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뜰 날’ 기다리며 고군분투
지난 2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재판 1심 선고가 열리는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최준필 기자.
롯데는 지난해 2월 우리 정부에 사드 부지를 제공하면서 중국의 ‘사드 보복’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에 진출한 롯데마트의 영업정지를 비롯해 현지 롯데타운 건설 프로젝트 중단 등 그룹 차원의 피해 규모만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2007년 중국 마트 사업에 진출해 마트와 슈퍼 총 112곳을 운영했다. 그러나 사드 보복 이후 영업정지 및 임시휴업 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안았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한중정상회담과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의 사드 보복 해제가 차츰 이뤄져 왔으나 롯데만 제외됐다. 결국 롯데마트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롯데는 지난달 말 중국 화북법인 내 21개 롯데마트 점포를 현지 유통기업 ‘우메이’에 매각했다. 지난 11일에는 화동법인 내 75개 점포 가운데 53개를 ‘리췬’에 매각할 계획을 밝혔다. 롯데쇼핑은 “중국 내 나머지 법인들의 매각을 위해 현지 유통기업들과 지속 소통 중”이라며 “나머지 법인은 현재 지역 유통업체들과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며 조속한 시일 내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재계에서는 롯데의 중국 철수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중국의 사드 보복은 아직 진행 중이다. 미국이 북한을 핵 문제로 인질잡고 있듯, 중국은 한국을 사드 문제로 발 묶고 있다”며 “롯데는 ‘괘씸죄’가 추가돼 희생양이 됐다. 중국 시장에서는 재기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롯데쇼핑은 중국 시장 철수를 본격화하는 한편, 롯데닷컴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또 각 계열사가 운영하던 8개 온라인 쇼핑몰을 롯데쇼핑 산하의 ‘이커머스 사업본부’로 통합하고 온라인사업에 향후 5년간 3조 원을 투입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는 지난 15일 ‘롯데 온라인 전략 설명회’에서 “롯데의 새로운 먹거리 사업은 이커머스”라며 “현재 7조 원 수준인 온라인 쇼핑몰 매출을 2022년까지 20조 원으로 키워 유통업계 1위 자리를 굳히겠다”고 밝혔다.
롯데는 지난해 SK플래닛 11번가 인수를 검토했으나 인수 조건에 대한 입장차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11번가 인수 무산 이후 온라인몰 통합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본다. 롯데의 이커머스 시장 본격 진출에 대해 업계는 “예견된 결과”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의 이커머스 진출 이후 롯데도 준비했을 것”이라며 “출혈경쟁 심화가 우려되지만, 유통공룡의 온라인사업 진출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전했다. 신세계는 지난 1월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 온라인 사업 확장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발표에서도 강희태 대표는 “신세계가 롯데보다 앞서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며 “다양한 채널과 2배 많은 온라인 회원 수를 통해 경쟁에서 우위에 설 것”이라고 언급했다.
재계 일부에서는 롯데의 온라인사업 진출을 ‘총수 부재 리스크’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수장 공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개편 작업 역시 신 회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롯데그룹은 이러한 사업들이 이미 신 회장이 구속되기 전 결정된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온라인사업 진출 건은 회장님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지배구조 개편 작업 역시 지난해 10월 지주사 출범 이후 금융계열사 분리 등 계속 추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멀고 먼 지배구조개선 안정화…호텔롯데 상장·금융계열사 처분 ‘산 너머 산’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이 최근 또 다시 호텔롯데 상장 계획을 밝히며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부상했다. 롯데는 총수 부재 상황에서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여서 실현 여부에 의문이 제기된다. 황 부회장은 지난 10일 열린 10대그룹 전문경영인 간담회에서 호텔롯데 상장과 관련한 질문에 “여건이 되면 빨리 하겠다”면서도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롯데는 계열사 개편 등 순환출자 고리는 해소했으나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한 호텔롯데 상장이라는 숙제를 여전히 남겨둔 상태다. 재계에서는 황 부회장의 발언은 호텔롯데 상장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신 회장의 구속으로 지연된 호텔롯데 상장이 신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됨에 따라 무기한 연기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황 부회장의 말은) 호텔롯데 상장은 주주들이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된 뒤 이뤄져야 하므로 당장은 어렵다는 입장을 전한 것”이라며 “롯데호텔 상장과 지배구조개편을 당장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롯데는 호텔롯데 상장 외에도 금융계열사 지분 처분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비금융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유한 금융계열사 지분은 지주사 출범 후 2년 이내에 정리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지주사인 롯데지주를 출범한 롯데는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 롯데손해보험 등의 지분을 내년 하반기까지 정리해야 한다. 증권업계에서는 롯데지주가 보유한 금융계열사 지분을 외부로 넘기는 방안 대신 롯데물산과 지분 교환을 통해 해소할 것이라고 전망이 나온다. 롯데 관계자는 “2년의 시간이 있고 법 적용 대상이므로 그 전까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리하는 것이 기존 입장”이라며 “다만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분쟁 불씨도 여전하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다음달 예정된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에 본인을 이사로 선임하고, 신동빈 회장을 이사직에서 해임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안건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롯데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동빈 회장을 롯데의 총수로 지정한 것도 신 회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일 신동빈 회장을 롯데의 총수로 지정한 공정거래위원회는 “두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있지만 지분 요건과 지배력 요건을 볼 때 신동빈 회장이 동일인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