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단체 상실되고 상임위원장 자리 내놔야 할 상황…심상정·김종대 특검 조사 예고까지
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으로 정의당은 참담하다. 당의 기둥을 잃은 가운데 심상정 전 대표와 김종대 의원도 특검 수사에 임박하며 당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심상정 전 대표·윤소하 의원이 7월 23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 이종현 기자
SNS 일부에서는 정의당 지지자들끼리 다툼이 일었다. 심상정 전 대표와 이정미 대표가 노 의원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는 등의 주장도 등장했다. 노 의원은 드루킹 특검을 반대했는데, 심 전 대표와 이 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찬성시켰다는 것이다. 일종의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당초 ‘드루킹 특검’ 통과를 두고 정의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던 것은 사실이다. 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심상정 전 대표는 찬성을, 이정미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는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가 활발하던 지난 4월 24일, 심 전 대표는 정의당 의원총회에서 ‘국회 정상화를 위해 야3당의 특검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이정미 대표는 ‘한국당이 특검을 국회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거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당시 분위기에 따르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3당이 드루킹 특검 및 국정조사를 공동 추진하기로 한 만큼 정의당만 발을 빼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당 내에서도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의원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특검 관련 기조를 유지하면서 상황 타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며 “(여야가) 강하게 대치하는 측면도 있지만, 드루킹 사건 처리 방식이나 방송법 등 쟁점에 대해 접점을 찾을 가능성도 보인다”고 밝혔다. 여기서 ‘기조’란 경찰수사를 우선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드루킹 특검보다 경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의견과 국회 정상화를 위해 처리하자는 의견이 부딪힌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특검 반대는) 노 의원 한 사람보다는 당내의 의견이었다”라며 “특검건이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간 단계도 아니고 검찰에서 수사 시작도 안 했는데, 정치적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입장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왜 드루킹 특검만 하느냐’라는 말도 나왔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등에 대해서도 특검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드루킹 특검을 (무작정)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각 관계자의 말은 서로 엇갈린 부분이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도부 사이에서도 드루킹 특검에 대한 입장이 다른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허익범 특검은 드루킹(김동원) 측으로부터 노 의원에게 불법정치자금 4600만 원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냈고,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 의원은 19일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사실을 부정했다. 이 대표도 “현재 정의당은 노 의원의 말씀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입장에선 ‘믿겠다’고 했으나, 곤란한 상황이었다. 노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의혹이 터진 시점에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정당 지지율이 한국당을 제치고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이하던 정의당에 노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악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정의당 공식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에는 ‘우리가 노 의원을 출당시킬 수 있을까’라는 글이 올라왔다. “만약 불법 정치자금 수수가 진실로 밝혀져 노 의원이 처벌받게 될 경우 우리의 방식으로는 출당조치가 맞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여러 당원들은 이 글의 댓글을 통해 “아니길 바란다”면서도 “사실이라면 노 의원이 스스로 의원직 사퇴 및 당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 시점에 SNS에서도 정의당 지도부가 노 의원의 출당을 논의했다는 주장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은 심 전 대표를 겨냥하며 “노 의원을 내쫓으려 했다”며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의 당 관계자는 “출당 논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지도부에서 출당을 논의했다는 소문의 진원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원들이 출당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에서 노 의원과 정의당은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 의원의 사망 당시 남긴 유서를 통해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라”고 당부했다. 그의 뜻대로 정의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23~25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의당의 지지율은 노 의원 사망 당일인 23일에 9.5%, 24일에는 10.2%, 25일에는 11.0%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올라가는 지지율에도 정의당은 웃을 수가 없다. 정치적 동지이자 당의 간판격인 노 의원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지지율 상승과 관련 질문을 받고서 한숨만 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의당은 국회 원내 교섭단체 지위도 상실된 상태다. 지난 4월,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의석수 각각 6석과 16석을 더해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이라는 이름의 공동교섭단체를 꾸렸다. 교섭단체 구성요건인 의원 20명을 채울 수 있게 되면서다. 그렇게 꾸려진 교섭단체에서 노 의원은 원내대표로 활동하며 2018년 상반기를 숨 가쁘게 달려 왔다. 그러나 노 의원의 사망으로 의석이 한 석 줄면서 자연스레 교섭단체는 해체 수순을 밟는다. 뿐만 아니라, 원내 교섭단체 앞으로 배정된 상임위원장 자리도 반납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무소속인 손금주‧이용호 의원이 평화당에 입당하며 공동교섭단체를 유지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나오지만, 이용주 평화당 원내대변인은 “지금 당장 교섭단체를 재구성하거나 하는 무리한 시도를 할 생각은 없다”고 전했다.
게다가 드루킹 특검팀이 조만간 심 전 대표와 김종대 의원을 수사하겠다고 밝히며 정의당은 또다시 암초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드루킹은 지난해 5월 16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야, 정의당과 심상정 패거리들 너희들 민주노총 움직여서 문재인 정부 길들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내가 미리 경고한다”면서 “지난 총선 심상정‧김종대 커넥션 그리고 노회찬까지 한 방에 날려버리겠다. 못 믿겠으면 까불어보든지”라고 썼다. 드루킹과 심 전 대표, 김 의원 이 세 인물은 지난 2016년 10월 3일 경기도 파주에서 열린 ‘10‧4 남북 정상 선언 9주년 행사’에 함께 참석한 바 있다. 이 행사의 공동 주최는 드루킹이 이끄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과 정의당 고양‧파주 지역위원회 등이었다.
물론 단순히 행사에 한번 함께 참석한 것을 두고 이들의 연관성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지만, 두 의원이 드루킹의 입에 오르내리고 특검 수사 선상에 오른 이상 이미지의 흠집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