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과잉·중복 인증제로 연맹 배 불리기” 연맹 “축구전문구장 규정 필요해서 도입한 것”
고척스카이돔구장.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고성준 기자
문제가 된 ‘K리그 그라운드 공인 제도’는 지난해 12월 제정돼 올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연맹에 따르면 이 제도의 도입은 국내에 양질의 축구경기장 환경을 공급하고 이를 위해 우수한 인조 잔디 확보와 수준 유지를 목적으로 이뤄졌다.
제품의 인증 시험은 (재)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독점적으로 맡고 있다. 연맹 측이 요구하고 있는 제품 규격에 맞는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시험 수수료만 최저 500만 원 상당을 납부해야 한다. 제품 인증서를 보유한 뒤에도 종별 추가를 원할 경우 각 종별마다 추가 인증료 1000만 원이 요구된다.
제품 인증료는 연맹에게도 납부하도록 규정돼 있다.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 인증 지침에 따르면 KCL로부터 인증을 받은 뒤에도 연맹에 제품 인증료 3억 원을 납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인조 잔디 제조 업체들은 “인조 잔디 시장 규모와 인조 잔디 각 제조업체의 연간 매출액을 감안한다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시험 성적비의 경우는 아무리 많은 항목에 대해 시험을 한다고 해도 1000만 원을 넘기 어렵고, 출장비도 그 이상 소요된다고 할 수 없다”며 “연맹이 요구하고 있는 3억 원에 달하는 인증료는 시험비용과 출장비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책정돼 그 산정 근거가 비합리적이다. 더욱이 이렇게 많은 비용이 대체 어디에 사용되는지도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국내에서 인조 잔디를 전문적으로 제조하고 있는 업체는 40여 곳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전체 매출 규모를 총합해도 연간 약 1000억 원에 그친다. 그런데 이 업체들이 모두 K리그 그라운드 공인 인증을 받을 경우 연맹이 지급 받는 인증료만 120억 원에 이르게 된다. 업계 전체 매출 규모의 12% 상당이 인증료로 소비된다는 것.
업체 측은 여기에 더해 연맹이 무리한 인증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맹은 새로운 규정에 따라 ‘원사 원료 500t 이상, 백코팅 원료 250t 이상 사용 실적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인조 잔디 제품 생산에 필요한 설비인 원사 방사기와 매트 제직기, 매트 가공건조기를 직접 보유할 것을 원칙 조항으로 언급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연간 국내 인조 잔디 수요량은 약 100만㎡ 수준인데 연맹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생산하려면 생산량이 2000만㎡가 돼 수요의 20배 이상으로 뛰게 된다”며 “이는 인조 잔디 제조 분야에서도 극소수의 매출 상위업체만 가능한 수준이고, 나머지 중소기업들이 그 기준에 맞게 생산한다면 결국 도산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즉, 연맹이 새로 내놓은 K 리그 그라운드 인증제가 인조 잔디 제조업계 실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K리그 연맹 홈페이지에 게재된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 신설 목적. 사진=K리그 연맹 홈페이지
기존에 이미 인증제도가 있음에도 무리하게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는 비판도 따랐다. 업체 측에 따르면 국내에서 인조 잔디 제조는 국가 표준인 ‘KS(한국산업규격) 인증을 받아 업체를 운영해 왔다. 축구 경기장용 인조 잔디 제조에 있어서도 ‘FIFA(국제축구연맹) 인증’을 준용하고 있으므로 굳이 새로운 인증 제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 국내 업체 측의 주장이다.
앞선 업체 관계자는 “국내에 도입된 제도가 아예 없다면 또 모를까, 현실과 동떨어진 인증 제도를 새로 도입해 중소 업체들을 고사시키려는 연맹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라며 “피해가 예상되는 업체들 사이에서는 이번 인증 제도가 일부 업체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1월 K리그 그라운드 인증제가 공개된 후, 현재까지 인증을 받은 업체는 단 두 곳뿐이다.
연맹 측은 업체들의 불만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맹 관계자는 “인조 잔디에 대한 FIFA 규정이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며 제도적으로 의무화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구단과 경기장에 적극적으로 준용될 인증의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에 만든 제도일 뿐 어느 업체만을 고려한 불평등한 규제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KS 인증의 경우 학교 생활체육시설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KS 인증제도에 규정된 인조 잔디에는 학교 운동장 이외의 장소, 예컨대 전문 구장 등의 인조 잔디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축구 전문 구장에 적합한 인조 잔디 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새로운 인증 제도를 도입했을 뿐이라는 게 연맹 측의 입장이다.
일부 업체와의 이른바 ‘커넥션’ 의혹과 관련해서도 “(구단 또는 구장에) 특정 업체 사용을 강요하도록 한 바 없으며 그럴 이유도 없다. 다만 규정 신설 전에 이를 사전 공개하거나 의견을 취합하지 않은 이유는 규정을 준용해야 할 업체들과 조율해서 기준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목적을 차치하더라도 이번 K리그 그라운드 인증 제도는 “국제 공인 규정을 벗어난 공인 요건을 신설하거나 공인료도 필요 이상으로 부과할 수 없다”는 대한축구협회의 정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비판과도 부딪치고 있다. 현재 준용되고 있는 FIFA의 규정에 K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가 요구하는 요건들이 전혀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
이에 대해 연맹 측은 “여기서 국제 공인 규정에 ‘벗어났다’는 것은 ‘어긋났다’는 걸 뜻한다. FIFA에서 금지하고 있는 규정을 신설한 것이 아니라 FIFA 품질 기준을 준용하되 우리 환경에 맞도록 수정한 것이지 않나”라며 “연맹에서 무리하게 개별 업체들에게 의무적으로 인증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한편 인조 잔디 제조 업체 측은 “과다한 인증 비용이 왜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업체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도를 만든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연맹 측은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번 ’K 리그 그라운드 공인제도‘는 새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역행하는 제도로 연맹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제정된 ’규제를 위한 규제‘에 불과하다고 판단된다. 연맹 측이 이를 재고하지 않는다면 집단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