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 인사들 ‘아웃’은 청와대 개입인가 자발적 정리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4월 4일 서울 성동구 경동초등학교 온종일 돌봄교실을 방문해 정책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최근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한미관계 싱크탱크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 측이 보수성향인 구재회 소장 교체를 요구했고, 로버트 갈루치 이사장이 거절하자 문재인 정부가 한미연구소에 대한 예산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한미연구소의 불투명한 운영이 문제가 돼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예산지원 중단이 결정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자유한국당(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보수 진영 인사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로 규정했다. 장제원 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 실체는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권은 비참한 말로를 맞았던 여느 정권들과 너무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앞서 언급된 사례 외에도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세종-LS 객원연구위원 사임,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의 주미 경제공사 심사 탈락,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방송 출연정지 의혹,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해임 등이 모두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5단체 부회장이 모두 관료 출신으로 채워진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경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해왔던 김영배 당시 경총 부회장이 정권에 찍어내기를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라 더욱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 5단체 부회장이 모두 관료 출신으로 채워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경제단체 상근부회장은 대내외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자리다. 재계에서는 관료 출신이 제대로 정부 정책을 견제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총은 대통령 해외순방 등에서 연이어 제외돼 이른바 ‘경총 패싱’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손경식 신임 회장이 취임한 뒤에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경총은 최근 문 대통령 해외순방에 처음으로 포함됐다.
한 경총 관계자는 “회장과 부회장 교체에 정부 여당이 개입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전후 상황을 보면 그런 의심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느냐”면서 “관료 출신 부회장에게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여당은 찍어내기가 아니라지만 김영배 전 부회장 사건 이후 누가 소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다들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정부에 쓴소리를 해온 소상공인연합회의 회계·노무 내역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힌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정부에 쓴소리를 해 온 최승재 회장을 교체하기 위한 의도가 의심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소상공인연합회가 설립된 이후 중기부가 회계·노무 등에 대해 집중 감사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논란이 일자 중기부 측은 “중기부는 소상공인연합회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으므로 현장점검을 수시로 할 수 있다”며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매년 회계 등에 대해 점검해왔다”고 해명했다. 청와대는 올해 초 중소벤처기업인, 소상공인과 가진 간담회에 유독 최승재 회장만 초대하지 않았다.
미디어 분야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전직 한국당 의원은 “낙선 정치인은 방송 출연이 수입원 중 하나인데 (정권이 바뀐 이후) 작가나 사회자가 ‘왜 박근혜를 옹호하나’ ‘왜 문재인을 비판하느냐’ 면서 매번 대놓고 구박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 비판을 계속하니) 어느 날 피디가 당신 화면 편집하기도 힘들다. 야당도 됐으니까 돌아가면서 나오라고 해서 방송에서 하차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방송에 자주 출연했던 한 북한 전문가는 “특정 진보성향 언론단체가 실세로 군림하며 출연자들을 사실상 검열하고 있다”면서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발언인데 그 단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제재를 가하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전문가는 “일례로 김여정, 현송월을 ‘그 여자’라고 했다고 제재를 하는 식”이라며 “과거에는 김정은을 김정은이라고 불러도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에는 김정은에게 위원장이라는 호칭을 꼭 붙이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또 “탈북자 중에는 예비군, 민방위, 국방부 등의 안보 강연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50% 이상 잘렸다고 들었다”면서 “방송 등에서도 거의 배제되고 있어 다들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안보강연 내용에 대해서는 “내용을 순화시키고 김정은 등 북한 인사들에 대한 호칭을 정확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면서 “국방부에서는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보수단체들은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끊기면서 해산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보수단체 관계자는 “해산 절차를 밟고 있는 보수단체가 이미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공무원들이나 기업들은 우리 단체를 지원하면 정부한테 혼나는 줄 알고 있더라”면서 “다들 몸 사리고 지원을 안 하려고 한다. 기존에 지원을 해주던 기업에 지원 연장을 요청하니 ‘우리 문 닫게 할 일 있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한국당 전직 의원은 “블랙리스트가 없다면서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단체나 개인에 대해서는 대통령 해외순방에서 제외하거나 간담회에 초청 안 하는 등의 치졸한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지 않느냐.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그런 시그널을 보내면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당연히 그 단체나 개인과 거리를 두려 하게 된다. 리스트만 안 만들었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와 본질은 똑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어느 정권이나 초기에는 공무원이나 기업들이 알아서 정책 기조에 맞추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느냐. 그런 것을 정부와 여당이 손을 쓴 것 아니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된 것 아니냐고 한다면 억울한 면이 있다”면서 “전임 정부 사람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것을 봤는데 같은 (블랙리스트) 잘못을 반복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