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이어 업체도 타깃…횡령·배임·사기 등 각종 범죄 엄단 의지
전국에서 발생하는 각종 가상화폐 관련 범죄에 대한 사건을 전담하게 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정대정 부장검사)는 최근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수사 범위를 단순 거래소뿐 아니라, 가상화폐 전반으로 넓게 확장했다. 특히 검찰은 다음 수사 타깃으로 ICO 추진 업체들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 거래소 전경 사진.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해당 수사 흐름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검찰 내에서 가상화폐 전담 수사를 하는 곳을 금융수사에 밝은 서울남부지검으로 결정하고 난 뒤, 본격적 수사에 나선 상황”이라며 “일각에서는 거래소에 대한 수사를 주목하지만, 지금 ICO를 하는 업체들까지 수사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실제 몇몇 유명 ICO 추진 업체는 대표들의 계좌 등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구체적인 가상화폐 이름은 언급할 수 없지만,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ICO 업체들은 대부분 검찰에서 들여다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귀띔했는데, 업계에서도 업비트와 빗썸 등 거래소는 물론이고 이미 상장한 아이콘과 상장을 앞둔 하이콘, 에이치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상당하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여러 범죄 혐의가 있겠지만,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 사업 자체가 사기는 아니었는지가 관건”이라며 “관련해서 금융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FIU), 금융감독원 등으로부터 자료도 받고 있는 상황인데 일부 수사 검사는 가상화폐가 대한민국의 적이라는 의지로 수사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같은 의지는 정부 전체의 입장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금융위와 금감원, 한국은행 등 다른 금융부처들과 법무부·검찰이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이 차이가 있다는 것. 실제 다른 검찰 관계자 역시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는 가상화폐의 향후 성장 가능성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금융위원회 등과 검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고 풀이했다.
업계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가상화폐 개발 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ICO를 통해 받은 투자금으로 대표가 수억 원에 달하는 해외 명품 스포츠카를 구입하거나, 수백·수천만 원을 유흥비로 쓴다는 등 유용으로 볼 법한 사례가 공공연했다. 대표 계좌와 회사 법인 계좌가 완벽하게 분리된 곳이 거의 없다는 얘기도 나돌았던 상황. 한 코인 개발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수사를 한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이제 본격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ICO 추진 업체들도 검찰 수사 대비에 나섰다. 가상화폐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한 개발업체는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ICO 업계는 올해 2~3월을 넘어서면서 다소 기지개를 켜는 흐름이었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국내 ICO에 대해 ‘일괄적으로 불법’이라고 제한하면서도, 제대로 된 제재를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 없었다.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가상화폐 개발 및 ICO를 추진했다가 지난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끌던 업체들은 누그러든 분위기를 틈타 ICO를 진행했고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천억 원의 자금을 손쉽게 끌어모았다.
대표적인 게 아이콘이다. 데일리인텔리전스의 자회사인 더루프가 개발한 아이콘은 개당 100원 정도로 ICO를 진행해 올 초 최고 1만 3000원까지 올랐다. 최근 업비트, 빗썸 등 국내 거래사이트에도 상장됐고,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아이콘의 성공을 모델로 삼아, 6~8월 사이 코인 상장을 추진하는 곳이 여럿 있는데, 검찰 내사가 실제 수사로까지 확산될 경우 국내 ICO 시장은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편 검찰은 가상화폐 거래소 수사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이달 10일부터 이틀간, 업계 1위 거래소 업비트를 압수수색했는데, 검찰은 업비트가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전산상으로 있는 것처럼 허위로 충전시킨 혐의(사기·사전자기록등위작행사)를 포착했다. 검찰은 고의로 다른 사람의 전자기록을 변조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 등으로부터 지난 1월 가상화폐 거래 실태를 점검해 위법 정황이 큰 사례들과 자료들을 넘겨 받았다”며 혐의 입증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실제 검찰은 지난 4월에도 사기와 횡령 혐의로 코인네스트를 비롯한 2개 거래소의 대표와 임원 등 4명을 구속 기소한 바 있다.
하지만 업비트에 대해서만큼은, 법조계에서도 ‘다소 무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업비트는 빗썸과 같은 보통의 거래소들과 달리, 중계 형태이기 때문. 업비트는 137개 종류의 코인 거래가 가능하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미국 거래소인 비트랙스의 중개업 라이선스만 보유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업비트를 거래소로 봐야 하는지 기준이 모호해, 블록체인협회 가입 여부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 업비트는 대부분의 코인 거래를 자체 서버에 기록정보로만 남길 뿐 코인지갑을 운영해 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운영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빗썸’ 등 경쟁 거래소와의 격차를 벌리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중계업체라는 특성도 반영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설사 그렇게 거래를 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이를 몰랐다고 하거나 그를 통한 피해를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하는데 업비트에 대한 혐의는 거래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며 “사기 혐의로 입증하기까지 검찰이 준비해야 할 내용들이 많아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 같은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 의지에 대해 가상화폐 업계 전반에서는 “검찰이 새로운 산업 성장을 막는다”고 지적도 나오지만, 그럼에도 검찰 수사가 순기능을 할 것이라는 게 사정당국의 판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사채업자들부터 주가 조작 세력들까지, 투기 목적의 자금이 가상화폐 시장에 지난해 초부터 대거 유입됐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이를 손보는 게 필요하다”며 “지금 시장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으면, 향후 더 올바른 성장을 도모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