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이익 위해 모인 집단의 속성 드러나”
지난 3월 29일 검찰 조사에서 ‘문고리 3인방’이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증언을 하며 20년의 충성심에 균열이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충신이었던 이들은 왜 입을 열었을까. 왼쪽부터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전 비서관. 연합뉴스
문고리 3인방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박 전 대통령과 연을 맺었는데, 그 연결고리에는 최순실-정윤회 부부가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는데, 이때 박 전 대통령에게 정책 조언을 해주던 나성린 한양대 교수(전 새누리당 의원)가 평소 알고 지내던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소개시켜줬다. 이때 이 전 비서관의 면접을 본 인물이 최순실 씨와 정윤회 씨였다.
대구 달성군에 지역구를 둔 김석원 전 국회의원의 비서 겸 운전사였던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김 전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박 전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넘겨줄 때 안 전 비서관도 함께 소개했다. 이때부터 안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수행비서 업무와 지역구 관리를 도맡아서 해왔다.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석사를 마친 상태에서 학교를 통해 비서관 제안을 받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외무고시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친구들이 ‘잠시 그런 경험도 괜찮겠다’고 힘을 실어줘 의원실에 입사하게 됐다. 물론 정 전 비서관도 최순실 씨와 정윤회 씨의 면접을 거쳐 채용됐다.
그렇게 정윤회 씨의 소개로 모인 3인방은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세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나눴는데 정 전 비서관은 메시지를, 이 전 비서관은 정책을, 안 전 비서관은 수행을 맡았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막후 실세 역할을 했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세 사람의 허락 없이는 박 전 대통령과 대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돌면서 이들은 ‘문고리 권력’으로 통했다. 실제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퇴임하는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었다.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이 터지던 때, “문건의 내용은 60% 이상이 사실”이라고 폭로했다가 청와대에 찍혀 물러나게 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현 민주당 의원)은 문고리 3인방에 대해 “그들의 역할은 체계적이었다. 정 전 비서관은 (나머지 두 사람에 비해) 평범한 일을 했으며, 인사 전횡에 관여한 건 안봉근, 이재만은 권력기관 외에 금융기관·공기업 등으로 역할을 체계적으로 나눴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전횡으로 박근혜 정부가 흔들리자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한 새누리당 소속 의원은 2014년 12월 ‘문고리 3인방’의 교체를 주장했다. 그는 “(비서관) 3인방을 포함해 청와대 비서실을 전면 개편해 질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빨리 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또 다른 의원도 “여의도 일대에서 김기춘 비서실장보다 (문고리 3인방이) 대통령과 더 오래, 더 가까이 지낸 (각별한) 관계인 걸로 다 알고 있다. 많은 의원들이 (문고리 3인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이들의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워진 것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다.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이 공개됐을 때만 해도 특별한 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묻혀가는 듯했지만, 최순실 씨가 ‘드레스덴 연설문’을 비롯해 47건의 청와대 문건을 받아본 것이 드러나며 여론의 이목이 자연스레 문고리 3인방에 쏠렸다.
결국 청와대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세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의 몰락과 함께 수감신세가 됐다. 먼저 법정에 서게 된 사람은 정 전 비서관이었는데,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해 9월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재판부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먼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또, “대통령은 부정부패나 뇌물에 대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결벽증을 가졌다”고 박 전 대통령을 적극 비호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11월 재판 피고인 최후 진술에서 “문건 유출에 대해 부인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잘 보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공소사실과 관련된 실수가 있었다”며 “나라와 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당시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던 최순실 씨의 행동들과 연계돼서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정말 통탄스러운 일”이라고 혐의를 시인했다.
나머지 두 사람, 이재만 전 비서관과 안봉근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동시에 자취를 감췄지만, 지난해 11월 뒤늦게 구속되며 문고리 3인방 전원이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됐다. 이때만 해도 문고리 3인방은 청와대의 특수활동비에 대해서만 일부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행방’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난 3월 29일, 정호성·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은 그동안 감춰왔던 그날의 비밀을 검찰 조사에서 털어놨다. 특히 안 전 비서관은 구체적인 상황까지 설명했다. 그는 관저 내 침실 앞에서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수차례 박 전 대통령을 불러 침실 밖으로 나오게 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그동안 최순실 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를 방문한 사실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면서 “우리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말하니 털어놓은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 전경. 임준선 기자
증언의 핵심 단서는 바로 김밥이었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 씨의 거주지가 있는 압구정동 근처의 한 김밥집에서 신용카드로 식사를 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이 전 행정관이 최순실 씨와 동행했을 것이라는 전제로 그의 동선을 파악했고, 그렇게 최순실 씨를 태운 이 전 행정관의 차가 남산터널을 지나 청와대를 향했던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정 전 비서관이 폭로했다. 정 전 비서관은 당시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검찰은 이를 토대로 오후와 저녁 각 1회씩, 그때까지 모인 보고서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보고했다는 증언을 얻어냈다. 이렇게 3인방은 빼도 박도 못 할 정황들에 대해 입을 열었고, 20년의 충성심은 무너져 내렸다.
이들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고 진실을 밝혔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장에선 배신과도 같다. 충신들은 왜 배신자가 됐을까.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의 심경 변화에 대해 “그 사람(박근혜 전 대통령)이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20년 동안 자신이 회사를 다니며 자신이 모신 사장이 감옥에 가고 회사가 망했다. 그 회사에서 과거에 겪었던 일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숨길까”라면서 “그동안 쉬쉬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털어놓으니 죄책감보다는 차라리 마음은 후련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그는 “MB(이명박 전 대통령) 주위에 있는 사람도 (3인방과)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인들이 인정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살길이 생길 여지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자신들이 부정하고 부인해서 은폐될 사실이 아니기 때문인 것도 있다. 또한, 증거가 뻔함에도 다른 얘기를 할 경우 자신들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지금 자신들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법적 부담이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 “굳이 자신들이 박 전 대통령을 보호한다 해도 보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그 경계를 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역시 “정치공동체에는 하나, 정치적 사안·가치·꿈·비전·철학으로 뭉쳐진 집단이 있고 둘, 권력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익을 구현하겠다는 목적으로 뭉쳐진 집단이 있다”면서 “문고리 3인방이 저렇게 실토하면서 이들이 권력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뭉쳐진 집단임이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전 평론가는 “배신이라기보다는 그 집단의 속성”이라며 “재판과정에서 본인의 형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얍삽한 생각까지 해 이와 같이 증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