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받아도 그룹 지배력 끄떡없어…불매운동 할수록 타격은 오너보다 직원에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9월 19일 자택을 회사 자금으로 수리, 개축했다는 혐의로 소환돼 청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지분율 30%, 경영권 철옹성
조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의 중심인물은 조 회장의 두 딸인 조현아 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그리고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다.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은 조 회장이 17.84%, 조현아 전 사장이 2.31%,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2.34%, 조현민 전 전무가 2.3% 보유하고 있다. 조 전 전무는 미국 국적자여서 조 회장 지분을 상속받기 어렵다. 국토교통부 해석에 따르면 항공사업법상 외국인은 사실상 지배주주나 임원 자격이 없다. 조 전 전무가 국적 회복을 시도해도, 위법이 확인되면 정부가 불허할 수 있다.
조현아 전 사장은 항공보안법 위반 등으로 집행유예 중이지만 3년이 지나면 경영 참여가 가능하다. 조원태 사장은 법적 제약이 없다. 조 회장 경영권을 조 사장이 물려받는 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 재계 관계자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가 있은 직후인 2008년 이건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구조조정본부도 해체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여전히 경영 일선에 남았다. 이 회장의 영향력도 여전했다. 설령 조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 형식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이사회도 완전 장악
한진칼과 대한항공 이사회도 조 회장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한진칼은 6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3명이다. 김앤장 변호사인 조현덕 사외이사는 6년째 근무 중이다. 한진칼 이사회에는 소위원회도 없다. 주요 경영사안, 감사와 관련된 사안, 이사후보 추천에 관한 사항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조 회장 등 3명의 사내이사가 완전히 이사회를 통제하는 구조다.
대한항공도 마찬가지다. 8명의 이사 가운데 5명이 사외이사지만 근무기간이 길어 ‘외부인사’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윤우·김승유 사외이사는 9년째, 김재일 사외이사는 13년째 근무 중이다. 현행 상법에는 사외이사 근무기간 제한이 없다. 이사회 내 소위원회도 사내이사의 통제력이 상당하다. 사실상 이사회 구성 권한을 갖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는 조 회장과 우기홍 부사장이, 실질적인 경영판단을 내리는 경영위원회에는 조 회장과 아들 조 사장, 우 부사장이 포함된다.
# 온갖 수사에도 끄떡없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관세청 등이 조 회장 일가의 일감몰아주기와 불법운송 등을 조사 중이다. 하지만 설령 위법이 발견되고 처벌을 받는다 해도 그룹 지배력에는 영향을 못 미친다. 징벌적 배상제도가 아니면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에서는 대주주가 범법을 저질러도 재산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없다. SK나 한화의 사례에서 보듯 옥중에서도 총수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면서 항공권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반 소비재처럼 불매운동 등으로 경영에 타격을 주기도 모호하다. 항공사별로 노선이 달라 대한항공만 쏙 피하기도 어렵다. 아울러 조 회장 일가 ‘갑질’ 논란에서 피해자들은 주로 직원이다. 불매운동으로 경영에 타격을 주면 직원들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 경영 어려워지면 경영권 흔들릴 수도
대한항공은 2009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2013년에는 5조 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실행했다. 알짜자산을 거의 다 매각해 위기 대응력을 대부분 소진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저금리와 함께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원화강세가 지속되면서 경영이 급속도로 호전된다. 2016년 1200%에 육박했던 부채비율도 지난해 600%대로 떨어졌다. 해외여행객도 급증했다.
그래도 위험 요소는 있다. 최근 금리가 오르고, 국제유가도 가파른 상승세다. 항공기 리스부담과 유류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대한항공의 100% 자회사인 한진인터내셔널이 미국 LA에 지은 월셔그랜드호텔은 변수다. 1조 4000억 원을 들여 지은 후 지난해 영업을 개시했지만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1조 원 상당의 외부 차입으로 지은 호텔이다. 부지를 담보로 제공했지만 대한항공의 지급보증도 제공됐다. 호텔 부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대한항공이 빚을 대신 갚아야 한다. 적자가 지속되면 큰 부담이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동부제철이나 현대상선, 한진해운의 경우처럼 채권단 지원이 이뤄질 경우 경영권 박탈 또는 사재출연 압박이 가능하다.
# 비장의 무기 준비하는 정부
정부는 최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개정 검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에 대한 정부 입장이 담겼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으로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총수 영향력 밖의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한다. 감사의 경영견제 기능도 강화된다. 재계는 경영간섭 또는 경영효율 저하, 투기자본의 도전 등을 이유로 강력 반대하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가 관건이다. 정부와 여권의 국정 추진력이 높아지면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