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조달, 건설 방식 등 구체적 구상 없이 양향자 예비후보 공약 계승…과거에도 추진했다가 ‘유야무야’
이용섭 신임 광주시장. 이종현 기자
인수위 격이었던 광주혁신위원회는 지난 6월 말 ‘5·18 빛의 탑’ 건립 계획을 정식으로 보고했다. 혁신위에 따르면 빛의 탑은 5·18을 상징하는 518m 높이의 건축물을 세워 정의로운 광주와 역사적 사건을 상징화한다는 구상이다.
상징탑 518m 높이 공간에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공간을, 419m에는 4·19 민주화운동 관련 공간을, 315m에는 3·15 의거 관련 공간을 각각 꾸민다. 갑오농민혁명과 한말 의병 활동 등 의로운 역사적 사건을 위한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또 탑 상부에는 광주의 대표 산업인 광산업을 상징하는 빛의 조명시설도 설치한다. 이와 함께 탑에 광주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공공 와이파이를 구축할 계획이다.
5·18 상징탑 건설 계획은 과거에도 추진됐던 적이 있다. 지난 2005년 광주시의원과 전남도의원 10여 명이 광주에 높이 518m짜리 민주인권탑을 세우자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논란 끝에 계획은 유야무야됐다.
빛의 탑 건설은 당초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 경선에서 이용섭 시장과 맞붙었던 양향자 전 후보의 대표공약이었다. 경선에서 패한 양 전 후보가 공동선대본부장을 맡게 되면서 이용섭 시장이 공약을 계승하게 됐다.
조 단위 예산이 투입될 사업이지만 광주시 측은 아직 구체적인 추진 계획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청 관계자는 “현재 혁신위에서 빛의 탑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큰 틀의 이야기만 나온 것이지 재정마련 방법이나 건설 방식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면서 “이제 시장님이 취임하신 지 이틀밖에 안 되어서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공론화 과정 중”이라고 답했다.
진행된다면 조 단위 예산이 투입될 사업인데 미리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됐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취임한 지 이틀 만에 답을 요구하면 답변이 어렵다. 이 시장은 ‘이 문제는 광주시가 서둘러서 독단적으로 추진할 일 아니다. 시민사회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서 추진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 답변이 광주시의 공식적인 답변이라고 보시면 된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빛의 탑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없기 때문에 최초 양향자 전 후보가 제안했던 빛의 탑 건설 계획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양 전 후보는 지방선거 기간 ‘광주 센트럴파크와 518m 빛의 탑 건립 비전’을 제시했다.
약 1조 4000억 원 정도를 투입해 현재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 부지에 여의도공원 면적 5배 규모의 공원을 만들고, 그 공원에 높이 518m 탑을 세운다는 비전이다. 양 전 후보는 이를 통해 연간 20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전 후보는 “빛의 탑 건립을 통해 3조 5000억 원 안팎의 수입유발 효과가 기대된다”며 “이는 자동차 약 400만 대를 판매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효과다. 고용창출 효과만 41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주시장 선거에서 이용섭 시장과 대결했던 나경채 정의당 전 후보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우리나라 최대 관광지인 제주도를 찾는 연간 관광객 수가 1600만 명인데 빛의 탑을 세운다고 해서 광주 연간 관광객 수가 20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에펠탑을 찾는 관광객도 연간 700만 명 수준이다. 현재 광주시에서는 정의당은 물론이고 녹색당 등 진보정당과 참여자치21 등의 시민단체가 잇달아 빛의 탑 추진계획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있다.
