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주장 지금 와선 번복…작년 대선 땐 대통령제 주장도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대표는 ‘청와대발 개헌안’에 ‘사회주의 개헌안’이라며 연일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제안한 개헌안의 일부는 한국당과 홍 대표가 과거 주장했던 개념과 상당히 유사하다. 박은숙 기자
청와대는 지난 3월 21일 토지공개념의 내용을 명시하는 2차 개헌안을 발표했다. 토지공개념이란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에 한국당은 반발하고 나섰다. 홍지만 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토지공개념, 경제 민주화 같은 개념이 얼마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인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잘 안다. 수도조항이나 지방 분권 같은 것도 하나같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면서 “그런데 이런 논쟁적 사안에 ‘내 생각은 이러니 따라 와라’는 식으로 대못을 박고 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희경 대변인도 “토지공개념 강화, 경제민주화 강화와 같은 내용은 자유시장경제 포기 선언과 다름이 없다”며 “이 정권의 방향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아니라 사회주의에 맞추어져 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하지만 홍 대표는 과거 토지공개념 도입을 강조한 적이 있다. 2007년 6월 29일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국가가 장기적으로 국·공유지를 비축해 토지가 공공재라는 인식이 일반화되도록 해야 한다”며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장했다.
아울러 홍 대표가 당시 제시했던 ‘성인 1인 1주택제’, ‘토지 소유 상한제’는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공약이라고 매체는 설명했다. 홍 대표는 2005년 성인 1인이 소유할 수 있는 주택을 1채로 제한하는 ‘주택소유제한특별조치법안’을 발의한 바 있는데, 이 법안은 미성년자는 상속 등을 제외하고는 주택 소유가 불가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현재 정부가 제안한 개헌안에 비해서도 훨씬 더 진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도 헌법으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 것에 환호했다. 2005년 7월 20일 한나라당은 “합헌적인 토지공개념 제도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혔다. 당시 참여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던 토지공개념 재도입에 대해 헌법 테두리 안에서 추진할 경우 찬성한다는 방침을 보였다.
정태옥 한국당 대변인은 과거 토지공개념에 찬성하다가 이제 와서 반대하는 것에 대해 “토지공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정부 개헌안에 들어간 건 ‘국가가 필요한 경우엔 특별한 제한과 조치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무서운가”라며 “당시 (한나라당과 홍준표 의원은)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 당은) 토지공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10년 새에 토지공개념에 대한 입장을 바꾼 홍 대표의 입장을 묻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3월 20일 오전 11시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발표. KTV 유튜브 영상 캡처
청와대는 개헌안 정부형태 부분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4년 연임제로 개헌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도 한국당은 반발했다. 앞서 청와대 개헌안이 공개되기 전인 3월 13일, 정태옥 대변인은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지 않고 4년 연임제를 하면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된다”면서 “헌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도 지난 3월 22일 논평을 통해 “제왕적 권력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연임제까지 주장하고 나섰다”면서 “중임이나 연임이나 말의 성찬일 뿐”이라고 연임제를 지적했다.
한국당은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를 총리가 선출해 권력을 나눠 갖는 제도를 주장 중이다. 한국당은 ‘책임총리제’, ‘분권대통령제’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대통령제’를 제안한 정부·여당과의 평행선을 걷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한국당이 제시한 책임총리제가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와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한국당은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이원집정부제’, ‘내각제’라는 표현보다는 ‘책임총리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각제를 선호하는 응답률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 대표가 의원내각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을 추진하는 듯한 정황도 포착됐다.
지난 1월 28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익명의 한 한국당 소속 개헌정개특위 위원은 “홍 대표가 특위 일부 위원들에게 오는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더라도 의원내각제를 염두에 두고 추진해달라고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이 보도에 한국당은 “홍 대표 내각제 지시 보도는 오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당은 정부·여당이 제안한 ‘대통령제’에 반대하지만, 과거 홍 대표는 대통령제를 주장한 바 있다. 한국당 대선주자였던 당시 홍준표 후보는 지난해 3월 23일 ‘CJB 청주방송’의 ‘2017 자유한국당 후보자 경선 토론’에서 타 후보들과 권력 구조에 대한 토론을 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면서 대통령제의 문제를 거론하는데 오히려 대통령 권한이 더 센 미국을 보면 민주주의가 잘 운영된다”며 “미국은 투명한 사회고, 한국은 아직 투명한 사회로 가지 않아서 그렇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대통령 제도가 바뀐다고 친인척이나 측근 비리 사건이 안 터진다고는 생각 안 한다”면서 “정말로 대통령제가 문제가 되면 권력 분산도 한 방법이지만 근본적으로 대통령 개인의 권력에 대한 인식 문제”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여당의 대통령제에 반대하는 한국당 공식 입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날 토론에 참여한 김관용·김진태·이인제 후보 등 한국당 소속 인사들은 모두 내각제보다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홍 대표는 지난 2008년 4월 22일 ‘뉴시스’와의 전화통화에서도 “미국식의 4년 중임제로 가는 것이 맞는지 프랑스식의 이원집정부제로 가는 것이 맞는지 논의해 봐야 한다”면서도 “내각제는 곤란하다”고 못을 박았다.
홍 대표의 입장이 바뀐 것에 정 대변인은 “(우리 당은) 대통령권한분산, 대통령분권, 책임총리제를 주장했다”면서 “‘한국당이 내각제를 주장한다’는 것은 좌파진영에서 하는 주장”이라고 부인했다.
이에 대해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 대표는 “시대변화에 따라 개헌에 대한 입장이 바뀔 수는 있다. 다만, 이 경우 책임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입장 변화의 이유를 국민 앞에 해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개헌에 대한 홍 대표의 입장 표변은 그가 개헌을 국가대계가 아닌 정략적 수단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역사와 국민 앞에 책임지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조 대표는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국가의 중대사안까지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정치인에게 국민의 신뢰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토지공개념에 대해 과거에는 긍정적으로 보았는데, 이제 와서 반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겠다’는 소아적 태도라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