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에 고용·근로시간 특례 검토…노동계 반발, 정부 “의견 수렴, 소통 예정”

메가특구특별법은 정부가 6월 말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마련되고 있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권역별 AI 데이터센터, 영남권 피지컬 AI 거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을 지방으로 분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서남권 투자 규모만 900조 원에 육박한다. SK는 서남권에 약 470조 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2기와 1기가와트(GW)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삼성전자는 호남에 425조 원을 들여 메모리 팹 2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미국 앰코테크놀로지는 광주 첨단 패키징 공장 증설에 1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가 별도 특별법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대규모 투자에 필요한 절차를 단축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다. 환경영향평가, 전력·용수·도로 공급,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등이 서로 다른 법률과 부처에 흩어져 있어 한 절차만 늦어져도 착공과 양산 일정이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관련 절차와 지원을 메가특구 단위로 묶어 기업의 투자 집행을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호남권은 반도체 생산시설과 협력업체가 밀집한 용인·평택과 달리 대규모 전공정 클러스터의 기반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 검토 과정에서는 인허가와 기반시설 지원뿐 아니라 고용과 근로시간에 관한 특례도 논의되고 있다.
검토안에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고 외국인투자기업의 파견 허용 업무를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투기업에는 고령자 고용 노력의무와 유급휴일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도 거론됐다. 기업은 필요한 인력을 신속하게 확보하고 생산·투자 일정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하면서도 직접고용과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생긴다.
국가첨단전략산업 연구개발 인력에는 주 52시간 상한을 적용하지 않고 직무 요건을 갖춘 소득 상위 3% 노동자를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대상에서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도 검토됐다. 정부는 일부 제도에 노동자 동의를 전제로 두는 방안을 살피고 있으나 동의 거부에 따른 불이익 금지나 의무 휴식, 별도 보상 등 구체적인 보호장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엄재철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정책부회장은 “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 논의 당시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제 예외에도 강하게 반대했는데 이번에는 기간제와 파견, 근로시간 규제까지 폭넓게 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호남에 신규 반도체 단지를 추진하면서 입지와 산업 기반의 약점을 파격적인 기업 지원 조건으로 보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때도 이런 노동특례를 검토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연구개발과 장비·공정 대응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제한적인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일반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막는 주 52시간제는 유지해야 한다. 특정 지역의 노동자 전반에 근로시간 특례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개발 일정과 성과가 중요한 일부 핵심 연구인력에게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적용하는 데는 찬성한다.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부여하되 초과근로수당 대신 연구 성과에 따라 더 큰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근로시간 상한과 초과근로수당을 동시에 없애면 고급인력의 불만과 이탈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소득 상위 3% 노동자의 연장·야간·휴일수당을 제외하는 방안에 대해 “실제 연구개발 현장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 나오는 사람은 젊은 인력인데 권리 주장에 민감한 노동인력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연구개발직만 예외로 두는 방안도 실제 공정에서는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문 SK하이닉스지부 수석부지회장은 연구원이 개발 업무를 계속하려면 장비·설비와 시스템을 담당하는 협력사 노동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개발 엔지니어가 밤새 근무하면서 장비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지원 인력도 와서 고쳐야 한다”며 “연구개발만 풀리는 게 아니라 그 업무를 뒷받침하는 사람들도 엮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은 정부가 메가특구를 노동규제 완화의 시험대로 삼고 있다며 공동 대응에 나섰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8월 3일 공동성명을 내고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주 52시간 예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정부와 노동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대결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의 면담과 사회적 대화를 요구했다. 직장갑질119와 참여연대도 노동특례가 불안정 고용과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현행법은 원칙적으로 같은 노동자를 2년 넘게 기간제로 사용하면 무기계약직으로 보지만 특례가 도입되면 기업은 같은 노동자를 2년 더 기간제로 고용할 수 있다. 파견 허용 업무까지 확대되면 특구가 창출하는 일자리가 직접고용보다 장기 계약직과 파견직 중심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지역 단위 노동특례가 해당 지역의 임금과 고용 형태를 낮은 수준으로 고착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지역의 노동기준이 악화하면 낮은 임금과 불안정 고용이 확산되고 전국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노동기준은 전국에 적용되는 최저선인데 예외가 반복되면 기준 자체가 무너진다”며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특별연장근로 등 현행 제도로도 연구개발 일정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월 3일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가칭 ‘메가특구특별법’은 다양한 규제특례 방안을 국회, 관계부처 등과 협의하고 검토하고 있는 단계로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바 없다”며 “향후 법안의 내용을 구체화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