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출마 두고 장고…‘교통정리’ 안 되자 친문 당권주자 우왕좌왕
이해찬 의원, 박은숙 기자
“고민하고 있다. 아직 저쪽(이해찬 의원)이 확정을 안 해서….”(A 후보), “내부에선 정리했는데,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고 있다. 내부 역학관계를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B 후보 측 관계자) 7월 초부터 8·25 전당대회 당권 주자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7월 둘째 주까지 출마 선언의 빗장은 열리지 않았다. 후보 등록일(7월 20∼21일)을 일주일 남긴 시점까지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인사는 박범계 의원(재선), 단 한 명에 그쳤다. 대다수 숨죽인 채 친노계 좌장만 쳐다봤다.
이 과정에서 ‘BH(청와대) 불출마 사인설’, ‘이해찬 독자 출마설’, ‘이해찬 합의 추대설’ 등 출처 불명의 얘기만 확대 재생산됐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청와대가 인위적인 개입에 선을 그은 상황에서 이 의원이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전당대회 이슈를 모두 빨아들였다”라며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이슈 선점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운영 뒷받침 명분으로 출마하면, 친노계의 좌장이 전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반대로 불출마 카드를 택해도 세대교체를 위해 용퇴한 원로로 남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자신의 파워를 유감없이 보여준 이 의원이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를 했다는 얘기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 의원이 출마를 고심했던 명분은 ‘21대 총선 중진 물갈이’였다. 민주당 차기 당 대표는 오는 2020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한다. 최다선인 이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 중진 물갈이를 골자로 하는 ‘개혁 공천’의 명분을 쥘 수 있다. 이른바 ‘이해찬식 장렬전사론’이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중진 물갈이를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할 수 있는 이는 이 의원밖에 없는 게 아니냐”라고 말했다. 비토 기류가 엿보인 친문계 내부에서도 ‘이해찬 출마’의 문을 완전히 닫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 일각에선 이 의원의 개혁공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의원 측이 친문계의 합의 추대를 원했던 것도 이런 명분이 한몫했다.
하지만 친문계의 합의 추대 가능성이 점점 작아지면서 이 의원도 움직일 공간이 축소됐다. 다만 다수의 당권 주자들은 이 의원이 출마하면, 스스로 교통정리 대상이 되겠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흘렸다. 친문 직계 인사들은 최근 잇따라 이 의원을 만나 출마 여부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중 일부 의원은 이 의원에게 출마 재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친문 단일화를 추진했던 김진표(4선) 최재성(4선) 전해철(재선) 의원도 ‘이해찬 변수’에 부딪히면서 논의가 올스톱됐다. 단일화 논의 속도가 떨어지자, 김 의원이 먼저 독자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그간 수차례 만난 최 의원과 전 의원은 “둘이 동시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20대 후반기 상임위원장 인선까지 겹치면서 양자의 단일화 논의도 순조롭지 않았다.
민주당 8·25 전당대회가 ‘계파 프레임’에 갇히면서 타 주자들의 움직임도 한층 둔화됐다. ‘포스트 문재인’ 후보군인 김부겸 장관은 ‘대통령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잇따르자 7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 불찰이다. 너무나 송구스럽다. 개각이 있을 때까지 오직 장관으로서의 직분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끝내 불출마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인 설훈(4선)·이인영(3선) 의원의 단일화도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다만 7월 26일 전당대회 컷오프를 실시하는 만큼, 7월 셋째 주부터 본격적인 당권 레이스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후보 등록일은 7월 20∼21일까지 이틀간이다. 이에 따라 송영길(4선)·박영선(4선)·윤호중(3선)·김두관(초선) 의원 등의 움직임도 빨라질 전망이다. 민주당 8·25 전당대회 룰은 ‘대의원 현장 투표 45%+권리당원 ARS 투표 40%+일반 여론조사 15%’다. 당 대표는 1인 1표제 최고위원은 1인 2표를 각각 적용한다. 선출직 대의원 총수는 1만 135명으로 확정했다.
