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좌파들 많이 걸려라” 공세…속으론 “우리도 언제 터질지 몰라” 노심초사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미투’ 폭로에 휘말리자 자유한국당은 공세에 나섰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한국당이 호재를 맞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 속사정은 다르다. ‘혹시 우리 당에서도 터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민병두 민주당 의원. 일요신문DB
민주당발(發) 성추문 의혹에 한국당은 반사 이익을 받으며 제1야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터지자마자 한국당은 다른 그 어느당보다 발빠르게 논평을 내며 공격을 시작했다.
민주당은 사건이 터진 다음 날인 6일 윤리심판원 회의를 열고 안 전 지사를 제명하는 징계를 확정했다. 하지만 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이날 ‘민주당은 성폭행범을 대권주자로 30년 장기집권을 꿈꾸었는가’라는 논평을 냈다. 아울러 홍지만 대변인도 ‘386 미투 부역자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386 운동권의 성문화가 민주화 투쟁 시절에도 문란했다는 소문에 유의한다”면서 진보 진영을 공격했다.
홍준표 대표도 6일 ‘제1회 한국당 여성대회’에서 “미투 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에 덮어 씌우기 위한 출발로 봤다”면서 “이제는 나도 누명을 벗었기 때문에 (미투 운동을) 좀 더 가열차게 해서 좌파들이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후 피해자의 아픔을 망각하며 정치적인 공세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홍문표 한국당 의원도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는 분들이 저런 일이 있다면, 또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 정서로 봐서 한 말씀 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고 있어 아쉽다. 대국민사과를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청와대까지 압박의 수위를 높여 갔다.
한국당은 표면적으로 민주당에 대한 공세를 연일 이어가고 있지만, 내부 분위기는 달랐다. ‘우리도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고 더욱이 정치권에 함께 몸담고 있는 동료가 성추문에 휘말렸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당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한국당도 (성추문 사건이 안 터질 것이란) 예외는 없다. 하지만 (민주당에 대해 이 같은 공격의) 메시지를 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의원이라는 이유로 온정적으로 사안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렇게 대응을 하고 있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당 대변인이 논평 수위를 낮춰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당 내부 ‘미투’가 잠잠한 것에 대해 “사건의 파급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감춰두고 있다는 설이 있다. ‘한국당 미투’ 카드가 있지만 지방선거 직전에 터뜨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며 한국당으로 ‘미투’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또는 지난 몇 년 동안 새누리당은 ‘성누리당’이라며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워크숍에서 성추행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런 과거 때문에 4~5년 전부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일단 의원들의 저녁 식사자리에 술이 안 나오고 뒤풀이라는 것이 없다”며 “한국당은 그때부터 엄청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당도 (미투에서) 예외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안희정 사태’를 겪은 뒤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로 지난 5~9일 전국 유권자 2502명을 대상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집계한 결과, 긍정평가 비율은 65.8%로 지난주 대비 0.7%p 떨어진 수치를 나타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냈음에도 ‘안희정 여파’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예상된다.
정당지지도에서도 민주당은 1.9%p 떨어진 48.1%로 하락세를 보였다(응답률 5.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안희정 사태’에서 시작된 ‘민주당 미투’ 사건들이 터지면서 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호재를 맞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당 내부의 분위기는 달랐다. 또다른 한국당 소속 의원실의 관계자는 “4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판결, 남북정상회담, 5월에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보수정당인 한국당으로서는 지방선거 전 일정이 굉장히 불리하다”며 “민주당의 미투 사태는 선거 유불리를 따지기에는 (선거 공작용라고 쳐도) 이른 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2010년 천안함 폭침이 3월에 있었는데, 우리는 이 사건이 지방선거에서 호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지방선거가 몇 달이나 남은 상황에서 터지니 오히려 저쪽에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전쟁이냐 평화냐’로 밀고 나가서 우리가 확 떨어져 나갔다”며 “다시 말해, 민주당의 미투 사건으로 우리가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 쪽에서 또 터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민병두 건’은 우려가 된다. 이 사건이 잣대가 되고 앞으로 무슨 사건이 터지면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사퇴했는데’라는 말이 나올 수 있으니 의원들은 이걸 우려한다”면서 “우리 의원님도 민 의원이 사퇴를 발표한 걸 보고 안타까워하더라. 동료 의원이니까”라고 말했다.
특히, ‘미투 운동’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관계자는 “미투의 본질은 ‘권력’과 ‘위계’가 들어간 것”이라며 “민 의원은 (단순 성추문으로 미투와는) 구별돼야 한다는 당내 분위기가 있다. 이는 권력형 미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당은 청렴결백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천을 잘 해서 (한국당에는) ‘샌님’만 남은 것이다. 공무원 출신들이 많이 남아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라며 “(한국당에서는) 터질 게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미투와 관련된 한국당 내부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관계자들도 있었다. 한 관계자는 “(한국당이라고) 100% 자유로울 수 없지 않겠느냐”면서도 “모른다. 당 분위기 전혀 모른다”고 말을 아꼈다. 다른 관계자 또한 “누가 100% 깨끗할 수 있겠느냐. 정치권 모두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도 “‘노코멘트’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