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이 제일 중요…자기만의 특별한 채널 개발해 꾸준히 하면 결국에는 빛 보게 돼”
유튜브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유튜버는 어떤 삶을 살까.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콘텐츠를 구상할까. ‘일요신문’에서는 2011년 채널을 개설해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채널 디몽크(Dmonk)를 운영하는 노승균 씨(31)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그는 배우를 꿈꾸다 게임과 IT 기기를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채널을 운영했고 ‘얼리어답터’, ‘더기어’ 등 IT매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채널 구독자는 7월 말 기준 8만 명을 넘겼다. 다음은 일문일답.
IT리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디몽크’ 노승균 씨.
―디몽크라는 이름은 어떤 뜻인가.
“솔직히 말해도 되나. 유치한데, 개와 원숭이인 도기몽크라는 합성어에서 시작됐다. 원래 개라는 동물을 좋아했고, 옛날에 외모가 닮았다고 별명이 원숭이었다. 도기몽크라는 닉네임이 길고 거추장스러워서 줄이다 D, 몽크가 됐다. 사람들이 흔히 ‘디지털몽크’라고도 하는데 별 뜻 없는 이름이다. 약간 아쉬움도 남는다. 더 멋있는 걸로 할걸. 그래도 이제는 바꿀 수 없다.”
―유튜브를 상당히 이른 시기에 시작했다. 어떻게 하게 됐나.
“삶이 정말 힘들었다. 누구나 사연이 있고 힘들겠지만 나도 너무나 힘들었다. 연기를 했는데 오디션을 60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떨어졌고 붙어도 쓰지 않았다.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들지 않더라.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자신감이 없어졌다. 여기에 연기학원 다니는데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와우)에 빠져서 집에서 와우만 1년을 했다. 비참한 마음에 밤마다 누워서 유튜브를 봤는데 해외 유튜버들 중에는 지금 흔히 하는 방송 콘셉트가 아닌 단편 영화처럼 만드는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뭐하러 눈치 보고 빌빌거리고 있지. 그래 영화, 내가 만들면 되는 거 아냐’고 생각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처음 시작할 때 장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호프집과 마케팅 회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번 돈을 꼬깃꼬깃 모았다. 당장은 비싸서 카메라를 살 수 없었다. 대신 웹캠을 샀고 마이크를 또 샀다. 당시에는 크로마키 합성 게임 유튜버가 거의 없었다. 구글 검색을 통해 크로마키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크로마키 하는 것도 돈이라서 동네에서 파란색 부직포 사다 걸어서 환경을 만들었다. 조명은 형광등에 은박지를 직접 조립해 만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맞춰 갔다.”
―장비는 아르바이트로 마련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편집 기술은 어떻게 배웠나.
“처음엔 전부 독학이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구글 검색하고 해외 유튜브 강의나 국내 블로그를 봤다. 그런 분들 보고 배운 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효과를 넣고 빼면서 하나하나 터득했다. 편집의 기법은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참고했다. 단순히 재미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뭔가 배우기 위해서 항상 관찰을 했다. 본 건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마음에 들 때까지 항상 재촬영했고 마음에 들 때까지 편집했다.”
―독학은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두기 쉬운데 적성에 맞았나.
“그랬던 것 같다. 하는 동안 재밌었다. 그때 유튜브에 업로드하면 반응은 당연히 미적지근했다. 근데 나는 솔직히 그때 자신이 있었다. ‘한국에 이 정도 리뷰 없다’고 생각했는데 올려도 50뷰 나왔다. ‘왜 이렇게 뷰가 안 나오고 왜 이렇게 인기가 없는 걸까’ 생각도 했다.”
―‘얼리어답터’, ‘더기어’ 등 IT매체에서도 활동했다.