친문계 분화 이후 최대 관전 포인트는 7월 26일 펼쳐질 컷오프다. 당 대표 후보가 4명 이상일 경우 컷오프를 통해 3명으로 압축한다. 친문 직계가 각자도생을 선택한다면, 비문계가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컷오프 3인 중 한 자리는 비문계가 꿰찰 가능성이 크다. 컷오프는 본선과는 달리, 중앙위원회에서 투표한다. 중앙위원회는 대표 등 당 지도부와 현역 의원, 각 지역위원장, 당 소속 광역·기초단체장 등 5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비주류의 반란 표’ 규모는 친문계 분화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2016년 8·27 전당대회 때도 컷오프에서 이변은 일어났다. 호남 표심을 업고 출마했던 송영길 의원이 탈락하고 추미애 대표와 김상곤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 이종걸 의원 등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 의원보다 당 주류와 가까웠던 송 의원의 탈락은 당시 당권 구도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한 측근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 컷오프를 놓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친문계 한 보좌관은 “중앙위원회의 친문계 비율은 전체 당원 대비 높다”며 “분화하든 안 하든 다수파는 친문계”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비문계 한 관계자는 “겉에선 볼 땐 다 같은 친문이라도, 자세히 보면 복잡한 갈래가 있더라”라며 “부엉이 모임도 그런 거 아니겠나. 전당대회 과정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민평련 소속 관계자는 “다수파가 친문계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구심점이 없다는 데에도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며 “예전만큼 결집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물밑에서 분출하는 차기 당 대표의 ‘역동적 역할론’이 당 주류와 비주류 중 어느 쪽에 유리할지도 관심사다. 6·13 지방선거 후 다수의 의원은 수평적 당·청 관계를 주문했다. ‘할 말은 하는’ 지도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최근 의원총회에서 “당·정·청이 고삐를 쥘 수 있도록 정부에 속도감을 내도록 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한다”며 “채찍을 가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력화에 나선 초선 의원들이 7월 12일에도 오찬 회동을 하고 ‘초선 역할론’을 재차 제기한 것도 기울어진 당·청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뜻이다.
전계완 평론가는 “혁신 전당대회가 되지 않으면, 청와대와 주종 관계를 이루는 지도부가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계파 프레임을 벗고 당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전당대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당·청 상황은 녹록지 않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7월 2∼6일까지 5일간 조사한 7월1주차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69.3%)은 두 달 반 만에 60%대로 하락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47.5%로, 지방선거 후 3주 동안 9.5%의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이며, 최종 결과는 9일에 공표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지상 언론인
최고위원 선출 관전포인트는? ‘마이너리그’ 전락…조직력에 ‘성패’ 더불어민주당 8·25 전당대회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최고위원 선출이다. 민주당 최고위원은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견제하는 나침판이지만, 대표 선거와 분리 선출하면서 사실상 마이너리그로 전락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에서 치르는 최고위원 경선은 국민의 관심이 떨어지는 2부 리그”라며 “이 때문에 조직력을 확보한 쪽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밝혔다. 당 주류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민심과 관계없이 지도부에 입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민주당 최고위원은 선출직 5명과 지명직 2명 등 총 7명으로 구성한다. 민주당은 최고위원 후보가 9명이 넘을 경우 7월 26일 예비경선(컷오프)을 통해 8명으로 압축한다. 후보 등록은 당 대표와 마찬가지로 7월 20∼21일이다. 출마의 첫 포문은 재선의 친문(친문재인)계 박광온 의원이 열었다. 박 의원은 7월 10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야권과의 개혁입법 동맹론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박 의원 이외에도 안민석(4선)·유승희(3선)·유은혜·전현희(이상 재선)·김해영·박정·김현권·박주민(이상 초선) 의원 등이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 다만 안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인선 여부에 따라 불출마를 택할 수도 있다. 박 의원 이외에도 안민석·김해영·박주민 의원 등이 친문계로 분류된다. 유승희·유은혜·김현권 의원은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이며, 전현희 의원 등은 손학규계다. 다만 비문(비문재인)계 의원의 한 측근은 “전당대회 구도를 주류 vs 비주류로 나누는 것은 지극히 정치공학적인 발상”이라며 “지금 당에 친문이 아닌 의원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모든 의원이 친문계에 러브콜을 보내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최고위원 매치의 관심사는 이뿐만 아니다. 초선 최고위원 출현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초선 최고위원의 지도부 입성은 2013년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5·4 전당대회 당시 신경민 의원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근 초선 의원들이 대규모 토론회를 통해 세 과시에 나섰다. 초선 최고위원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큰 셈이다. 격론 끝에 부활한 여성 최고위원 등도 정치권의 이목을 끌고 있다. 2년 전 민주당 8·27 전당대회 땐 원외인 양향자 전 최고위원(57.08%)이 재선인 유은혜 의원(42.92%)을 꺾었다. 당시 한 당직자는 “친문계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양 전 최고위원은 대의원 투표(47.63% vs 52.38%)에서는 밀렸지만, 권리당원 투표(66.54% vs (33.46%)에서는 더블스코어 차로 앞섰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