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구의역 사고 2주기 1-‘르포’ 구의역 사고현장을 가다
고성준 기자 =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2주기를 앞 둔 23일 오후 서울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2018.5.23
지난 5월 23일 오후 구의역의 강변역 방면 승강장 ‘9-4’ 스크린도어 벽면에는 아담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안에는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고, 옆에는 누군가 걸어놓은 조화가 나란히 자리했다. 전국철도지하철노동자협의회 등 국내 노동단체들이 김 군을 위해 마련한 ‘추모의 벽’이었다.
이 구의역 ‘추모의 벽’은 강남역, 성수역과 함께 5월 22일부터 김 군의 기일인 28일까지 약 일주일 간 운영된다. 5월 26일 오후엔 구의역에서 그를 위한 추모 문화제가 거행된다.
‘추모의 벽’ 뒤에는 김 군의 사망 사고 2주기를 맞아 찾은 추모객들을 위한 포스트잇 방명록 테이블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벽면에는 이곳을 찾은 추모객들의 메시지 몇 개가 나붙어 있었다. 메시지에는 추모객 저마다의 다짐과 바람이 올곧이 담겨 있었다.
고성준 기자=사고 2주기를 맞아 추모객들이 포스트잇 방명록을 남겼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억울하게 죽어간 청년 노동자를 기억한다.”
“잊지 않겠다. 생명이 우선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겠다.”
“당신의 죽음이 잊히지 않도록 작게나마 노력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컵라면 말고 따뜻하고 배부른 밥 먹으면서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위험의 외주화는 없어져야 한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질 때 즈음 많은 사람들이 열차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김 군이 운명을 달리한 그 스크린도어는 무심하게 여닫음을 계속하며 사람들을 쏟아냈다. 대부분 사람들이 ‘추모의 벽’을 서둘러 지나쳐 갔지만, 누군가는 유심히 벽을 되짚어 가며 관심을 드러냈다.
추모객들을 위한 방명록 테이블.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인근 학교를 다닌다는 한 대학생은 환승 역사 벽면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일부러 ‘추모의 벽’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남은 자들이 더 노력할 것”이라고 손수 적은 추모 메시지를 벽에 붙였다. 이어 “내가 김 군과 같은 97년생이고, 곧 군에 입대한다. 그래서 더 남일 같지가 않다”라며 “2년 전, 나는 재수생이었다. 이미 그때 김 군은 대학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또 주말마다 노조활동도 했다고 들었다. 그게 참 묘하게 나와 비교돼 더욱 맘이 아팠다”고 말했다.
추모의 벽 앞에 선 한 50대 여성은 “벌써 이 사건이 2년이 됐느냐. 정말 몰랐다”라며 “나도 자식이 있는데, 무엇보다 한창 창창한 청년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고 맘이 아프더라. 따뜻한 밥 한 끼라도 해주고 싶은 맘”이라고 말하며 서둘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금 사람들이 마련한 ‘추모의 벽’은 불과 2년 전 김 군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벽’이었다. 이 사건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여전히 파장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음 기사를 통해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이 사건은 사실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고성준 기자=2년 전 김군이 운명을 달리했던 구의역 스크린도어는 지금도 부지런히 사람들을 토해내고 있다.
김 군은 알려졌다시피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 은성PSD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 군은 대학입학 대신 취업을 택했고, 그렇게 들어간 곳이 서울메트로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를 담당하는 하청업체였던 것이다.
사회 초년생인 김 군에게 주어진 근무 조건은 상상 이상이었다. 서울메트로와 은성PSD 간에 맺어진 계약조건은 고장 접수 한 시간 내 무조건 현장 도착이었다. 평일 평균 다섯 명이 50개 이상의 역을 담당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칫 복수의 역에서 고장이 접수 될 경우 큰 사단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매뉴얼 상의 원칙은 ‘2인 1조’ 투입이었지만, 이는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분한 원칙일 뿐이었다.
실제 이날 김 군은 촌각을 다투었다. 이날 을지로4가역, 경복궁역 등에서 또 다른 고장이 발생했고 김 군은 약속된 시간을 지키기 위해 나홀로 수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약속된 시간을 6분 여 앞두고 가까스로 구의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의 역무원들은 수리 및 선로작업이 있을 시, 안전 확보에 신경을 써야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지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김 군은 스크린도어 뒤편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 들어오는 열차를 보지 못해 변은 당하고 만 것이다.
고성준 기자=서울메트로 현판 모습.
당시 사람들이 놀랐던 것은 이 사고가 발생하기 4년 전(2012년 5월 성수역), 3년 전(2012년 1월 성수역), 그리고 불과 9개월 전(2015년 8월 강남역)에 똑같은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고의 원인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서울메트로와 스크린도어 수리업체 간의 원-하청 고용구조를 지목했다. 정부의 경영효율화 요구에 따라 공기업인 서울메트로는 최저 입찰의 외주사업자 선정에만 골몰했고, 하청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회피했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자가 매뉴얼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나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곤 했다. 김 군의 2년 전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김 군이 전화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과 다른 정체불명 마타도어가 나돌기도 했고, 몇몇 보수 언론사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다 수정하는 일까지 전개됐다. 김 군이 처해진 환경보단 안전 불감증이란 노동자의 책임으로 희석시키고자 하는 일각의 시도였다.
과연 김 군이 당시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2년이 지난 지금 이 세상을 바꿔 놓았을까.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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