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눈총 피하고 지분정리로 현금 챙기고 후계승계 사전작업까지…
태광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사옥.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태광은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한 7개 계열사에 대해 내부거래 비중이 50%가 넘는다는 지적과 이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참여연대 시절부터 태광을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며 ”참여연대 시절 당시 태광을 직접 방문해 실무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자산 7조 원대인 태광의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는 그동안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지난해 7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기존의 자산 10조 원 이상에서 자산 5조 원 이상으로 낮아지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태광은 지난해부터 부랴부랴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태광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1월 30일 공정위는 갑작스레 서울 장충동 태광그룹 본사를 찾아 현장조사에 나섰다.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 이은 추가 조사다.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태광에 겨눈 칼끝을 아직 거두지 않았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 측 관계자는 “공정위의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보고 있다”며 “태광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계열사 합병에 나섰는데, 아직은 각 회사가 형태 변화 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내달쯤 돼야 지배구조 개선 결과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비록 태광이 공정위 등의 압박에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나섰으나 한편으로는 이를 계기로 경영권 승계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계열사 합병으로 오히려 오너 일가가 이익을 얻었다는 얘기마저 나오기도 했다.
이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계열사는 ▲세광패션 ▲메르벵 ▲에스티임 ▲동림건설 ▲서한물산 ▲티시스 ▲한국도서보급, 7곳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기준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이 100%에 달한 염색업체 세광패션 지분을 이호진 전 회장은 2016년 12월 태광산업에 매각했다. 이 전 회장은 또 2017년 7월 와인 유통업체 메르뱅 지분을 태광관광개발에 무상 증여했다. 같은 해 10월 서한물산과 동림건설, 에스티임은 티시스에 흡수합병됐다. 이호진 전 회장은 티시스를 사업 부문과 투자 부문으로 분할하고, 보유하고 있던 티시스 사업 부문 1000억 원 상당 지분을 무상으로 증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티시스 투자 부문은 쇼핑엔티와 함께 한국도서보급에 흡수 합병키로 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0일 발표한 ‘그룹별 지배구조 개선안의 내용 및 향후 과제’에서 “일감 몰아주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후 규제 움직임에 따라 이호진 등은 문제되는 사례 대부분을 해소하여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호진 전 회장의 티시스 사업부문 무상증여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경제개혁연대는 “티시스의 경우 이호진 일가가 회사 설립 및 일감 몰아주기로 총 3000억 원가량 이득을 얻었는데, 사업재편을 통해 이 중 2000억 원의 이익은 사유화하고 현재 가치로 약 1000억 원 상당의 티시스 사업부문을 무상증여하겠다는 계획”이라며 “티시스 사업부문의 경우 태광그룹과 일감 몰아주기 거래를 통해 성장한 회사로, 태광그룹과 계속적인 거래관계가 없다면 존속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3자에게 매각할 경우 시장가치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의 아내와 딸이 지분 100%를 소유한 에스티임도 뒷말을 낳고 있다. 두 모녀는 에스티임 지분 100%를 티시스에 매각하며 61억 2900만 원을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1월 30일 티시스의 공시에 따르면 ‘특수관계인에 대한 유가증권거래 현황’ 속 유가증권 매입거래에는 동일인, 배우자, 혈족 1촌과 61억 2900만 원의 매입 거래를 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비록 지분 매각으로 이익을 취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오너 일가의 지분 100%로 설립해 내부거래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거둬온 회사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2008년 설립된 에스티임은 광고대행, 출판·인쇄, 전시·행사대행업 등을 하는 회사로 태광그룹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이 80%에 달하는 곳이다. 에스티임의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을 살펴보면 2013년 85.4%, 2014년 81%, 2015년 79.4%였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총수 일가가 회사를 설립하고 그룹에서 일감을 몰아주다 논란이 되니 처분한 경우인데 여기서 얻은 이득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로 얻은 이득을 회사에 돌려놓는 방안을 검토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태광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이 3세 경영권 승계를 용이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 관계자는 “태광이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통해 한국도서보급을 지주사로 두고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3대 세습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서보급은 이호진 전 회장과 그의 아들 현준 씨가 각각 지분 51%와 49%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주요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 전 회장 일가는 한국도서보급과 티시스를 통해 그룹에 지배력을 행사해왔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아직 지주사 체제 전환을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계열사가 정리되며 지배구조가 단순해지다 보니 경영권 승계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 같은데, 이 전 회장의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고 현준 씨 나이도 어려 경영권 승계를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