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칼날 피해 임기 채워도 리더십 실추로 경영차질 불가피…노조탄압 의혹도 불거져
황창규 KT 회장. 박은숙 기자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5개월간의 수사를 거쳐 지난 18일 ‘KT 정치자금법위반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황창규 회장을 포함해 임원 4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20일 검찰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경찰 수사와 회장교체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KT그룹은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상품권 깡’으로 11억 원의 현금을 조성해 이를 부적절한 로비 등에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상품권 깡은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수수료를 떼고 되팔아 현금화해 뒷돈처럼 사용하는 수법이다. 경찰에 따르면 KT는 직원을 동원해 법인자금으로 비자금 11억 5000여만 원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4억 4190만 원은 19대, 20대 국회의원 99명의 정치 후원금으로, 나머지는 접대비와 골프비용 등으로 사용했다.
황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구속을 면해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회장의 향후 거취에 이목이 집중된다. 황 회장이 사정당국의 피의자가 된 이상 자진사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KT그룹에 정통한 인사에 따르면 정치자금수수 사건에 대해 회사 내부의 구체적인 첩보가 있어 경찰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이 점도 황 회장의 자진사퇴 시나리오에 무게를 실었다.
사건 연루 임원을 전수 조사한 경찰은 황 회장이 사안에 대해 수긍하고 일부 직접 지시 조치를 했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고위 임원들이 황 회장에게 직접 후원 내역을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KT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계열사의 임원 27명이 동원돼 불법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그룹 회장이 이를 보고받지 않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KT그룹 한 관계자는 “다른 계열사 임원들끼리 11억 원을 만드는 데 회장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황 회장이 끝까지 임기를 채울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선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자금 수수자인 국회의원을 수사해야 한다는 데서 부담이 따른다. 자금 수수의 대가성을 밝혀내고 여기에 회장의 직접 개입이나 지시가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과거 검찰이 수사했던 정치자금수수 사건도 용두사미로 끝난 경우가 허다하다. 2016년에 있었던 KT링커스가 노동조합 조합원으로부터 모은 후원금을 국회의원에게 제공한 혐의도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수사기관의 칼날을 피해 임기를 채운다고 하더라도 KT그룹은 황 회장의 리더십 실추로 경영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황 회장이 사건과 선을 그으며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하자 KT 내부에서는 “회장이 자기 살겠다고 부하 직원들을 방관하는 처사”라는 반응도 나왔다. 또 황 회장은 경찰 수사가 시작된 후 참여정부 시절 인사인 이강철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양진호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 양희천 전 대검 사무국장을 줄줄이 영입해 자기방어를 위해 경영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치자금수수 문제 외에 노사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KT그룹 노조는 황 회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있고, 노조 탄압 및 와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철우 KT동지회 의장은 “경영실적은 차치하고라도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회사가 국정농단 사태의 부역자로 거론되고, 불법 정치자금으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된 만큼 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검찰 밥그릇을 경찰이? KT 수사는 절반의 성공 올 초 경찰이 착수한 기업수사 중 가장 이목이 집중됐던 것이 KT그룹 수사다. 검찰의 밥그릇으로 여겨졌던 대기업 수사를 잘해내 경찰의 수사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KT그룹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정치인은 물론 황창규 회장까지 캐스팅이 거물급으로 이뤄졌다. 검찰의 특수수사 사건과 비슷해 여론의 주목을 받기에도 좋았다. 경찰 관계자는 “KT 사건을 시작할 당시 수사권 조정이 현안이다 보니 ‘잘해보자’며 의욕적으로 더욱 몰입했다”고 말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경찰이 특수수사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정치자금법은 범죄혐의를 밝혀내기가 어렵고 그 액수도 11억 원으로 적어 아쉬운 점이 있다”며 “수사권 조정 때문에 전쟁인데 검찰이 구속영장을 기각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20일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돈을 준 공여자와 돈을 받은 수수자가 있는 정치자금수수 범죄 특성상 구속할 만한 수준의 혐의소명을 위해서는 수수자인 정치인 측 조사가 필요하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었음에도 현재까지 금품 수수자인 정치인이나 그 보좌진 등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유로 수사 보강을 지휘했다. 구속영장 신청은 반려됐지만 경찰의 KT수사는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부 제보와 관계자를 전수조사하고 황창규 회장의 개입 여부에 대한 진술을 확보한 것이 일부 성과가 있었다는 것. 수사 대상 국회의원이 여야 가릴 것 없이 골고루 분포돼 있어 정치적 편향 논란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경찰에는 득이다. 국회의원 수사까지 최종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쪼개기 후원금 수사는 검찰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난이도 ‘상’급 수사인 터라 타격이 크지 않다. 김태현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검찰의 수사 보강 지휘대로 후원금 수수자인 의원 쪽까지 수사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