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도 잇단 부당 대출…“관치금융 탓” 비판도
최근 기업 대출 현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산업은행 관계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여전히 ‘친분’을 통해 깜깜이 대출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 사실 이런 부실한 대출 심사는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대법에서 유죄 확정 판결난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업은행 내 상식 밖 대출 구조를 금방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해명하지만, 일부 산업은행 관계자들은 “계속 낙하산 인사가 오고, 관치금융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향도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특보와 산업은행장을 지내며 금융권 사대천왕으로 불렸던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최근 대법원에서 배임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으로 징역 5년 2개월과 벌금 5000만 원이 선고된 원심이 확정됐다. 지인의 업체가 국책과제 수행업체로 선정되도록 하고 620억 원의 투자압력을 가한 혐의인데, 판결문을 상세히 읽으면 산업은행의 ‘대출 구조’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지난 2016년 9월 19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검찰조사를 받기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명박 정부의 첫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 전 행장. 그는 2009년 11월 지인인 김 아무개 씨가 운영하는 바이오에너지 개발업체 ‘바이올시스템즈’로부터 청탁을 받는다. “바이올시스템즈가 정부 국책과제 수행업체로 선정돼,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청탁이었다. 그는 지식경제부의 신 아무개 과장을 다그쳐 국책과제 수행업체로 선정돼 66억 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산업은행장이 된 뒤에도 바이올시스템즈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남상태 당시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시켜 대우조선해양의 자금 44억 원을 바이올시스템즈에 투자하도록 했다.
국회의원의 청탁도 꼼꼼히 챙겼다. 판결문과 공소장 등에 따르면, 산업은행 당진지점은 기존 차입금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플랜트 업체 우양에이치씨의 시설자금(490억 원) 대출 심사를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A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강만수 행장을 찾아 “우리 지역에 한 회사가 있는데 산업은행 대출 승인이 나지 않아 애로가 있다고 하니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이에 강 전 행장은 비서실을 통해 “괜찮은 회사라고 하니 대출이 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산업은행은 신용등급을 부적절하게 상향 조정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490억 원이 일사천리로 대출된 것은 당연한 결과. 하지만 우양에이치씨는 괜찮은 회사가 아니었다. 결국 3년 뒤 부도가 났고, 대출금 중 274억 원은 회계 상 손실처리됐다.
이 밖에도 강 전 행장은 지인 업체 여러 곳을 ‘부탁’만 받고 대출로 챙겨줬는데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강 전 행장이 자신의 지위를 남용해 뇌물을 수수했다”며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5년 2개월과 벌금 5000만 원, 추징금 884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의 이런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 형을 확정했다.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산업은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출에 대한 엄격한 내부 규정이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은 부당대출이 발생한 것. 지난해 말, 산업은행은 한 지점의 부당대출로 시끄러웠다. 울산지점의 여신담당자가 특정 회사에 대출을 해주는 과정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던 점이 적발된 것.
산업은행 울산지점 여신담당자 A 씨와 지점장 B 씨는 지난 2015년 3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울산지역의 한 중견기업 계열사에 100억 원가량을 부당대출 해준 것으로 산업은행 내부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융통어음을 할인하는 방식을 활용했는데,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기업이 발행하는 융통어음은 상거래가 수반되는 일반어음과 달리 부도처리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산업은행 등은 이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융통어음을 통해 평소 친분이 있던 업체에 대출을 일으켰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크다고 본 산업은행은 감사 적발 후 이들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그리고 울산지검은 이들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산업은행 내 후폭풍은 상당했다. 내부 징계에서 그치지 않고 검찰에 수사의뢰까지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 산업은행도 할 말은 있다. 산업은행 내부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 해당 업체로부터 금품이나 식사 등 향응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들었다”면서도 “아무래도 지역에 거주하며 해당 업체와 수년 이상 거래를 유지하는 경우에 해당 기업의 부실한 구조를 알면서도 대출을 해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오래 인연을 가지고 가다보니, 친분이 생겨 부실한 심사를 거쳐 대출을 하게 해 준다는 것. 특히 산업은행이 기업 대출을 전문으로 하다보니, 금액대가 더 큰 것도 문제의 원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른 국책은행 관계자 역시 “이는 산업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라며 “작은 지점도 수십억 원은 기본이고, 큰 지점의 경우 지점장이 전결권을 가지고 있는 금액이 100억 원을 가뿐히 넘기도 한다. 지점장 권한이 작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실한 대출 발생 여지는 여전히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일반 시중은행들에 비해 대출로 인한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책은행으로서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이번 GM 출자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개별 은행의 판단보다는 정부 계획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익을 마냥 우선시하는 다른 시중은행들과는 판단 구조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앞선 산업은행 내부 관계자는 “부실한 기업이 발생하면 산업은행한테 출자 등의 형태로 지원하라고 하고, 정작 국정감사 때는 ‘왜 지분을 이렇게 많이 들고 있냐’고 다그치면서 최대한 빨리 처분하라고 하지 않냐”며 “대출 구조에 문제가 다소 있지만, 무조건 이익만 쫓을 수 없는 내부 분위기 때문에 연결된 것은 있다“고 털어놨다.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 정책에 가장 먼저 동원되다 보니 대출 심사가 회수 가능성뿐 아니라, 정치권으로부터 외압에도 흔들린다는 것. 역대 산업은행장들이 지속적으로 낙하산 인사가 온 점, 그래서 정치권에 ‘누구와 친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점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강만수 전 행장 역시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3월 고재호 당시 대우조선 사장과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에게 당시 국회의원 7명의 후원금 2800만 원을 내게 했다. 이에 대해 앞선 국책은행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로 은행장을 계속 내리 꽂는 인사 구조나, 만만한 국책은행부터 부실 기업 대출에 동원하는 정부 관행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의 대출 관련 사건 사고는 다른 시중은행들에 비해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