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교수 “홍대 몰카 사건 때문만은 아니야…축적된 분노와 두려움의 표출”
5월 19일 혜화역 4번 출구에서 홍대 몰카 사건과 관련 성별에 따른 경찰의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5월 19일 오후 3시 30분부터 진행된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단일 사안으로 모인 여성 집회 중 역대급 규모다. 애초 경찰이 예상한 집회 인원이 1000명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파가 몰린 것이다. 이날 드레스코드가 여성의 분노를 상징하는 레드였던 만큼 마로니에 공원 인근은 붉은 색 옷을 입은 여성들로 뒤덮였다. 지방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주최 측에서 대절한 버스를 통해 단체로 참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회 참가 인원이 늘어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 방향 4차선이 전면 통제되기도 했다.
시위 주최 측인 다음카페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경찰의 수사 의지가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비판한다. 시위 주최 측은 성명서를 통해 “수천 장의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남성들의 절대 다수가 불구속으로 수사받고 심지어는 재판조차 받지 않고 풀려났음에도, 단 한 명의 사진을 유포한 여성은 강력범죄자와 같은 모습으로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세워졌다”며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기존의 여성이 피해자였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른 양상을 보였다”고 분노했다.
여성단체들은 이번 집회가 특정 커뮤니티가 아닌 여성의 일반적인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오프라인 집회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도 수백 명도 아닌 무려 1만 2000여 명이 모였다. 이번 집회가 특정 커뮤니티가 아닌 여성들의 보편적인 경험을 대변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라며 “그동안 불법촬영 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기 때문에 이번 홍대 몰카 사건도 이렇게 빠르게 처리될 수 있었다. 여성들은 경찰의 신속한 수사가 다른 불법촬영 범죄에도 적용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를 지적하는 움직임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서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5월 11일부터 진행된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5월 24일 기준 41만 명이 서명했다. 이례적으로 빠른 서명 속도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5월 21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과 이철성 경찰청장은 청와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불거진 문제에 대해 대답했다.
경찰은 홍대 몰카 사건과 관련해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1만 9623명 중 남성이 97.5%이며 이 중 구속된 493명 가운데 단 3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남성이다. 홍대 사건의 경우 제한된 공간에 20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범인 특정이 쉬웠던 환경이었으며 피의자의 증거인멸 시도가 확인돼 구속영장 발부가 불가피했다는 것. 홍대 몰카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웠다는 논란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이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운 것은 아니다. 사회적 관심이 크다 보니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불가피하게 노출됐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일부러 성별을 나누어 편파수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홍대 몰카 사건이 기존 불법촬영 범죄와 다르게 다뤄졌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오삼광 호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홍대 몰카 사건의 경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영장 발부를 한 것으로 보이나 불법촬영 범죄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건 이례적인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찰은 언론이 홍대 몰카 사건 피의자를 찍을 수 있도록 일종의 여론몰이를 했다”며 “그동안 피의자의 얼굴이 언론에 노출되는 건 ‘이영학 사건’ 같은 강력범죄에만 적용되던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집회를 여성들의 누적된 분노와 두려움의 표출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수정 교수는 “이번 집회는 단순히 몰카 편파수사만으로 모인 인구는 아니라 데이트폭력, 성희롱 등 누적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분노와 미투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경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모임”이라며 “사이버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경찰인력이 많지 않고 이로 인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쌓인 상태에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처리되는 홍대 사건을 보고 많은 여성이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성인 불법촬영 범죄가 심각한 범죄행위로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도 시위를 촉발한 원인이 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불법촬영범이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5.32%에 불과하다. 지난해 여자 수영 국가대표팀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자 수영 선수들은 모두 무죄를 받았다. 이들 중 일부는 범행을 자백한 상태였다. 건너편 원룸에 사는 여성을 35차례나 몰래 촬영한 50대 남성은 지난달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수정 교수는 “접촉성 범죄가 아닌 불법촬영 범죄는 주요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아 경찰 인사 고과에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은 그냥 관행대로 처리할 뿐”이라며 “경찰이 성별을 나누어 접근했다기보다 홍대 사건의 경우 언론의 관심을 받았으니 빠르게 처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삼광 교수는 “얼굴이 나와야 몰카다, 아니다 등 현행법상 어디까지가 몰카인지 자체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분노가 가중되면서 촬영뿐 아니라 유포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따르면 타인의 동의 없이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사진을 촬영하거나 유포한 경우 처벌받지만 피해자 스스로 찍은 사진을 타인이 유포했을 때에는 이를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5월 23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김포여성상담센터 등의 주최로 국회 본관에서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 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효린 활동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스스로 찍은 촬영물을 전달받아 동의없이 유포, 일반 셀카를 편집하고 합성하는 것,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유포 협박 등의 사례들은 명백히 새롭게 생겨난 ‘성폭력’ 유형이다”이라며 “계류되어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있는 14조 개정안 발의를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