안을 주문하던 문 대통령이 이 부분을 가장 강조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이 전한 문 대통령의 말을 해석해보면 1987년 이후 31년 만에 이뤄지는 개헌은 바로 국민의 달라진 눈높이를 정치가 이제 따라가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개헌안도 허황되고 너무 고차원적인 것이 아닌 국민이 이해할 수 있고,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문 대통령의 뜻을 전하면서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고 모든 후보들이 지난 대선 때 했던) 약속을 가벼이 여기면 안된다.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언급,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애초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를 함께하자는 것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 등 지난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기도 했다.
홍 대표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를 하겠다는 공약을 뒤집고 국회가 합의해 연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개헌 드라이브에 대해 “문 대통령이 겉으로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포장을 씌우지만 결국에는 지방선거 전략의 하나로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건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보수야당을 몰아붙여 반개헌, 반민주 세력으로 낙인찍는 동시에 지방선거 관심을 분산시켜 야당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한 현역 의원은 “우리가 개헌을 안하겠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홍준표 당 대표가 직접 나서서 연내에 한다고 약속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10월에 하겠다고 시기도 못 박은 바 있다. 청와대의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자는 전략은 개헌 이슈를 통해 지방선거를 여당에 유리한 구도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개헌 바람이 불면서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뤄지면 진보여당의 지지세력인 젊은이들이 지방선거 때 투표장으로 몰려들고, 이렇게 되면 수도권 등 도시지역에서 보수야당에 크게 불리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와 여당이 이를 계산하고 있다고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은 의심하는 중이다.
# 정치공학적 계산은 없다?
야권의 공세에 대해 문 대통령을 잘 아는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의 개헌 드라이브에 정치공학적 계산은 절대 없다는 반론을 편다. 문 대통령은 개헌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으며 이를 실행하는 것인 동시에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라는 의미다.
민주당 한 고위 당직자는 “문 대통령의 개헌 드라이브가 지방선거 때 여당을 유리하게 하려는 전략이라는 비판은 문 대통령을 전혀 몰라서 하는 얘기다. 5년 단임제의 폐해, 중앙정부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 등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헌을 해야 한다는 대통령 스스로가 가졌던 소신의 발로일 뿐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 대형 호재가 터진 문 대통령은 지금쯤 개헌 논의를 슬그머니 거둬버리고 국회로 공을 떠넘겨버려도 된다. 대통령 자신이 이뤄낸 정상회담이 최대의 자랑거리인데, 이것만 갖고 지방선거 때까지 달려가면 된다. 그런데 개헌 이슈를 자꾸 들춰내는 것이 정치공학적으로 정부 여당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결국 문 대통령의 성향일 뿐이다”라고 해석했다.
민주당 당직자의 말처럼 사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관되게 ‘개헌을 6월 지방선거 때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개헌을 지방선거 때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또 국회가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정부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도 얘기해왔다.
문 대통령은 1월 10일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를 하려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국회가 책임 있게 나서서 개헌 합의를 이뤄주기를 촉구한다.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 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었다. 최대한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겠으나, 국회 합의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나서서 개헌안을 만들어 발의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국회 개헌특위에서 국민 주권적 개헌방안이 마련되지 않거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그때는 정부가 개헌특위의 논의 사항을 이어받아 자체적으로 특위를 만들어서 개헌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헌법 개정 자문안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자문안에 들어있는) 4년 중임제를 한다면 제겐 적용되지 않고 차기 대통령부터 적용된다. 이 개헌이 저에게 무슨 정치적인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오해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점에 대해서 분명히 해주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치공학이나 사리사욕은 절대로 없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큰 이유
문재인 대통령은 더 빨리 정치 입문을 할 수 있었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고사했었다. 문 대통령을 잘 아는 이들은 정치판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결국 문 대통령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면서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은 ‘정치 혁신’과도 관련이 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청와대 재직 및 국회의원 시절 때 직접 문 대통령이 직접 보고 느낀 우리 정치판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어서 대한민국 정치 구도를 하루 빨리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3월 13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로부터 ‘국민헌법자문안’을 보고받고 “(이번 자문안에 담긴 것처럼) 대통령 4년 중임제(1차 연임제)가 지금 채택된다면 대통령과 지방정부의 임기가 거의 비슷해져 이번에 선출되는 지방정부의 임기를 약간만 조정해서 맞춘다면 차기 대선부터는 대통령과 지방정부 임기를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 따로, 지방선거 따로 하다보니 정치적 낭비가 초래되는 만큼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가 거의 동시에 실시될 수 있는 길이 이번 지방선거 때의 개헌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 이유로 ‘정치권의 낭비’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자문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대통령 임기 중에 세 번의 전국선거를 치르고, 그 세 번의 선거가 주는 국력 낭비라는 게 굉장한데 개헌하면 선거를 두 번으로 줄이며 대통령과 지방정부가 함께 출범하고 총선이 중간평가 역할을 하는 식의 선거체제 또는 정치체제가 마련될 수 있다”며 “이번에 개헌되어야만 그게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결국 이번에 개헌을 해야 ‘정치 비용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또 “따지고 보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는 것보다 대통령과 지방정부 임기를 맞추고 총선은 중간평가 역할을 하는 게 정치제도 면에서 훨씬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명분도 없이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려고 하는 야권을 강하게 비난했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고 별도로 국민투표를 하려면 적어도 국민의 세금 1200억 원을 더 써야 한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정치비용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권을 강하게 성토했다.
# 개헌카드 성공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3월 13일 보고한 초안을 바탕으로 정부 개헌안을 만든 뒤 3월 21일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개헌안의 국회 처리 전망은 불투명하다.
개헌안 발의는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할 수 있고, 국회 의결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된다. 현재 국회의원 재적은 293명.
국회 상황으로 봤을 때 문 대통령이 내놓는 정부 개헌안의 국회 의결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물론, 그동안 개헌에 찬성 입장을 밝혀온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다른 야당들도 문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헌은 국회 주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결국 재적 과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석수 121석의 여당이 무리하게 국회 표결을 시도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국회 차원의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더욱이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3월 13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부 개헌안 초안에 지방분권 부분이 예상했던 것보다 약하고 대통령 권력 분산이 미흡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 부분으로 인해 청와대의 개헌 드라이브가 강하게 힘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한 현역의원은 “대통령 개헌안 발의가 국회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 뻔해 대통령 발의는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여야 합의안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1야당 한국당도 무조건 개헌 반대를 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4월 말까지는 개헌안을 내놔야 하는데 지금 국회상황을 봤을 때 이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지방선거 때 개헌은 어려울 것 같지만 연내 개헌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