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대 은퇴 만류 ‘메시 의존증’ 호들갑…“조국 대신 스페인 택했다” 불만도 상존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겼다. 16강전에서 만난 프랑스에 3 대 4로 패했지만, 이미 훨씬 전부터 실패는 예견됐다. 남미 지역예선부터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조직력이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도 좀처럼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한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팀워크는 허술했고, 모든 선수들이 마치 리오넬 메시(31) 한 명만을 염두에 두고 뛰는 것 같았다. 이런 ‘메시 의존증’은 사실 10년 넘게 계속되어 온 아르헨티나팀의 고질병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전성기를 지나고 있는 메시가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세대 교체에 실패한 아르헨티나가 과연 메시 없이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 어떤 경기력을 보일지 미지수다. 이와 관련,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아르헨티나 축구와 슈퍼스타 메시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만일 이대로라면 아르헨티나 축구의 미래가 결코 밝을 수 없다고 점쳤다.
리오넬 메시가 러시아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한마디로 오합지졸이었다. 프랑스전에서도 동료 선수들은 공만 오면 메시에게 패스하느라 바쁜 모습들이었고, 공격은 오로지 메시 혼자서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모습은 지역 예선과 조별리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미 예선 최종전이었던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 메시는 헤트트릭을 기록하면서 홀로 고군분투했고,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3 대 1로 승리하면서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메시가 부상으로 결장했던 3월,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는 6 대 1로 대패하는 처참한 경기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아르헨티나의 작가이자 축구 전문가인 후안 사스투라인(72)은 “메시가 없었다면 아르헨티나는 아마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별리그에서도 이런 불안함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아이슬란드(1-1 무), 크로아티아(0-3 패), 나이지리아(2-1 승)전에서 거둔 1승 1무 1패 성적으로 간신히 16강에 올랐던 아르헨티나는 이때도 역시 메시의 컨디션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메시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아이슬란드전과 크로아티전에서는 1무 1패를 기록했던 반면, 그나마 메시가 한 골을 넣으면서 활약했던 나이지리아전에서는 귀한 1승을 거두었다.
사실 아르헨티나의 패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메시 의존증’ 외에도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가령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의 전술 실패 및 선수단과의 불협화음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오히려 삼파올리 감독이 메시의 눈치를 보거나 메시의 말에 무조건 순종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잇따랐다. 이밖에 30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만큼 세대 교체에 실패했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조별리그에서 5실점을 할 정도로 수비 조직력이 붕괴되어 있었다는 점 등도 이유로 꼽혔다.
사실 이런 비난은 그 누구보다도 메시에게 가장 가혹한 것이었다. 스스로 ‘월드컵 징크스’를 갖고 있을 정도로 메시에게 국가대표 유니폼은 늘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실제 메시는 스페인 클럽 리그에서는 수없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이상하리만치 아르헨티나에는 우승의 영광을 안겨주지 못했다. 2004년 FC바르셀로나에서 데뷔했던 메시는 지금까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 8회, 코파 델 레이 우승 5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4회 등 총 29회 우승을 했으며, 발롱도로 4회 연속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대항전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월드컵 무대에서 메시는 한없이 작아졌다. 지금까지 출전한 네 번의 월드컵에서 메시는 통산 여섯 골을 기록했지만, 모두 조별리그에서 터뜨렸을 뿐 토너먼트에서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이는 8경기 무득점이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이다. 메시의 월드컵 최고 성적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이었다.
사실 국가대표로서 메시는 만년 2등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에 이어 2015년과 2016년 코파아메리카까지 3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자 이런 꼬리표는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 사이에서 ‘메시는 현재 뛰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최고일 뿐, 역대 최고는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조국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1986년 조국 아르헨티나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겨준 디에고 마라도나는 현재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
때문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축구 천재’ ‘축구 장인’이라고 불리는 메시가 전성기 때 출전하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32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위해 신이 메시를 내려보냈다고 믿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마라도나 역시 메시를 가리켜 “아르헨티나에 메시를 보내준 신에게 감사드린다”라며 극찬하기도 했었다.
