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된 것 아닌가 vs 약속 안 지키는 게 문제
▲ 지난 14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행정도시 원안추진 촉구 충남 이·통장 결의대회에 참가한 지역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여권은 향후의 여론전이 세종시 정국의 승패를 가를 분수령으로 보고 전방위적인 홍보전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는 원안고수를 주장하는 충청민심을 설득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도 엿보인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한나라당은 민주당과의 ‘여론전쟁’ 결과에 따라 세종시 이슈를 넘어 4대강 문제, 미디어법을 추진해 나갈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결정날 것이다. 나아가 지방선거 이후 임기 중반기를 넘어서게 될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도 전망한다. 여론전 승패의 핵심 변수가 될 충청민심을 중심으로 그 흐름과 추이를 분석해 보았다.
“충청민심은 수정안 발표 이후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정부에 대해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세종시와 관련해 충청민심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충청민심을 설득할 수 있을지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로는 결코 낙관할 수 없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충청민심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성난’ 충청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따라 민심도 달라질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충청민심 변화 낙관론’도 초반부터 벽에 부딪히고 있는 형국이다. 충청지역을 대상으로 지난 12일 실시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에서 ‘세종시에 관한 생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은 69.7%나 되었다.
또한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잇따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충청권 여론은 ‘원안고수’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수정안 찬성’ 의견이 높게 나타나는 전국적인 민심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다.
지난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들여다보면 전국적 민심과 충청권 민심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KRC)의 조사에서 전국적으로 “수정안대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54.2%로 “원안대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해야 한다”는 응답(37.5%)을 16.7% 포인트 앞섰다. 반면 충청권에서는 원안 찬성이 53.0%로 수정안 찬성(40.7%)보다 12.3%포인트 높았다. <중앙일보>의 조사에서도 수정안 찬성이 49.9%, 반대가 40.0%였다. 그러나 대전·충청 지역에서는 수정안 반대가 54.2%, 찬성이 38.6%로, 반대가 15.6%포인트 높았다.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의 조사에서도 수정안 지지가 51.3%로, 반대(34.0%)보다 17.3%포인트 앞질렀다. 그러나 충청권에서는 원안 지지(55.4%)가 수정안 지지(32.8%)를 크게 앞섰다. MBC·코리아리서치 조사 역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전국적으로는 찬성이 47.5%, 반대가 40.5%였으며, 충청권에서는 찬성 36.4%, 반대 51.4%였다. 전국적으로 원안 추진(42.1%)이 수정안 추진(37.4%)을 앞지른 여론조사는 11일 리얼미터 조사(전국 1000명 대상) 한 곳뿐이었다. 이 조사에서 충청권의 원안찬성 의견은 61.6%로 수정안 찬성 의견(32.1%)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 캐리커쳐=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충청 지역에서도 충북과 대전·충남 지역의 민심은 다소 엇갈리고 있다. 충북에 비해 세종시로 인한 직접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충남 지역이 원안 찬성을 더 완강히 고수하고 있는 것. 지난 12월 2일 리얼미터가 대전, 충남, 충북 등 충청도민 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전(74.5%)과 충남(68.4%)이 충북(67.1%)에 비해 원안 찬성 의견이 높게 나타난 바 있다. 하지만 수정안 발표 이후엔 충청권 전체가 원안 찬성쪽으로 재결집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팀장은 이에 대해 “충청권 내에서도 충북지역이 다소 미온적일 것으로 예상하고 정부는 충북민심을 먼저 설득한 뒤 충남지역을 설득하겠다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정안 발표 뒤 지역 정가와 민주당 등 야권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충북 지역 또한 원안고수 의견으로 민심이 다시 모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여권의 ‘충북 각개격파 뒤 충남 약진’의 여론전 전략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불안한’ 징조로 해석된다.
하지만 충청권 민심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충청민심 설득작전 성공여부에 따라 충청민심도 긍정적으로 바뀔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팀장은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모두 충청권에 투자하는 것이다. 선물 내용이 바뀔 뿐 선물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수정안에 담겨질 투자 내용이 좀 더 강화되고 이를 정부가 잘 홍보해 간다면 충청민심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타 지역의 역차별 논란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역으로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위기를 불러오는 상황이기도 하다. 배종찬 팀장은 “여론의 흐름상 수정안 발표 이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위기감이 감지되는 측면도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수도권 지역의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다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원안+α’ 발언 이후 내내 침묵을 지켜오던 박근혜 전 대표가 수정안 발표 전후를 즈음해 ‘원안 고수’ 입장을 재천명한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배종찬 팀장은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으로 친박계와 충청민심이 다시 결집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러한 효과를 박 전 대표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에서 한나라당이 대패할 경우 한나라당 주류 측은 박 전 대표에게 그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크다. 친이계는 충청권을 내놓더라도 수도권을 더 다지자는 전략으로 나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장기적 관점’에서 충청민심을 가져가게 될 박근혜 전 대표가 유리할 것이라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있다. 윤희웅 KSOI 팀장은 “여권을 견제하려는 정권심판론이 작용하는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이 과연 여권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의문이다. 또한 세종시 문제까지 국회처리 과정에서 마찰을 일으킬 경우 미디어법이나 4대강 사업의 관철 과정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민심도 담보 받지 못한 채 충청권에서도 패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충청 민심을 대변하며 신뢰감을 준 박 전 대표가 더 많은 이득을 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