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카드로 맹공…여권은 정상회담 변곡점 기대
김 원내대표의 지난 2월 2일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문을 찾아보니 그는 나름대로 분석을 했었던 것 같다. 당시 김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주도하고, 만기친람하며, 일방통행 식으로 밀어붙이는 국정 운영방식”이라고 문재인 정부를 진단했다. 이어 그는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국회 청문회를 통해 검증까지 거쳤음에도,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고 있다. 이처럼 잘못된 국정운영방식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을 펴고자 해도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8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대한민국 헌정수호 투쟁본부를 방문,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 “가즈아~ 특검” 총공세 나선 야권
야권은 특검 카드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특검을 여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회 보이콧을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4월 18일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본관 앞에서 농성 중인 천막(한국당은 17일부터 무기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을 찾아 “검찰과 경찰은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에서 손을 떼야 한다. 특검으로 가지 않으면 한국당은 국회를 보이콧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경이 합작해서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에 특검으로 반드시 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홍 대표에 따르면 구속된 더불어민주당원 김 아무개 씨(필명 드루킹)가 주도적으로 운영했던 느릅나무 출판사의 운영비만 하더라도 너무 큰 숫자이고, 매크로 프로그램이 동원된 컴퓨터를 운영하는 것만 하더라도 8년간 100억 원이 넘어간다. 이 100억 원대의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 홍 대표의 주장이다. 한국당은 헌정특위를 제외한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한 채 ‘댓글조작 진상규명·김기식 황제외유’ 관련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당은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드루킹 파문을 특검 수사까지 연결시켜 민주당이 독주해온 전세를 역전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한국당은 김기식 금감원장 낙마 때까지만 해도 전세를 뒤엎을 정도로까지는 진도가 못나갈 것으로 판단했다. 홍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기식 낙마 영향을 묻자 “지방선거에 약간은 영향을 끼치겠지만 큰 파장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드루킹 파문은 노아웃 주자 만루 상황까지 간 것으로 한국당 사람들은 보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도 특검 카드를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바른미래당은 4월 19일 드루킹의 댓글조작 사건과 관련해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특검을 통해 진상규명을 하겠다”며 검찰을 압박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서 “드루킹이 더불어민주당의 온라인 핵심 책임자라는 정황이 있다”며 “검찰은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에 나서야 한다. 만약 검찰 수사마저 축소, 왜곡, 지연되는 기미가 보이면 부득이하게 특검과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여권, 지방선거 전선 빨간불
더불어민주당은 초비상이 걸렸다. 드루킹 파문이 잦아들기는커녕 그 파장을 키우면서 지방선거로까지 영향을 미칠 조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남지사 후보로 단수공천이 확실시되던 김경수 의원이 4월 19일로 예정됐던 경남도청 앞에서의 출마선언을 취소한 뒤 같은 날 국회 정론관에서의 출마 선언으로 대체했다. 드루킹 파문이 지난 대선은 물론, 2012년 대선 과정에 대한 공세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김 의원이 출마선언을 일단 주저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에서는 출마선언 취소가 결국 출마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출마 포기 선언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단 김 의원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김 의원은 “정쟁 중단을 위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필요하다면 특검을 포함한 어떤 조사에도 당당하게 응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게 떳떳하니 물러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경남지사 선거에 불출마할 경우,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을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어 출마를 강행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김 의원이 출마를 강행했지만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선에 일정 부분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당 안팎의 우려가 번지고 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에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민주당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텃밭이었던 부산시장과 경남지사, 울산시장 자리를 한꺼번에 거머쥔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드루킹 파문이 PK 민심 이반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PK 선거 전망에 대해 확신 상태였다. 새해가 밝자마자 지난 1월 23일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의 청와대 오찬 회동은 이러한 정부 여당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 행사였다.
“부산 경남 울산에서 이기면 우리가 지방선거에서 이기는 것” “경남 동부 지역(창원·양산·김해 등)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경남 서부 쪽도 좋아지고 있다” 등의 발언이 참석자들 입에서 잇따라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지만 민주당 세력이 약한 PK에서 이번만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해설이었다. 응답률이 낮긴 하지만 여러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서도 PK 싹쓸이가 가능하다는 수치가 최근까지 잇따라 나오면서 민주당 관계자들은 한껏 고무됐었다.
하지만 PK 민주당 바람의 기수였던 김경수 의원이 드루킹 암초에 걸려들면서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드루킹 파문이 PK뿐만 아니라 이번 지방선거 전체의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도 민주당을 몹시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더욱이 김 의원이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서 문 대통령이 나섰던 2차례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 깊이 개입했다는 부분은 분명 민주당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야권의 공세가 쏟아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선거는 바람이다. 평소에는 이성적으로 정치판을 바라보던 유권자들도 선거가 닥치면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그래서 바람이 무섭다는 것인데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김기식 바람에다 드루킹 바람까지 닥친 것은 분명 민주당에 좋지 않은 징조다.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독주한다는 인상을 너무 많이 줬다. 이 바람은 결국 정부여당의 일방 독주가 스스로 불러온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불 꺼질까 번질까
청와대와 여당은 드루킹 파문에 대한 적극 진화에 나서고 있다. 특검 수용 역시 절대 불가라는 방침을 분명히 하는 중이다. 우선 청와대는 매우 강경한 입장이다. 해명은 하지만 과도한 정치 공세와 누명 씌우기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4월 19일 출입기자들과 만나 ‘야권의 특검 요구를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는 4월 18일엔 김의겸 대변인 명의로 댓글조작 사건에 대한 첫 공식 논평을 내고 “의문 제기 수준을 넘어서서 정부·여당에 흠집을 내거나 모욕을 주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사건 성격을 규정했다. 청와대는 또 “검찰과 경찰이 조속히 사건의 전모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사실상 특검 요구를 일축한 바 있다.
지난 대선 경선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김 아무개 씨(필명 드루킹)가 주도한 조직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을 격려하는 장면이 영상으로 찍히는 등 이들을 챙겼다는 말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4월 19일 “청와대에서 말할 것은 없다. 대응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민주당은 ”특검 요건이 안된다“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4월 18일 한 방송사 토론회에 나가 ”드루킹 사건에 대해선 저희가 고발자이며 피해자도 저희“라며 ”요건도 안 되는 것을 갖고 특검을 하자는 것은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우 원내대표는 특검 요건과 관련, “특검을 하려면 범죄 사실이 명시돼 있어야 하는데 범죄가 전혀 드러난 바 없다. 특검 임명에는 수사대상자, 범죄사실, 특검수사의 필요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범죄사실이 없다. 그런데 무슨 특검을 하자고 하나. 특검 발동요건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4월 27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이 드루킹 파문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가 도출될 경우, 드루킹 파문이 여론의 관심대상에서 벗어나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할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자유한국당 한 현역의원은 “서로의 노림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드루킹 파문을 남북정상회담에 묻혀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큰 이슈가 되겠지만 정상회담 이후까지 드루킹에 대한 진상을 계속 밝혀나가는 작업을 하고 특검도 반드시 관철시킬 것”이라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