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엔 관심 없고 온통 문 대통령 얘기만…보수당은 낡은 소통 방법의 실패”
지난 2월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장 앞에서 한반도기를 든 청년들과 태극기 집회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공동취재단
특히 앞으로 미래를 주도할 20대 표심은 주목할 만하다. 몇 년 전만 해도 투표율이 낮아 얕보던 20대 투표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세대별 투표율 등 자세한 투표율 현황은 집계 중이지만 19대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76.1%로 30대, 40대 투표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18대 대선에서 68.5% 투표율로 40대, 30대에 큰 폭으로 뒤지던 상황과 비교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투표율은 역대급으로 높았다. 지방선거 역사상 첫 번째 지방선거 이후 24년 만에 60% 이상 투표율을 기록한 지방선거였다. 20대 표심은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 일요신문이 만나 본 20대는 각각의 생각이 뚜렷했다. 다만 공정성을 특히 중시했고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를 면밀히 따져봤다.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백영원 씨(가명·27)는 전부 무효표를 만들어 투표함에 넣었다. 투표에는 참여해야 하지만 누군가를 뽑고 싶진 않았다고 말한다. 백 씨는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는데 성남시장으로 출마한 사람이 성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어차피 민주당이 될 것 같긴 한데 다른 쪽에도 투표하고 싶지 않아 무효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강종민 씨(가명·29)는 자유한국당에 투표했다. 그의 인생 최초 자유한국당 투표였다. 그는 그 이유로 공보물을 꼽았다. 강 씨는 “민주당 후보자는 온통 문재인 대통령 이야기밖에 안 한다. 정책도 남북문제다. 지역에 대한 관심도 없고 이해도 떨어져 보였다. 최소한 일정 이상 지역 이해도를 가지면 해선 안되는 말만 했다”고 말했다.
제7회 지방선거에 대한 지상파 방송사 3사의 심층 출구조사 결과로도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20대는 ‘정부 여당에 힘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6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에서 가장 낮았다. 60세 이상에서는 여당 지지세가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20대가 다른 세대와 비교해 여당, 야당에 얽매이지 않고 투표한다고 볼 수 있다.
20대의 시도지사 후보 결정 고려 요인도 다른 세대와 달리 대체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20대의 후보 결정 고려 요인 1위는 30대, 40대, 50대와 달리 ‘후보의 도덕성’ 문제였다. 30대, 40대, 50대는 ‘정부 경제정책’이 1위였다. 60세 이상에서도 고려 요인 1위를 후보의 도덕성 문제로 꼽아 20대와 60대의 기묘한 일치가 엿보였다.
구현모 전 청춘씨발아 기획자는 “현재 20대는 ‘자신은 살기 팍팍한데 다른 사람들은 라인을 잘 타거나 뒷배가 있어 잘 되는 경우’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한다. 강원랜드나 시중은행의 부정채용 등에서 실제로 그런 사례가 드러나며 그 분노감이나 세상을 향한 의심은 더 커졌다”며 “20대가 변함없는 보수정당에 분노하면서도 민주당의 당선자 중 별다른 경력 없이 당선되는 사례 또한 허탈해 하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에 사는 이장윤 씨(가명·25)는 서울시장에 신지예 녹색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그는 투표한 이유로 “서툴기도 했지만, 어쨌건 청년의 정치 참여로 보고 응원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명문대에 다니는 노현주 씨(가명·26)는 자유한국당의 낡은 리더십을 민주당에 투표한 이유로 꼽았다. 그는 “홍준표 얼굴을 보기 싫었다. ‘꼰대’라는 이미지에 딱 맞는 사람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외로 인터뷰해 본 많은 20대에서 민주당으로 투표한 이유를 전적으로 홍준표 대표에게 돌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총체적으로 누적됐다. 하나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시작된 흐름이 최순실 사태를 거치며 대선에서 이어져 왔다. 하나하나 무엇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동진 씨(가명·29)의 말이다. 그는 무엇 하나로 이번 선거를 규정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대선 패배 이후에도 똑같은 인물을 반성 없이 내세워 이미지를 더 망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체로 민주당을 많이 뽑았는데 그 이유도 민주당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차악론’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류선영 씨(가명·28)는 “선거는 차악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고 하는데 이번 경우가 딱 그랬다”며 “민주당에 투표한 이유로 뽑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란 말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20대 유권자들은 대체로 뽑을 사람이 없어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교에서 IT 스타트업에 다니는 이장규 씨(가명·29)는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지지하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자유한국당을 찍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찍을 수도 없어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 바른정당이 계속 그 자리를 유지했다면 뽑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바른정당은 여론조사에서 20대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이들 보수적 20대 사이에서는 대북 문제도 트럼프가 협상에 참여한 이후 마음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진우 씨(가명·28)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크게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미국이랑 협치하는 데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안보, 외교 분야는 지금 정권 방향을 지지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딩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저게 맞나보다’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예찬 정치평론가는 홍준표 대표 등 나이 많은 지도부와 20대의 괴리감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장 평론가는 “한때는 20대 보수화 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20대가 보수성향을 보이기도 했다”며 “이번 선거에서는 정책이 아니라 정서가 핵심이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소통 방법이 너무나 낡았다”고 지적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