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철 라인’ 일색…끌려 다니면 존재감 사라지고 들이받으면 친문 지지자 이탈 ‘딜레마’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자 경선 TV토론회에서 전해철 의원과 이재명 지사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경기도의회는 전체 143석 중 135석을 민주당이 독식한 상태다. 민주당이 장악한 도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했을 이 지사로서는 의외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경기도의회 관계자는 “당시 기자가 ‘지사부터 도의회까지 민주당이 독식해 우려된다’는 취지의 질문을 해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지사와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불리는 전해철 의원은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대결했었다. 경선이 이 지사의 승리로 끝나면서 두 사람이 대립할 일은 더이상 없을 것 같았지만 이번엔 전해철 라인이 장악한 경기도의회와 이 지사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기도의회 민주당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른바 전해철 라인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다. 현재 민주당 도의원 중 이 지사 사람이라고 할 만한 인사는 사실상 없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 도의원 66명 중 53명이 전 의원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지지선언에 동참했지만 결국 공천에서 탈락한 한 전직 민주당 도의원은 “당시 도의회 당 지도부 차원에서 지지선언 뜻을 모았다”면서 “(전 의원 지지선언은) 중앙당의 뜻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중앙당 차원에서 이 지사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이 지사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낸 이나영 경기도의원조차 지난 경선 과정에서는 전 의원을 지지했었다. 의장단과 상임위도 전해철 라인이 완전히 장악했다. 송한준 도의회 의장을 비롯한 의장단 전체와 당 대표, 상임위원장 12명 중 9명이 전 의원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렸던 인사다.
이에 대해 염종현 도의회 민주당 대표는 “당시 전 의원 지지선언 하셨던 분들이 이번에 재선, 삼선이 됐다. 현재 민주당 도의원 상당수가 초선이라 경력에 맞춰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했느냐는 전혀 따져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임기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 지사 측과 도의회는 이미 몇 차례 충돌했다. 경기도의회 민주당은 남경필 전 도지사와의 연정체제에서 연정예산이라는 이름으로 도지사 고유권한인 예산편성권을 일부 행사해왔는데 이 지사가 연정예산 삭감을 예고하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7월 10일에는 이 지사가 남경필 전 지사 체제에서 운영되던 연정부지사를 없애고 평화부지사를 임명할 예정이었으나, 조직 개편 관련 조례가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부지사를 임명하면 경기도의회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비판에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타당 소속 한 도의원은 “개원한 지 얼마 안 돼 전해철 라인이 이 지사를 견제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면서도 “임기 초부터 자당 소속 지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정예산의 경우는 감사원 감사 결과 전체 900억 원가량 중 130억 원가량이 도의원들의 나눠먹기식 선심성 사업에 쓰인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감사원은 연정예산이 예산편성권과 예산심의·확정권을 구분한 지방자치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기관 주의조치까지 했다. 그런 연정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이 지사 측 발표에 민주당 도의원들이 반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염종현 도의회 민주당 대표는 “연정예산 삭감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삭감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도의회와 협의해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한 민주당 소속 도의원은 “이 지사와 도의회 민주당이 부딪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도의원은 “143석 중 135석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이 지사 거수기 역할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도의회의 역할이 원래 집행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견제할 야당이 없으니 민주당이 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지사와 도의회의 충돌이 자칫 집안싸움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지사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를 뚫고 정책을 추진할 때는 뚝심으로 비쳤으나, 같은 당 도의원들의 반대에도 일부 정책을 강행할 때는 오히려 불통과 독선의 이미지가 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 지사는 무상교복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펼칠 계획인데 일부 복지정책이 같은 당 도의원에 의해 제동이 걸릴 경우에는 정치적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경쟁자들로부터 ‘같은 당 내에서도 비판 받을 만큼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을 폈다’는 식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이 지사는 유권자들에게 친문과 자신의 대결구도가 고착화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 이 지사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면 친문 유권자들까지 끌어안아야 한다”면서 “자칫 전해철 라인과 대립했다가는 친문과의 대결구도가 고착화될 수 있다. 도의회가 반발하자 이 지사가 바로 물러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향후 이 지사가 도의회에 끌려 다닐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이 지사가 도의회에 끌려 다니기만 할 경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어 문제다. 이 지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현재 경기도의회는 143석 중 135석을 민주당을 차지하면서 도의회 의장이나 민주당 대표가 사실상 제2의 도지사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선 전 의원이 도의회에 포진한 자기 사람들을 통해 도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 지사로서는 차라리 여소야대 도의회가 더 나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이 지사 측은 도의회와의 갈등설에 대해 “도민의 선택을 받은 의회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취임 이후 이 지사는 도의회와 협치를 강조하고 있고 매우 원만한 관계로 민선 7기를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도 도의회와 도정에 대해 상시 논의해나갈 계획이며 갈등설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