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증여세 불복 소송 놓고 소문 무성…최순실 돈 어디로
정유라가 2017년 6월 13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는 모습. 최준필 기자
최순실 일가 재산 규모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최대 수조 원에 달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구체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최순실 부친 최태민 목사 시절부터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들의 재산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3000억 원대 이상이다. 최순실과 그 일가는 대부분 강남 지역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재벌’이다. 그러나 이들이 은닉한 재산과 부동산이 추가로 더 있을 것이란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최순실 일가 재산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은 박영수 특검 때다. 재산추적 전문가들을 특별 채용했던 박영수 특검은 최순실 일가 40여 명의 재산 형성을 살펴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최태민 목사도 포함돼 있다. 비슷한 무렵 독일 검찰은 최순실-정유라 모녀가 설립한 페이퍼컴퍼니가 스위스 은행에 거액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첩보에 대해서 확인 작업 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최순실 은닉 재산 파악에 공을 들였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국세청과 관세청 등이 최순실의 해외 재산 추적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 은닉, 세금을 면탈하는 것은 반사회행위”라며 검찰 국세청 등 관련기관이 모두 참여한 합동조사단 설치를 지시하기도 했다. 주요 타깃 중 한 명이 최순실이라는 게 정권 핵심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유라가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을 낼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 조세심판원에 청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국세청은 정유라가 모친인 최순실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에 대해 5억 원가량의 증여세를 과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심판원은 지난 6월 국세청 손을 들어줬고, 그러자 정유라는 다시 최근 서울 강남세무서를 상대로 증여세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국세청이 정유라에게 세금을 부과한 항목은 ▽승마용 말 구입대금 ▽보험금 만기환급금 ▽아파트 보증금 ▽최순실 소유 하남시 부동산이다. 정유라는 4개 모두 최순실이 실소유하고 있어 증여세를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말 구입대금 4억 3000만 원을 증여받았다는 국세청 판단에 대해 정유라는 “엄마의 말을 잠시 탄 것이지, 소유권을 넘겨받은 게 아니다”라는 입장이라고 한다.
국세청 한 관계자는 “승마용 말의 경우 정유라가 실질적으로 소유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와 진술들이 확보된 상태다. 반면, 정유라는 이를 반박할 구체적인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안다”면서 “나머지 부분도 증여세 부과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세청 관계자는 “정유라가 소송을 이기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으로 입증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최순실 재산에 대한 의미 있는 내용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정유라 지인들은 “(정유라가) 상당히 억울해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지인은 “(정유라가) 모친으로부터 진짜 돈을 받았다면 세금을 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런 돈을 받지 못했고, 세금을 내기 위해선 빚을 내야 할 처지라고 하소연했다”고 전했다. 증여세를 내지 않으려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저번 사태 이후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런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왜 소송을 제기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유라가 최순실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전언도 들린다. 정유라의 또 다른 지인은 “증여세가 부과된 항목에 대해 최순실이 적극적인 해명을 했다면 국세청에서 자신에게 과세를 했겠느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앞서 언급한 정유라 지인 역시 “최순실 측에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지만 별다른 답을 듣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최순실 쪽에선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자칫 남아 있는 재판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들린다. 증여세가 부과된 승마용 말의 경우 그 실소유권을 놓고 최순실은 삼성과 형사재판을 벌이는 중이다. 최순실과 오래 알고 지낸 한 사업가는 “모친이 지금 수감 중이고, 중요한 재판들을 앞두고 있는데 본인 살자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온 국민이 다 욕해도 정유라는 딸 아니냐”라고 했다.
정유라의 돌출행동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여기엔 최순실이 딸에게 어느 정도 금전적 지원을 해줬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순실은 국정농단 논란이 거셌던 시기 해외에 머물고 있던 정유라에게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보내줬다고 한다. 딸이 입국하지 못하고 장기간 해외에 머무를 수도 있는 상황을 대비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3국에 보유하고 있는 차명계좌를 활용했을 것이란 게 최순실 측 관계자들의 제보다.
최순실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자 다양한 루트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은닉 또는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도 “최순실 금고지기로 알려진 2~3명이 분주하게 움직였던 정황이 포착됐었다. 그들의 목적은 최순실 재산을 빼돌리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최순실이 현금으로 갖고 있던 뭉칫돈들이 어딘가로 옮겨졌다는 진술도 있었는데 그 행방이 지금 묘연하다, 정유라가 알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러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배달 사고’ 의혹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된다. 최순실-정유라 모녀 간의 불협화음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최순실은 자신의 돈 일부가 측근들을 통해 딸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알고 있고, 반면 딸은 이를 받지 못했다는 게 골자다. 최순실의 한 지인은 “사건이 터지면서 최순실은 ‘멘붕’ 상황이었다. 이를 악용한 측근들이 있었다. 최순실 돈을 몰래 자기 쪽으로 빼돌렸던 것인데, 이 과정에서 유라 핑계를 댔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면서 “당시 언론과 수사당국의 추적을 받던 최순실로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믿고 맡기는 수밖에. 지금은 그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