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입지 줄면 영화 선택 폭 넓어져”vs“기존 흥행공식 따르면 상업·획일화 더 부추겨”
일반 기업들이 대거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 기존 영화시장의 판도가 변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영화시장이 더욱 상업화될 것이란 지적도 잇따른다. 연합뉴스.
제약·바이오업체 셀트리온은 최근 영화 제작과 투자·배급업에 뛰어들었다. 2012년 설립된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는 2016년 영화 ‘인천상륙작전’ 투자에 성공한 경력을 바탕으로 현재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을 제작 중이다. 향후 영화 투자·배급업에 나설 계획도 세우고 있다. 포털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웹툰과 스노우는 동영상 콘텐츠 제작 법인을 공동출자·설립해 지난 4월 영화사업부 세미콜론 스튜디오를 출범, 해외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수입해 개봉했다. 네이버웹툰은 또 최근 개봉한 영화 ‘여중생A‘를 제작했으며 올해 안에 영화제작 관련 법인을 별도로 설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밖에 키움증권·사람인HR 등을 자회사로 갖고 있는 다우키움그룹은 2016년 영화 배급사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를 설립해 영화 ‘사라진 밤’, ‘석조저택 살인사건’, ‘대장 김창수’, ‘미옥’ 배급을 맡았다. 국내 화장품업체인 카버코리아 이상록 전 회장은 화장품 브랜드 AHC를 매각해 1조 원을 마련, 영화 투자·배급업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반 기업들의 영화산업 진출은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흥행에 성공한 영화 한 편이 주력사업에서 거둔 한 해 영업이익보다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하면서 일반 기업들이 영화산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개봉한 ‘신과 함께’는 매출액 1156억 원을 달성하면서 2편을 개봉하기도 전에 총 제작비인 350억 원을 회수했다. ‘명량’과 ‘국제시장’은 200억 원가량의 제작비를 투입해 각각 총매출 1357억 원, 1109억 원을 기록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영화가 제대로 성공할 경우 기업들이 거둬들이는 부가가치는 상당하다”며 “이 때문에 대기업들이 영화사업단을 만들어 영화제작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정체돼 있는 영화시장에서 신생 영화 제작·투자배급사의 등장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합뉴스.
신생 영화 제작·투자배급사의 등장은 국내 4대 영화 배급사인 CJ E&M, NEW, 롯데, 쇼박스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영화시장 질서에 큰 균열을 가져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4대 배급사의 전체 영화시장 점유율은 2013년부터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50%에 못 미치는 46.3%를 기록했다. 최근 영화배급 사업 진출 의사를 밝힌 석탄·콘텐츠사업체인 ‘키위미디어그룹’과 시각특수효과업체인 ‘덱스터스튜디오’ 등도 가담하면 4대 영화 배급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신생 제작·투자배급사의 등장으로 투자받을 수 있는 영화 제작자가 늘고 관객들의 영화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란 긍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체돼 있는 시장에 더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면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좁은 시장에서 제 살 깎기 식의 경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일부 기업의 치고 빠지는 식의 영화투자는 오히려 시장질서만 흐트러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CJ E&M이 베트남 현지 제작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롯데가 시네마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롯데컬처웍스를 새롭게 만드는 등 기존 배급사들이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영화업계에선 영화의 질적 하락과 획일화를 걱정하기도 한다. 수익성을 우선하는 대기업들이 다양한 영화에 투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업계 한 관계자는 “새 기업들이 시장에 들어온다 해서 그들의 투자나 경영논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상업·오락성이 더 짙어져 영화의 질이 퇴보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영화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1차 배급은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이뤄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 투자·배급사들이 이를 독점하고 있다”며 “신생 배급사들이 다양한 영화를 선점한다 해도 성공 가능성이 낮다 보니 기존 흥행 공식을 따를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일반 기업이나 사업가들의 영화시장 진출이 더 은밀한 광고 콘텐츠만 양산해 낼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신정아 문화콘텐츠 전문가는 “이들 영화는 최근 종편의 일부 예능 프로그램처럼 브랜드의 상업적 메시지를 대중문화 콘텐츠에 녹여낸 일명 ‘브랜디드 콘텐츠’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해당 콘텐츠는 중간광고나 간접광고(PPL)와 달리 굉장히 전략적으로 짜여져 있어 관객들이 인지·거부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
넷플릭스 국내 진출 본격화…국내 콘텐츠 제작·유통사 ‘발등의 불’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업체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영화 ‘옥자’를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 예능 프로그램인 ‘유병재 블랙코미디’와 ‘범인은 바로 너’를 공개했다. 하반기엔 드라마 ‘킹덤’, ‘미스터 션샤인’과 예능 프로그램 ‘YG전자’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딜라이브, CJ헬로, LG유플러스와 제휴를 맺으며 시장 확대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시장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강화로 국내 미디어산업 등이 해외 자본에 종속되거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통신망 이용에 대한 세금·사용료 지불 없이 수익만 챙겨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반면 국내 플랫폼 사업자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해외 플랫폼의 등장으로 콘텐츠가 제값에 거래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넷플릭스와 제휴 시 국내 콘텐츠를 손쉽게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7월 방영을 앞둔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대표적인 예다. 신정아 문화콘텐츠 전문가는 “넷플릭스가 제작·배급이 일원화된 형태로 콘텐츠의 온·오프라인 경계를 허물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외 자본을 끌어당기며 드라마·영화 구분 없이 다양한 콘텐츠의 가치창출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콘텐츠 제작·유통사들은 자기네끼리 경쟁이 무의미함을 인지하고 시장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