“아까 말했던 마케팅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얼리어답터’에서 일하는 에디터 한 분이 2014년 중순에 인턴 제안을 해서 가게 됐다. 그곳 편집장이 ‘영상한다며? 그럼 나랑 재밌는 거 해볼래’해서 인턴 기자로 반년 정도 근무했다. 그때 그곳에서 유튜브를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앞서의 편집장이 ‘더기어’로 옮길 때 ‘니가 와야 한다’고 해서 가게 됐다. 그게 2015년 4월 쯤이다”
―‘더기어’는 얼마나 일했나.
“1년 11개월 근무했다. 초반 빼고는 영상만 했다. 배운 게 많았다. 영상 지식보다는 기자의 삶을 배웠다. 수많은 사회 지식을 얻은 게 크다.”
―예를 들면 뭔가.
“‘더기어’에서는 ‘정도’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선을 넘으면 안된다는 거다. 리뷰어라고 생각한다면 깐다고 해서 멋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오래 전 게임리뷰를 할 때 ‘앵그리조’라는 유명 해외 게임 유튜버를 따라했다. 앵그리조는 욕설을 내뱉으며 깐다. 그 미국 감성이 되게 멋있어 보였다. ‘더기어’에서 일할 때 VR리뷰를 했는데 결과를 보고 ‘리뷰 누가 그렇게 했냐’고 욕설을 했다. 그 VR업체 측이 상처를 받았다면서 ‘니가 개발자 앞에 가서 이거 쓰레기다 말할 수 있냐’고 했다. 당시에는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억지를 부렸다고 느꼈다. 말 한 마디가 어떤 결과를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우면서 리뷰의 톤&매너, 영상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재미가 없다는 분들도 있다. 인기는 과거에 더 많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부담 없이 남녀노소가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더기어’는 그렇게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 철학에 많은 영향을 줬다.”
―‘더기어’는 왜 나왔나.
“방향이 안 맞았다. ‘여기는 언론매체기 때문에 광고, 영화 같은 예술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뉴스에 맞는 영상만 찍으면 된다. 왜 자꾸 예술을 하려고 하냐’고 했다. 그 말이 너무 화가 났다. 나를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 생각. 여기 있기보다는 차라리 나가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겠다는 마음에 나갔다.”
―회사를 나와서 유튜브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있었나.
“리뷰 그 자체였다. 영상 퀄리티에 대한 리스펙트(존중)도 있다. 영상 퀄리티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멈추면 안된다, 멈추면 트렌드를 잃고 트렌드를 잃으면, 돈을 못 번다’는 강박관념도 있다. 자신감도 있었다. 항상 최고 영상 품질로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유튜브라는 판이 워낙 커서 나만의 스타일을 알아주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디몽크’ 노승균 씨.
―나와 보니 어떤가.
“나왔더니 전혀 일해본 적 없는 곳에서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튜브 광고 수익보다는 브랜디드 콘텐츠 수익이 더 크고, 정확한 액수는 말하기 힘들지만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는 훨씬 많이 벌고 있다. 고정급여가 그리울 때는 있으나, 다시 직장생활은 못할것 같다. 욕심 부리지 않고 어느 정도 벌면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만들고 공부할 수 있다. 이 삶이 더 편안하고, 여유롭고 즐겁다.”
―구독자가 많다. 어떻게 모았나.
“2017년 8월 ‘더기어’에서 나올 때는 6만 명 정도 됐다. 4년 동안 했기 때문에 6만 명까지는 꾸역꾸역 모았다.” (현재 약 1년간 2만 명이 더 늘어나 8만 명이 됐다)
―구독자가 어느 정도면 먹고 살 수 있다고 보나.
“기준선은 5만 명 정도로 본다. 브랜디드 콘텐츠 업계에서는 5만 명 이상이 되지 않으면 돈을 안 쓰려고 한다. MCN 회사도 5만 명 이상부터 어느 정도 대접을 해준다. 먹고 살 만한 정도가 되려면 10만 명이다. 10만 명 정도 되면 일반적인 회사 월급 이상은 번다고 보면 된다.”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를 꼽아보자면.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런데 언박싱(제품 박스를 열어보는 형태 콘텐츠)이 아닐까. 나만의 언박싱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스타일인 수술용 장갑을 끼고 냄새를 맡는 등의 행동을 많이들 따라한다.