빛의 탑 계획을 최초로 제안한 양 전 후보의 입장을 직접 청취해봤다. 양 전 후보는 우선 잘못 알려진 몇 가지 사실부터 바로 잡고 싶다고 했다. 양 전 후보는 “빛의 탑은 5·18 민주화운동만을 위한 상징물이 아니다. 4·19 민주화운동, 3·15 의거 등 모든 가치를 담아내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제가 이용섭 시장에게 빛의 탑을 추진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제 공약 중 그랜드 디자인 공약이 있다. 그 안에 빛의 탑을 포함해 도시철도 2호선 문제, 어등산 문제 등 20여 가지 제안이 담겨 있었다. 이 시장이 그 중 빛의 탑을 가장 마음에 들어해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전 후보는 연간 관광객 2000만 명 유치 목표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여수나 전주의 경우도 자체 관광 상품을 개발한 후 연간 관광객이 10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결코 불가능한 숫자가 아니다. 전문가들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추정한 수치”라고 주장했다.
양 전 후보는 건축방법에 대해서는 롯데월드타워(건물형)식과 에펠탑(철구조물형)식 건축 방법 중 에펠탑식이 적합하다고 했다. 재정마련 방법에 대해서는 정부기금 60%와 민자유치 40%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 예산은 투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롯데월드타워식 건축은 내부에 여러 상업시설을 둘 수 있어 수익성이 높지만 건축비가 크게 높아진다. 에펠탑식 건축은 수익성이 낮지만 건축비가 적게 들고 공사 기간도 짧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양 전 후보는 “롯데월드타워의 경우는 전망대 입장료가 3만 5000원가량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빛의 탑도 전망대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고 빛의 탑과 함께 조성될 센트럴파크 지하에 대규모 상업시설을 만들고 민자 투자한 기업들에게 운영권 일부를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양 전 후보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해봤더니 투자 의사를 밝힌 곳이 많았다. 아무 비전도 가치도 없는데 대기업들이 투자하겠나. 어느 기업이 투자하겠다고 했는지 말하라고 하면 말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기금 60% 유치에 대해서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인사들과 이야기를 해봤더니 그동안 광주에 예산을 주고 싶어도 줄 만한 사업이 없었다고 하더라. 이번 기회에 광주에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 부지에 빛의 탑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공장을 이전하려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저는 기업인 출신이라 기업 공시자료를 자주 본다. 공시자료를 보면 기아자동차 공장은 어차피 오래 못 간다. 산업 재편이 필요한 시기다. 공장을 이전하는 대신 사업권 일부를 주면 기아자동차로서는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후보는 “이용섭 시장이 이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하다보니 자꾸 논란이 커지는 거 같다. 후보 시절에도 몇몇 시민단체들이 반대를 했는데 제가 직접 가서 설명하니 ‘그런 사업이면 해야 된다’면서 찬성으로 돌아섰다. 제대로 사업 설명을 들어보면 반대하는 분들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경채 정의당 전 광주시장 후보는 여전히 빛의 탑 사업은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 전 후보는 “빛의 탑 공약은 선거 기간 토론회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정책이다. 왜 이 시장이 그런 공약을 계승하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 전 후보는 “양 전 후보가 여수 등을 언급했는데 그런 곳은 해안가이고 이미 기존 관광자원이 있었다. 광주는 제조업 중심 도시인데 빛의 탑 하나 보려고 2000만 명이 오겠나. 롯데월드타워도 그 정도 관광객 유입 효과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나 전 후보는 “경제적인 문제는 일단 제쳐두더라도 518m 탑으로 광주 정신을 기리겠다는 것은 광주 정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전체 사업비가 5조 원에 달하는 아시아문화전당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구도청 건물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 지하에 지은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500m가 넘는 첨탑을 통해 5·18을 기리겠다는 것은 아시아문화전당 지을 때 논의되었던 5월 정신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 전 후보는 “기아자동차 부지를 옮기겠다고 하는데 광주 내에는 마땅한 부지가 없다. 광주를 벗어나면 법인세를 다른 시에 내게 되니 광주시가 손해 아닌가”라며 “국가균형발전위가 광주에 1조 원 가까이 투자할 것이라는 것도 정치적 상상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나 전 후보는 “만약 빛의 탑 건설을 강행한다면 저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단체, 5·18단체들이 연대해 반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매우 큰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