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경쟁력 밀려 미·중서 부진…“연구개발 확대로 미래차 산업 개척해야” 지적
올 1~6월 국내 자동차 산업 실적을 집계한 결과, 국산차 수출과 생산이 6년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산차 수출량은 올해 상반기 121만 554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줄었다. 2009년 93만 9726대 이후 최저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부진이 이어진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산차는 미국 시장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수요 확대에 대응하지 못했고, 중국 토종업체 생산 차량과 기술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국산차는 준중형 세단의 겉모습만 바꿔 새로 내놓으며 마진을 확대하는 방식을 지속했다. 국산차는 올해 상반기 원화 강세로 가격경쟁력마저 하락, 생산량이 7.3% 하락했다.
위기를 맞은 국내 완성차 업체는 결국 “다시 내수”를 외치고 있다. 2012년 전체 자동차 생산에서 약 70%를 차지했던 수출 비중이 올해 60% 수준으로 줄어든 사이 내수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10% 가까이 커진 덕이다. 제품 다변화 및 생산 물량 조절이 용이하고 관세와 같은 대외 변수의 영향권 밖에 있다는 것도 내수시장의 장점이다. 정부 역시 국내 완성차 업체의 내수 집중에 개별소비세(개소세) 인하로 보조를 맞췄다. 개소세 인하 시행 종료 2년 만이다. 정부 의도는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국내 완성차 업체의 수출·생산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을 기다리는 차량이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앞서 정부는 개소세를 올해 연말까지 기존 5%에서 3.5%로 1.5% 포인트 감면한다고 밝혔다. 경차를 제외한 승용차와 이륜차, 캠핑용 차 등이 대상이다. 차량 출고 가격이 2000만 원이면 약 43만 원, 2500만 원이면 약 54만 원 세금 감면 효과가 있다. 소비자는 2000만 원대 차량은 1900만 원 후반대에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수출이 줄고 생산량은 계속 하락하는 상황을 맞이한 국산차 회사들이 일단 내수라도 붙잡아보려 하고 있다”면서 “개소세 인하는 국내 완성차 5개사 모두 정부에 꾸준히 건의를 해왔던 사안”이라고 전했다.
업체 간 경쟁 심화와 SUV 상품군 부족으로 미국에서 2년 연속 판매 감소를 겪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특히 내수시장 붙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준대형 세단 그랜저와 중형 SUV 싼타페가 내수에서 판매 호조를 보이는 만큼 개소세 인하를 발판 삼아 내수 판매 확대를 노린다. 현대·기아차에 내수시장은 꾸준한 판매고를 올려준 이른바 집토끼다. 지난해 사드 배치로 불거진 중국 시장 판매 감소 상황에서 내수시장은 미국에 이은 2위 시장으로 올라섰으며 올해에는 현대·기아차의 최다 판매 시장이 될 전망이다. 2011년 이후 2016년까지 현대·기아차에 국내 시장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위 시장이었다.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내수시장에 6만 1328대를 판매, 판매량 기준 3위에 올라선 쌍용차 역시 내수시장 붙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출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던 대형 SUV G4 렉스턴과 렉스턴 스포츠가 힘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올 1~7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줄어든 1만 8698대를 수출하는 데 그쳤다. 수출 물량을 조절하는 데 각각 미국과 프랑스 본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차량을 수입해 내수시장을 잡는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국GM은 중형 SUV 이쿼녹스를 포함해 임팔라·카마로·볼트(Volt)·볼트(Bolt)EV 등을 OEM으로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클리오와 트위지·QM3 등이 OEM 수입차다.
그러나 국내 완성차 업체의 내수 집중은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내수 집중은 위기 극복보다 위기 지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내연기관 차 중심의 자동차 산업은 성장의 끝자락에 도달했으며, 7~10년 뒤면 정체에 빠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GM이 내린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현대차의 실적 부진 역시 자동차 산업의 지각 변동에 따른 영향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2조 1600억 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가장 저조했다. 중국의 한반도 사드 보복 여파는 오히려 중국 시장에서 중국차 제품 경쟁력을 확인하는 도화선이 됐다. 중국 시장은 이미 토종업체들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와 같은 미래차 산업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은 이미 근본적인 새판짜기에 나서야 할 상황에 처했음에도 위기를 지연하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조선 산업과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수시장 성장 착시도 문제다. 내수시장 판매 구조를 보면 소득 양극화와 자동차 금융 발달로 고급 차량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56만 대가 팔린 국내 자동차 시장은 규모 면에서 세계 11위에 불과하지만, 고급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 판매량은 세계 5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상반기 내수시장서 팔린 수입차는 15만 143대로 1년 전보다 17.9%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내수시장 전체 판매량 76만 711대 중 20%가 수입차인 셈이다. 특히 지난해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이 연비 조작으로 판매금지 조치를 겪었음에도 일본 하이브리드차와 독일 고급차 판매가 늘어나면서 수입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확대됐다.
더 큰 문제는 수출과 해외 판매로 성장한 국내 자동차 산업이 내수 집중으로 돌아서면 국가 경제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생산, 고용, 수출 등 한국 경제 전 부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자동차 산업 생산액은 197조 원으로 전체 제조업 생산의 13.9%에 달했다. 자동차 산업 종사자 수는 약 35만 명으로 전체 제조업 종사자의 12.0%다. 수출은 657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13.3%였다. 이러한 수치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자동차 산업은 패스트팔로어 정책으로 해외시장 입지를 넓혔지만, 현재 해외시장에 국산차의 제품경쟁력은 밀리는 상황”이라며 “완성차 업체는 부품사와 함께 연구개발 지출을 늘려서라도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지 내수시장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