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가장 인상적…사람들 말 잘 듣는 정치인 처음 봤다”
‘선거 사진 업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지를 묻는 질문에 전경헌 크레타 대표의 말이다. 정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 전 대표는 2015년 문 대통령 민주당 당 대표 선거 사진을 찍었고, 2016년 총선에서는 그의 사진을 쓴 후보 중에 9명이 당선됐다. 후보들이 보통 자신의 지역구에서 사진을 찍거나, 선거 컨설팅 업체에서 패키지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고 찍은 사람이 전부 당선될 수는 없다는 현실에 비춰볼 때 그의 ‘입시학원’ 발언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경헌 크레타스튜디오 대표.
―어떻게 정치인들이 찾게 됐나.
“2000년도 대학원을 다니는데 과에서 ‘총선 사진전’이 열렸다. 그때 당시 총선에 출마한 원희룡 제주지사를 찍게 됐다. 고등학교 선배라는 연 하나로 무작정 전화해서 부탁했다. 그때 사진을 찍었고 당선이 됐다. 그렇게 시작해서 손학규 지사를 찍게 됐고 그 후부터 국회의원들이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늘어나다가 지난번 총선에는 찍은 사람 중 9명이 당선됐다.”
―당신보다 더 많이 당선시킨 사람도 있나.
“정확하게 누가 얼마나 찍었는지 모른다. 다만 선거 컨설팅해주는 업체에서 여론조사, 홍보물, 선거 사진 등을 패키지로 구성해서 파는 경우가 있다. 이곳과 계약한 업체가 더 많이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곳에 들어가 있지 않아 모르겠다.”
―그럼 보통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
“내 사진 스타일이 알려졌으니까 주로 알음알음으로 찾아온다. 선거에는 후보 사진을 찍고 보통 전문가 프로필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데 이 바닥이 얼마나 크겠나. 뻔하다. 지방이나, 제주도에서도 찍으러 온다.”
―크레타 스튜디오의 장점이 뭔가.
“그 사람을 잘 본다. 그 사람의 장점, 단점을 파악해 고급스럽게 찍는다. 지방에서 올라온 후보들은 해당 지역구와 맞지 않다고 고급스러움을 좀 빼달라고도 한다.”
―많이 찾아 오는 당이 있나.
“당 구별 없이 보수, 진보 모두 찾아 온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부터 은수미 전 의원까지 색깔 스펙트럼도 넓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도 찍었다고 들었다.
“문 대통령이 대선 끝나고 떨어진 뒤에 이번엔 제대로 하겠다며 당 대표 출마할 때 찍었다. 실질적인 대선 출마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 측근이 연락이 왔다. 그때 전국 팔도의 다양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콘셉트였다. 제주도 해녀, 지방의 농민, 노동자들과 같이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는 자리였다. 내가 찍었던 사람 중에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문 대통령이다.”
―곁에서 보기에 어떤 사람이었나.
“사진을 찍을 때 표정이 다양하진 않다.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 정치인치고 사람들 말 잘 듣는 사람 처음 봤다. 그렇다고 자기 말을 안 하는 사람은 아니다. ‘저렇게 예의 바른 태도로 따박 따박 할 말 다 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내가 찍었던 모든 사람 중에서 감정의 진폭이 가장 안정적인 사람이었다.”
―정치인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사진이 달라지나.
“달라진다. 참모들의 생각이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정치인 이미지가 왔다갔다 하는 건 별로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만의 명확한 이미지, 그 사람만의 브랜드가 있어야지. 우리 나라 정치인들의 큰 문제는 욕심이 많은데 브랜드에 관심이 없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그렇다고 본다.”
―정치인은 이미지로 먹고 산다고 하는데 곁에서 보면 다른가 보다.
“그렇다. 정치 후진성이 선거사진에서 드러나는 게 아무 준비를 안 하고 온다. 그럼 ‘선거 슬로건은 뭐냐’, ‘홍보물은 어떤 이미지로 갈 거냐’, ‘본인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꼭 ‘자연스럽게 해달라’고 한다. 그럼 나는 ‘세상에 알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정치,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자연스러운 사진이다. 당신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 사람을 끄집어내야 한다.”