월드컵 우승에 목말라있던 자국민들의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은 모든 훈련 시스템을 메시 한 사람을 위해 맞춰 설계했었다. 이른바 ‘메시 맞춤형’이었다. 가령 메시를 위해서 국가대표팀 훈련소를 특별히 그가 거주하고 있는 바르셀로나로 옮겨왔으며, 삼파올리 감독은 공개적으로 “나는 메시의 말에 순응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미 노장인 하비에르 마스체라노(34)를 국가대표에 합류시키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메시와 바르셀로나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다는 것. 당시 마스체라노는 메시를 위해 뛰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나는 전사다. 월드컵은 나의 마지막 전쟁터가 될 것이고, 그곳에서 전사할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메시의 경호원이라고도 불리는 마스체라노는 현재 중국 슈퍼리그 소속의 허베이 화샤 싱푸에서 뛰고 있으며,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이런 ‘메시 의존증’은 비단 러시아 월드컵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2년 전, 코파아메리카 결승전에서 칠레에 패했던 메시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자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야말로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리오, 가지 마세요’라는 범국민 캠페인이 벌어졌는가 하면, 은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심리학자, 신경학자, 철학자들을 찾아가 심리적 정신적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까지 나서서 “메시는 신이 아르헨티나에 보내준 선물 같은 존재다. 그러니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보다 더 정성껏 돌봐야 한다”라고 호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작 조국의 이런 관심과 기대에 대해서 메시는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메시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오로지 1등만 인정 받는다. 2등은 패배자이거나 겁쟁이일 뿐이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한 메시는 “월드컵과 코파아메리카에서 준우승한 성적을 실패로 간주하는 분위기에 지쳤다”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이런 경우는 없다. 아르헨티나에서만 이렇다. 이기지 못하면 곧장 끌어내리려고 한다. 그로 인한 압박감은 사실 엄청나게 크다. 나는 이런 압박감에서 해방될 때 더 잘 플레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시는 어쩌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참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는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우리 팀은 세계 최고가 아니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라.” 사실 메시가 이렇게 자기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기 때문에 당시 메시의 이런 발언은 아르헨티나에서는 상당한 뉴스거리였다.
한편 전 세계 축구팬들 사이에서 메시는 분명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인정받고 있지만, 조국인 아르헨티나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슈테른’은 말했다. 이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불명예 때문만은 아니다. 메시가 조국을 버리고 스페인을 택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 2004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데뷔한 이래 메시는 줄곧 스페인에서 살았으며, 현재도 지중해 연안의 대저택에서 가족들과 생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향력 있는 스포츠기자인 가브리엘 아넬로는 “메시는 스페인 사람이다”라면서 “그냥 스페인에서 살게 내버려둬라. 우리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원하지도, 또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고 비난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마치 메시가 조국을 배신한 것처럼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13세 때 일찌감치 스페인으로 건너가 FC 바르셀로나 유소년 축구팀에 입단했던 이유가 사실은 아르헨티나의 프로축구 클럽인 ‘리버 플라테’로부터 입단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리버 플라테’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던 메시에게 치료 비용을 대줄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하는 수 없이 메시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르셀로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아르헨티나가 스페인보다 한발 앞서 메시를 청소년국가대표팀으로 등록했을 때만 해도 아르헨티나 사람들 가운데는 메시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메시의 이름 철자도 제대로 몰라 ‘Mecci’라고 잘못 표기하기도 했었다. 때문에 오늘날 스페인 사람들은 아르헨티나야말로 메시를 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메시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것은 오로지 스페인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메시에 대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은 사실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축구가 주는 의미가 유별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부터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축구는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다. 근래 들어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등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축구에 대한 이런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때문에 오래전 회자되었던 ‘현실이 가져다 주지 못하는 행복을, 축구는 가져다 줘야 한다’는 말이 다시금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작가인 사스투리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한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에나 통용되던 진부한 표현이다. 메시에게는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전혀 없다. 메시의 축구 스타일은 전 세계 축구팬들을, 그리고 나를 이미 충분히 기쁘게 해주고 있다”고 말하면서 메시에게 지운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열렬한 축구팬이기도 한 사스투리안은 아르헨티나 축구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당히 염려스러운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축구는 점점 후퇴하고 있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은 일찌감치 무리를 지어 유럽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때문에 청소년들은 최고의 선수들과 더 이상 우열을 다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밖에 그가 지적한 아르헨티나 축구의 쇠퇴 원인 가운데는 폐쇄적인 축구 환경도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 축구팀에는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없다. 프랑스, 잉글랜드, 독일 등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이민온 선수들이 축구 발전을 돕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 축구가 이렇게 침체에 빠져있긴 하지만, 과연 메시가 은퇴 후에 아르헨티나로 돌아갈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어린 시절 고향 친구인 디에고 바예호스는 “메시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둘 모두를 사랑해서는 안되는가? 메시는 로사리오에서 태어났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스페인이다. 왜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는 이게 문제가 되는가?”라면서 “메시가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그것은 오롯이 메시 본인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예호스는 메시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해방감이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메시에 대해 바예호스는 “메시는 아직도 축구공을 좋아하던 어린 소년 시절에 머물러 있다. 메시는 과묵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우리와 있을 때는 옛날처럼 시시덕거린다”라고 말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삼파올리 감독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메시는 월드컵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재미있게 경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메시에게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슈테른’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메시는 다시 한 번 어린아이가 돼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로 거기에 아르헨티나의 성공 열쇠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