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제’ 이인제·‘총리 낙마’ 김태호·‘텃밭 패배’ 김문수 콜…친박 청산 내세우고 친박 데려와 논란 가중
자유한국당은 ‘올드보이’ 비판론에 맞서며 ‘올드보이’들을 영입했다. 이런 상황과는 모순되게 백보드에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경남도지사 후보 추대 결의식에서 김태호 경남도지사 예비후보가 인사말을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일요신문] 이인제 전 의원·김태호 전 최고위원·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 세 사람이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후보군으로 영입됐다. 이들은 각각 ‘끈질긴 생명력’, ‘거침없는 언행’, ‘노동운동의 신화’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자신만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인물로, 홍준표 대표는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경남지사·서울시장 승리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치명적인 ‘한계점’이 존재한다. 바로 ‘올드보이’라는 점이다. ‘오랜 친구’로 포장하고 있지만 유권자들에겐 ‘한물간 친구’라는 이미지가 더 강한 얼굴들이다.
지난 2일 홍준표 대표는 이인제 전 의원에게 충남도지사 출마를 요구했다. 이완구 전 총리와 이 전 의원을 놓고 오랜 기간 저울질을 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이 자리에서 홍 대표는 “이인제 후보는 충청도가 낳은 가장 큰 인물”이라며 “7선 의원(실제는 6선 의원), 경기지사, 노동부 장관에 대선도 두 번이나 출마했던 분”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올드보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이 전 의원은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소개로 1987년 13대 총선에 당선되며 40세의 나이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초선 당시 노무현·이해찬 당시 국회의원들과 ‘5공 청문회 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1993년에는 최연소 노동부 장관을, 1995년에는 경기도지사를 지내며 자신의 ‘젊은 피’를 과시했다.
그의 정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이 전 의원은 15대 총선 단 한 번을 제외하고 13대부터 20대 총선까지 줄곧 당선돼 정치계의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에게 붙은 별명은 ‘피닉제(불사조Pheonix와 이인제의 합성어)’다.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정당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그의 행보에 붙은 조롱 섞인 별명이다.
이 전 의원이 처음 정당을 옮긴 것은 제15대 대통령선거 때다. 그는 당시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이회창 당시 후보와 함께 출마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당선되고 이 전 의원은 고배를 마셨는데, 이 전 의원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경선 결과에 불복하며 신한국당을 탈당해 국민신당 소속으로 출마해 의미 있는 득표율을 거뒀다. 하지만 신한국당 동료들로부터는 ‘배신자’ 낙인을 받게 됐다. 이것이 그의 첫 ‘철새 정치’의 시작이었다.
이 전 의원은 정치 입문 후 총 16개의 당적(당명 변경 포함)을 가졌다. 게다가 이 전 의원은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서 보수와 진보, 이념의 벽마저 자유롭게 넘나들어 철새 비판을 받아 왔다.
김태호 전 최고위원은 5일 “경남의 오랜 친구 올드보이 김태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올드보이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홍준표 대표는 “그럼 김경수 민주당 의원(경남지사 예비후보)도 올드보이 아닌가. 새로운 인물이 아니지 않느냐”며 “우리는 김태호라는 ‘큰 인물론’으로 갈 것이다. 지난해 탄핵 정국 속에 치러진 대선 때보다 선거 환경도 훨씬 좋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전 위원은 2004년 경남도지사를 지냈고, 이후 MB정부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며 ‘친이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당시 국회에서 열린 국무총리 후보 청문회에서 ‘정치자금 10억 원 대출’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돈 없으면 정치하지 말란 말이냐”며 큰소리 치며 대응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날 이 발언을 비롯해 정무적 평가와 도덕성에 대해 여야 의원들은 호된 질타를 했고, 결국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도 이를 막아주지 못해 중도하차하게 됐다.
총리 후보 하차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듯 보였으나, 18·19대 총선 때 당선됐고, 2014년에는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며 다시 보수 정당의 주요 인물이 됐다. 2015년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하며 청와대와 마찰을 일으키던 때에는 김 전 위원이 유 전 원내대표를 집요하게 공격하며 친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종용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은 이번 경남지사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는 김경수 의원과 6년 만에 ‘리턴매치’를 벌인다. 19대 총선(경남 김해시 을)에선 김 전 위원이 김 의원보다 약 4% 앞서 당선됐고, 김 전 위원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김 의원이 김 전 위원의 지역구를 차지하게 됐다. 그런 두 사람이 이번에는 경남지사직을 두고 혈투를 벌이게 되는 셈이다.
2017년 5월 30일 이인제 자유한국당 전 최고위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제19대 대선평가와 자유한국당이 나아가야할길”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서울시장 후보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나선다. 홍 대표는 5일 “(서울시장 후보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고, 김 전 지사는 10일 서울시장 선거 출마선언을 앞두고 있다.
김 전 지사는 1970년대부터 약 20년간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알려 왔으나 정치에 입문하며 운동권의 색을 버리고 보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부에선 이를 보고 ‘운동권의 변절자’라고 비난하기도 했으나, 4선에 걸친 국회의원 의정활동과 경기도지사를 큰 탈 없이 수행해 비교적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도지사를 두 번 지낸 이후 그는 20대 총선에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김부겸 의원과 승부를 벌였다. 한때 대선을 노렸던 그가 험지도 아닌 대구 ‘안방’에서 출마해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금배지를 노렸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김 전 지사는 62.3% 대 37.7%라는 큰 차이로 김 의원에게 패배했었다. 이 정도면 재기 불능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김 전 지사는 한동안 정치권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올드보이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얼까. 단순히 나이가 많고, 선거에 출마한 전례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과거 선거에서 유권자의 외면을 받은 바 있고, 그 후로 표심이 더 악화된 데 그 까닭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특히 이들은 ‘친박계(친박근혜계)’라는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은 향후 유세전에서 큰 핸디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홍준표 대표는 친박계를 대거 청산하겠다며 친박계를 대거 ‘숙청’한 적이 있다.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서청원 의원과 유기준 의원 등 현역의원 4명과 원외당협위원장 58명 등 총 62명을 물갈이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친박계라 볼 수 있는 올드보이들을 공천해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조롱마저 받고 있다. 이런 평가들이 선거에서 상대를 공격할 좋은 소재가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과거 회귀형 공천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로도 비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마저 적지 않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친박 청산’을 외친 홍 대표도 별 수 없던 모양”이라며 “세 후보(이인제·김태호·김문수)는 법정에 세워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한 자기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하고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벌써부터 날을 세우고 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당 소속 전 최고위원은 “반(反)혁신, 반개혁이다. 망한 새누리당의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올드보이들의 선거판에는 신선함이 없다. 진부하고 쇠락한 구태 전략”이라며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비전을 보는데, (지금의 한국당에는) 관심이 없다”고 일갈했다.
한 전직 의원도 “가죽을 벗기는 아픔으로 쇄신하는 조치가 필요한데, (지금 한국당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미래를 보고 절박하게 해도 될까 말까인데…”라면서 “(선거에서는 후보의) 얼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 인물이 추천됐는지 그 과정의 민주성이 중요하다. (올드보이 후보들을) 국민들이 납득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