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내려놓지 않으려 저항…외부인사 부르고 막상 오면 “정치 모른다” 무시
지방선거 참패 직후 한국당 의원들은 무릎꿇고 사죄를 했지만 혁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진 박은숙 기자
한국당은 거의 매년 혁신위 또는 비대위를 띄우며 자체 혁신 작업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혁신안을 발표만 해놓고 흐지부지 넘어간 사례도 부지기수다. 왜 한국당의 혁신은 매번 실패하는 것일까. 과거 혁신위에 몸담았던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그 이유를 추적해봤다.
한 전직 한국당 혁신위원은 “과거에 만들어 놨던 혁신안을 실천만 했어도 당이 이 지경은 안 됐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전직 위원은 “매번 혁신위를 띄우고 혁신안을 만드는데 실천은 안하고 다 창고행이다. 혁신위를 처음 시작하면 과거 혁신위가 만들었던 혁신안들을 먼저 살펴보는데 이런 좋은 안들이 왜 실천이 안 되고 흐지부지됐을까 의아했다”고 말했다.
전직 위원은 “혁신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한국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권 공통의 문제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도 몇 년 전까진 매년 혁신위, 비대위를 띄웠다. 제대로 된 혁신이 있나. 예를 들어 세비 30% 삭감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여야 할 것 없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저항이 상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최근에 한국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도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저항 때문에 혁신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 의원은 “진짜로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을 정도로 망했다고 하는 인식이 공통으로 있어야 하는데 ‘(혁신을 하지 않아도) 잘 버티면, 시간을 끌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이끌었던 혁신위는 지난 3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전혀 관철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국당은 지난 5월 불체포특권을 적극 활용해 홍문종, 염동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도 했다.
차기 혁신위원장도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단정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면 너무 처참하다. 지금은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시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직전 혁신위 류석춘 전 위원장은 “지금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면서 말을 아꼈다. 류석춘 혁신위는 탄핵 사태 이후 최초로 꾸려진 혁신위였기 때문에 정치권의 기대가 컸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류석춘 혁신위에 혁신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혁신위가 매번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당내 기득권 세력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탄핵 사태 이후 당이 위기라고 하는데 정작 국회의원들은 절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이 망해도 자기가 국회의원 배지를 다시 달 수 있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면서 “당 사무처도 관료화되어 있어서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비대위든 혁신위든 적당히 활동하다 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류석춘 혁신위는 8차에 걸쳐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혁신안 대부분이 사장되고 말았다.
이 실장은 “당에서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외부에서 혁신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을 영입해오려고 하는데 막상 외부에서 오면 ‘당신들이 정치를 몰라서 그런다’며 무시하는 반응도 있었다”면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혁신을 하려면 의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받아들여야 하고, 억울한 것이 있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전직 혁신위원은 “일례로 무노동 무임금 하자니까 일부 의원은 ‘국회의원이 회의에 참석 안 한다고 노는 거냐’고 반발했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그렇다. 한국당 의원들의 법안발의 수나 국회 출석률이 다른 정당 의원들보다 낮았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본회의, 상임위 출석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그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할 건지 당 홈페이지에 당당히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옥남 실장은 “혁신위 할 때 초선이나 재선 등 선수별로 의원들과 미팅을 가졌다. 혁신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을 하지는 않았는데 ‘니들이 아무리 해봐야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런 무시를 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새로 출범하는 혁신위도 공천권이 없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끝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사실 그동안 나올 수 있는 혁신안은 이미 다 나왔다. 정말 참신하고 새로운 혁신안이 나오기는 힘들다. 새로 출범하는 혁신위는 혁신안 만들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기존에 있는 혁신안이라도 어떻게 하면 실천하게 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같은 혁신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최해범 사회민주주의연대 사무처장도 구조적인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회고했다. 최 처장은 “국회의원들이 혁신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고 느꼈다. 당 내부에서 힘을 실어주거나 어떤 권한이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우리는 혁신안을 만들어 당에 제출하는 정도였다. 혁신안을 실천할지 말지는 우리가 개입할 수 없었다”고 했다.