―유튜버가 더 많아지는데 블루오션도 있어 보이나.
“반려동물 장난감은 어떨까 싶다. 고양이 장난감 하면 난리 날 것 같다. 먹방도 영상미로 하면 괜찮을 것 같다.”
―게임 리뷰 중에 가장 조회수가 많은 ‘젤다의 전설’ 리뷰에는 영상 말미에 사람들이 등장한다.
“열심히 잘하시는 분들인데 구독자가 늘지 않는 분들에게 적어도 내 채널 형편이 조금 나으니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넣는 ‘크로스 리뷰’ 같은 느낌도 주고 싶었다.”
―댓글을 보니 ‘이렇게 재밌는데 구독자가 적다’는 글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겸손함이 아니라 내가 못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자존심이 발목을 잡은 적이 많다. 후킹(시선을 끄는) 콘텐츠를 내놔야 하는데 안 한다. 그게 하기 싫다. 진성 구독자들을 모으고 싶다. 구독자 10만 명인데 1만 뷰밖에 안 나오는 것보다는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완성도 있게, 차근차근 밟으면서 가자고 생각한다.”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는 유튜버한테 조언한다면.
“꾸준함. 꾸준함이 제일 중요하다. 콘텐츠에 악플 달리면 상처받고 마음을 못 열고 쉽게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취미로써 자기만의 특별한 채널을 개발해 꾸준히 하면 결국에는 빛을 보는 것 같다.”
―꾸준함이라면 어느 정도 자주 올려야 하나.
“매일같이 할 필요는 않지만 책임감을 갖고 1주일에 최소 1~2번은 무조건 올려야 된다고 본다. 보통은 점차 그 주기가 짧아지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뛰어든다. 유명 유튜버들도 하는 이야기지만 본업을 버리면서까지 뛰어들 필요는 없다. 유튜버가 돈을 많이 번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돈이 되는 건 맞지만 본인이 그만큼 벌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유튜버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
“굉장히 단순하다. 일하고 자고, 일하고 잔다. 반복이다. 일어나면 기획을 에버노트에 쓰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촬영을 시작한다. 조명 처리하고 3시간 촬영하면 보통 오후 2시다. 기지개 한 번 펴고 5~6시부터 편집 시작하면 보통 새벽 1시에 끝난다. 품을 많이 들일수록 만들어지는 시간이 길어진다.
―꾸준함 말고 또 뭐가 필요하나.
“그 사람만의 전매 특허가 필요하다. 포인트가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코미디언들이 유행어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제스처나 특징이나 자신만의 뭔가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광고 수익은 어떤가.
“채널, 영상, 조회수에 따라 너무 달라서 모르겠다. 나는 100만 원도 안되는 달도 있다.”
―IT 리뷰가 돈이 된다는 속설이 있다. 게임 리뷰보다 IT리뷰에 집중한 것도 그런 영향이 있나.
“그렇다. 모바일 게임 말고는 게임 업계는 돈을 안 쓴다. 정말 인기 있는 유튜버가 아니면 안 쓰려고 한다. IT기기는 구독자 수를 떠나 잘하면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게 강했다. 잘하면 기회도 잘 준다.”
―게임 리뷰로 돈을 받아본 적은 없나.
“유튜브 개설 초기에 이벤트성 캠페인 말고는 없다.”
―돈은 많이 모았나.
“많이 못 모았다. 번 만큼 장비에 다 재투자를 했다. 그래서 모으지 못했다. 그나마 모은 돈도 오토바이 고장난 거 불안하게 타고 다녔는데 고치니까 모은 돈이 없다.”
―불안함은 없나.
“물론 불안함은 있다.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언젠가는 이게 끝날 거라는 느낌. 계속 내재적으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너무 행복하면서도, 즐겁고, 그러면서도 불안하고, 무섭다. 한국나이로 서른둘인데. 이렇게 나이 먹다가 일이 없으면 어떡하지. 근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러면서 하루하루 삶을 살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