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과정에 참모들 목소리만 들려…‘왕수석’ 넘어 ‘상왕수석’ 지적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3월 20일 춘추관에서 대통령 개헌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조 수석은 지난 1월에도 권력기관 개편안 발표에 나섰다가 야당의 반발을 샀다. 야당의 협조가 꼭 필요한 사안을 발표하면서 과거 야당이 반발했던 행태를 반복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경환 민평당 대변인은 “아무리 좋은 뜻도 형식이 맞지 않으면 진의가 훼손된다”고 비판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도 정치, 경제, 외교, 안보를 아우르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임 실장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에 임명돼 준비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준비위 총괄 간사를 맡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각각 위원으로 참여한다. 각 부처 장관들이 임 실장 밑에서 일하게 되는 모양새라 논란이 일었다.
임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순방에 동행하기도 했다. 비서실장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대통령 외부일정에 동행하지 않는 관례에 비춰보면 파격적인 행보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과거 적폐가 감히 지적질을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비정상적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왕실장, 왕수석이라고 불리며 비판받았지만 그들도 그림자 보좌에 그쳤지 외부에 나서서 직접적으로 뭔가 했던 사례는 없다. 두 사람과 비교하면 현재 청와대 참모들은 황제실장, 상왕수석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한국당 의원도 조국 수석 사례에 대해 “본인 역할을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 의원은 “저 같은 경우 집권 초기 장관 임명이 안 돼서 부득이하게 나섰던 사례는 있었지만 내각 구성이 된 이후 조 수석처럼 나섰던 사례는 없다”면서 “당장 우리 당에서는 권력기관 개편안은 비서가 발표한 안이기 때문에 정식적인 안으로 인정할 수조차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야 협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실하다. 개헌안의 경우는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배보윤 전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개헌안이 설령 통과돼도 위헌이 될 것”이라면서 “대통령안이라고 해서 청와대에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고 대통령 비서 업무도 아니다. 대통령안은 국가를 대표하는 행정부에서 만들고 반드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개헌안 설명도 민정수석이 아니라 법무장관의 소관”이라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요즘 공무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청와대 입만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행정부처 다 제쳐놓고 청와대 비서실에서 다 할 거면 공무원 수십만 명이 왜 필요한가. 각 부처가 실무를 진행하면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스크린(걸러내는)하는 역할을 하는 거다. 청와대 참모들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뽑힌 분들이니까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그런 분들이 실무적인 일까지 다 진행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골적인 청와대 주도 정치에 대한 반발도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3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검찰이 제외되고 있다면서 청와대를 겨냥한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이날 문 총장은 “관련 기관과 협의도 안 하는 게 바람직한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조정안은 조국 수석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주도해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분야에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패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월 원내대책회의에서 “‘김동연 패싱’ 문제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라면서 “비전문가인 청와대의 실세들이 문제다. 세법 개정부터 시작해 일자리 정책, 부동산 정책 등 핵심 과제마다 청와대와 여당이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섭 의원은 현재는 김동연 패싱이 해소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예를 들어 경제 분야 논의를 해야 하는데 UAE 순방에 김동연 부총리가 안 가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갔다. 경제 정책도 여전히 청와대에서 주도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참모일 뿐인데 장관들을 세워놓고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면서 “청와대 참모들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분야에서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실세로 군림하며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문 특보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체제 선전 수단으로 쓴다면 그렇게 하도록 놔두면 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군사주권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주한미군에게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 등의 발언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청와대는 문 특보가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해임은 하지 않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문 특보에 대해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상대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며 “개탄스럽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 책임자인 송 장관은 문 특보를 공개 비판했다가 청와대로부터 엄중주의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청와대는 3월 28일 남북정상회담 자문단에 문 특보를 포함시킴으로써 여러 논란에도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문 특보가 문제를 일으키면 개인 의견이라고 하면서도 특보에서 자르지는 않고 오히려 정상회담 자문단에 포함시켜 힘을 실어줬다. 미국은 문 특보의 발언이 우리 정부의 본심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미 관계에 분명히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도 결국 문 특보 말대로 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조국 수석)가 발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다”라고 답했다. 문정인 특보에 대해서는 “그 분은 외곽에 있는 분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있는 것뿐”이라며 “그 분의 입장은 정부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문 특보의 의견대로 안보 정책이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사후의 평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 외에도 다른 사례들에 대해서는 “이미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질문하는데 답변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