최 처장은 정치권의 혁신이 늘 무산되는 것에 대해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주장했다. 최 처장은 “혁신위에서 여러 안들을 발표했고 그중 의미 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언론에서 거의 보도를 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들은 혁신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느냐 마느냐, 누굴 자르느냐 마느냐에만 관심을 가졌다. 가십성 이슈에만 주목했다”면서 “언론이 혁신안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의원들이 그렇게 쉽게 내다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처장은 “새로운 혁신위가 혁신안을 발표하고 한국당이 실천한다고 해서 곧바로 지지율이 급격하게 올라가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혁신은 해야 한다. 이번에도 혁신을 하는 둥 마는 둥 넘어가면 정말 앞으로 기회가 없다. 문재인 정부의 부작용이 점점 나타나고 있지 않나. 1년 정도 지나면 국민들이 새로운 정치세력을 찾게 될 거다. 그때 한국당이 대안으로 떠오르기 위해 지금은 기초를 다지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하게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을 맡았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을 혁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치인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고 비판했다. 김문수 혁신위는 당시 탈세의 온상으로 지적받았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방안을 비롯해 체포동의안 계류 72시간 경과 시 자동 가결,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겸직금지 대상 확대 등의 혁신안을 제시했지만 역시 대부분 실천되지 못했다.
당시 한 한국당 의원은 김문수 혁신위에 대해 “혁신위가 아니라 국회의원 기득권 내려놓기 위원회다. 일회용 쇼에 불과하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김 전 지사는 그런 자당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전 지사는 “불체포특권, 면책특권 없애자고 했는데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개헌해야 한다면서 안 한다. 국회의원 특활비 포기하면 되는데 포기 안한다. 국회의원 보좌관도 너무 많다. 일본이나 독일은 지역구가 우리보다 훨씬 큰데 의원 1명당 보좌진이 2명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9명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소왕국 영주다. 구청장, 구의원, 시의원 공천도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런 거 다 내려놔야 한다. 혁신안이 시행되려면 의원총회(의총)를 통과해야 하는데 의총에서 다 흐지부지된다. 자기 기득권을 자기가 내려놓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지사가 의원 개개인에게 혁신안을 설명할 때는 동의했다가 막상 의총장에서는 김 전 지사를 비판한 경우도 있었다. 고의적인 혁신위 흔들기다. 김 전 지사는 “말로는 다 같은 생각(혁신안에 동의한다)이라고 하는데 (의총에서) 투표할 때는 다 (통과가) 안 됐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보좌관 수 줄이자고 했더니 여야가 합의해야 하는 사안이라 안 된다고 한다. (혁신하지 않으려는) 여러 가지 핑계가 있다. 법으로 안 되면 당 내부적으로라도 규정을 만들어서 줄이면 그만인데 안 한다”고 비판했다.
김 전 지사는 향후 혁신위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혁신위원장에게 공천권에 영향을 줄 칼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성이 없다고 봤다. 김 전 지사는 “차기 총선이 2년 남았는데 어떻게 공천에 영향을 준단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공천권이 없는 혁신위에는 힘이 실릴 수 없고 결국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 한국당 전직 의원은 “정치권의 혁신도 회사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회사도 어려워지면 임금을 깎는다든가, 정리해고를 하려 하지 않나. 그러면 시위를 하고 난리가 난다. 당연히 반대가 클 수밖에 없다. 혁신이라는 게 그걸 이겨내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고 못 이겨내면 망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전직 의원은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한국당이 혁신하지도 않고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는 거다. 그러면 우리나라 정치에 발전이 없다. 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경제를 파탄내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다음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정신 못 차렸다. 남이 못하길 바라지 말고 한국당이 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