2015년 전경헌 대표가 찍은 문재인 대통령 사진 B컷. 사진=전경헌 크레타스튜디오 대표 제공
―가장 성공한 대선 후보 사진은 누구라고 보나.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당시 선거 사진을 보면 다른 후보는 다 근엄하게 있는데 노 전 대통령 혼자 웃고 있다. 그게 기가 막힌 거다. 그 사람은 당시 군부세력 센 이미지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드러운 얼굴로 등장한다. 이게 연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하다. 무슨 얘기냐면 노 전 대통령은 분명 그런 부드러운 심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웃는 사진이 유리한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을 봐도 웃었을 때 당선됐다. 13대 때는 두루마기 입고 꼬장꼬장해 보인다. 비호감이다. 14대 때는 옆 면으로 웃는다. 15대 때는 치아가 드러나게 정면으로 웃는다. 웃는 게 보통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도 18대 때는 안 웃었다. 선거 사진을 제대로 찍은 게 아니라 행사에서 우연히 건진 사진이라고 들었다. 19대 때 웃으며 당선됐다.”
―사진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선거는 모든 힘을 짜내서 모아야 한다. 예를 들어 축구대표팀 감독은 작전은 물론이고 선수들의 잠이나 식사 등도 고려한다. 때로는 더 커보이기 위해 유니폼 채도까지 조정한다. 사소한 하나하나가 모여 승부를 결정할 때도 있다. 사진도 그런 지점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 대선 사진을 평가해본다면 어떤가.
“사진하는 입장에서는 문 대통령 18대 대선 사진은 선택할 만한 사진이다. 반면 19대 대선 사진은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너무 안정적이라 선택할지 모르겠다. 굳이 사진으로 득점할 필요 없이 뒷말을 완전 차단해 불필요한 실점을 막는 강팀 전략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사진은 좌와 우로 팔을 쭉 뻗고 열어 젖히는 모습이다. 실험적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너무 갔다고 본다. 곰 캐릭터를 옆에 둔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 사진은 무리수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 사진이 자신 색깔에는 가장 맞아 보인다.”
―사진도 후보 상황에 맞게 전략적으로 찍기도 하나.
“그렇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19대 총선에서 광명에 출마했는데 현역이 전재희 의원으로 3선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던 거물이었다. 어차피 경험이나 관록이 차이가 많이 났다. 그래서 이부분을 보완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의원을 더 당당하고 젊어보이게 찍었다. 그 결과 기호 1번과 2번이 함께 걸린 포스터를 보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오래 해먹었네’, ‘구태다, 적폐다’ 그런 말이 나오도록 했다. 전략이 통했는지, 어려운 험지에 전략공천된 이 의원은 그 선거에서 생각보다 쉽게 이겼다.”
―찾아오는 후보들은 요구 조건이 많나.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부드럽게 찍어달라고 한다. 진짜 아이러니의 결정체다. 자기를 찍어야 한다. 사진을 찍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장점을 극대화하거나 단점을 극소화하거나 한다. 자기 모습이 아닌 무엇을 찍을 수 없다.”
―그래도 표정이 안 나오는 경우에는 어떡하나.
“무조건 칭찬한다. 칭찬하면 된다. 정치인들은 칭찬에 굶주린 사람들이다.”
―후보가 공천을 못 받거나 선거에서 패하거나 최악의 경우 선거 비용을 보전받지 못하면 돈을 못받는 경우도 있나.
“선불로 받기 때문에 못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사진을 찍다보면 친해지는 경우가 꽤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잘 알고 찍길 원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가까워진다. 또 선거를 이기든 지든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는 고마움을 표하려는 경향이 있다. 낙선한 사람은 비싼 돈 내고 사진을 찍었는데 잘 안됐으니 마음이 짠해져서 술도 같이 마신다. 그러다 두 번째 찍는 사람은 후불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또 떨어져서 돈을 못 받은 경우가 있었다.”
―당선되면 고마움을 표하는 후보도 있나.
“‘후보에게 ‘후보님 당선되면 밥 한 번 사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럼 누구나 ‘그럼요. 당선되면 좋은 식당에서 모실 게요’라고 한다. 그때 ‘좋은 데는 됐고 의원회관 구내식당에서 한번 사주세요’라고 말하고 약속을 받았다. 다른 데서 밥을 산 사람은 있는데 아직까지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은 후보는 없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