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즉위’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이번 ‘강제즉위’가 이 부회장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다. 사실상 정부가 이 부회장 일가를 압박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판단을 내놨다. 이 역시 확정되면 이 부회장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1년을 맞이하며 삼성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강도 높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5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지난 1일 공정위는 삼성그룹의 총수를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했다. 고성준 기자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동일인이 바뀌어도 표면적으로 바뀌는 것은 거의 없다. 이 회장이 동일인이면 배우자와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이 관계자로 분류된다. 이 부회장이 동일인이 되면 기존 6촌 혈족과 4촌 인척은 각각 7촌 혈족과 5촌 인척으로 바뀌어, 이들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배우자가 없다. 관계자 범위 변경에 따른 영향이 미미하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태 이후 주요 계열사 이사회에서도 빠졌다. 오히려 이 부회장은 2016년 삼성전자 등기임원에 올랐다. 새삼 이 부회장이 동일인이 돼도 실제 의사결정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 셈이다
#JY, 금융계열사 지배주주 심사 받아야
하지만 금융으로 범위를 넓히면 동일인 변경은 치명적일 수 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금융위원회(금융위)에 금융회사(보험 제외) 최대주주의 자격심사 권한을 부여한다. 대상은 최종적으로 최상위에 있는 최대주주 1인이다. 순환출자 구조에서는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이 될 수 있다.
현재 삼성 금융은 삼성생명을 통해 다른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삼성생명 최대주주는 이 회장이다. 하지만 동일인이 바뀌면 삼성생명 지배주주는 2대주주사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이 된다. 이 부회장이 삼성증권과 삼성카드 최대주주 자격심사를 받을 수 있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금융회사 최대주주가 공정거래법이나 조세범처벌법과 금융관련법률 등을 위반하면 부적격 판정을 내릴 수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종 법적 책임자는 동일인이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사익편취 금지 등의 규제를 위반했을 경우 앞으로는 법적 책임을 이 부회장에게 묻게 된다.
#최순실 재판서 횡령죄 확정되면 치명적
현재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서 일부 횡령 혐의가 인정됐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고쳐 금융관련법령 외에 배임과 횡령 등의 경제범죄까지 부적격 사유로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법 개정이 빨리 이뤄지면 이번 재판 결과만으로 금융회사 지배주주로서의 권한이 제한받을 수 있다.
금융위 자격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여러 가지 제재를 받는다. 가장 강력한 제재는 10% 초과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 금지다. 금지 기간이 최대 5년으로 한정되지만 상당한 타격일 수 있다.
#높아지는 정부 압박1…구두 경고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라고 권고했다. 보험업법을 고치면 28조 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 가운데 총자산(258조 원)의 3%를 초과하는 20조 원어치를 매각해야 한다. 순환출자를 피하려면 삼성물산이 인수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팔고, 그 돈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총자산의 절반 이상이 자회사 지분인 경우 지주회사로 강제전환될 수 있지만, 부채를 늘려 자산을 키우고 지분을 나눠 인수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높아지는 정부 압박2…위협사격
지난 1일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특별감리해 상장 당시 회계처리 위반이 있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1년 설립 이후 계속 적자를 내다가 상장 전해인 2015년 회계기준만 바꿔 1조 9000억 원의 순이익을 낸 것이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를 장부가액에서 공정가액으로 변경해 상장요건을 충족했다. 합작사인 바이오젠이 ‘50%-1주’에 대한 콜옵션을 가져 사실상의 공동경영자인 만큼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라는 논리에서다.
종속회사는 그 손익이 모회사 장부에 지분율만큼 평가된다. 반면 관계회사는 보유지분의 시가로 장부에 반영된다. 비상장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적자 회사였지만, 삼성 등은 개발한 상품 등을 감안해 4조 8000억 원의 가치로 평가했다. 향후 감리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회계처리 위반이 확정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폐지 등을 포함해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주가는 연일 폭락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업가치가 하락하면 삼성전자 지분 매입에도 ‘빨간 불’이 켜질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