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에 먹여야” “나치 우생학 연상” 갑론을박
도덕 알약으로 범죄를 줄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공상과학 같은 얘기지만 해외에선 이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영화 ‘범죄도시’의 한 장면.
동정심과 배려, 협동 같은 성품은 인간의 사회생활에 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성품이 언제나 충분히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민족분쟁과 내전, 증오범죄, 테러 등 심각한 문제가 세계적으로 산적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연구교수로 활동 중인 페르손(I. Persson)과 생명윤리학자 사뷸레스쿠(J. Savulescu)는 “인류 전체가 도덕적으로 진보하긴 했지만, 지금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헤쳐 나가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대량살상 무기가 빠르게 진화돼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가능성이 높아진 반면, 분쟁이나 차별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그동안 교육을 통해 도덕적 동기를 향상시켜왔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효과가 한정적”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도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페르손 교수는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타성이나 정의감 같은 인간 본연의 성품으로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을 더욱 도덕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야만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겐다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실제로 해외학자들 사이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고 한다. 크게 약리학적인 방법과 유전자적인 방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페르손 교수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전자에 속하는 ‘도덕 알약’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도덕적 성향을 향상시키는 약을 개발해 복용하자”는 것이다. 철학자 피터 싱어도 “가까운 미래 형벌제도 대신 도덕 알약 복용이 범죄자들에게 더 적합하다”고 제안한다.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지만, 이미 몇몇 실험을 통해 가능성이 확인됐다. 예를 들어, 2005년 경제학자 미카엘 코스펠트 연구팀은 “뇌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이 공포심과 투쟁심을 진정시키는 한편, 신뢰감을 높여 서로 협력하는 행동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스위스에 사는 성인 남성 58명을 대상으로 절반은 자산을 가진 투자자 역할을, 나머지 29명에겐 자산을 운용하는 수탁자 역할을 맡겼다. 이때 투자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 일부에게 옥시토신을 스프레이로 분사했다. 그 결과 옥시토신을 흡입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수탁자에게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연구팀은 “옥시토신이 불안을 억제하고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흔히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도 불안과 공포감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옥시토신과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신뢰감 형성 및 협력적인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또 2012년에는 “고혈압 치료제인 베타블로커(β-blocker)가 인종차별적인 성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몇 가지 약물에는 ‘도덕 알약’으로 불릴 만한 효과가 실제로 입증됐다. 다만 약을 복용하면 편향적이 된다거나 전반적으로 감정 반응이 둔해지는 등 부작용이 함께 나타났다. 이에 대해 ‘겐다이비즈니스’는 “도덕 알약이 당장 보급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부작용”이라고 전하며 “그러나 도덕 알약의 실용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 중이다”고 덧붙였다.
사실 협조성이나 공감을 증진시키는 ‘도덕 알약’보다 먼저 주목받기 시작한 약이 있다. 복용하면 머리가 좋아지는, 일명 ‘스마트 드럭(Smart Drug)’이다. 세간에서는 공부가 잘 되는 약으로도 불리는데, 일시적으로 집중력이나 주의력, 기억력 같은 인지기능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지녔다.
그 대표격에 해당하는 약이 리탈린이다. 리탈린은 원래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완화시키는 약물로,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장애가 없는 건강한 사람이 복용하면 순간 집중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성적향상을 위해 처방전 없이 몰래 리탈린을 복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조사에 의하면 “미국 고등학교 2학년의 10%, 3학년의 12%가 의사 처방전 없이 ADHD 치료제를 구해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리탈린 외에도 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기면증 환자에게 처방되는 모다피닐,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도네페질 등도 머리가 좋아지는 약으로 통한다. 현재 이들 약은 대부분 처방전 없이 인터넷 등 불법 매매를 통해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환자를 위해 개발된 약을 건강한 사람이 복용했을 때 겪게 되는 부작용과 함께 “두뇌에 작용하는 이 치료제들이 훗날 어떤 폐해를 가져올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며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스마트 드럭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페르손 교수는 “도덕적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식을 강조하는 세계가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을 부채질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만약 부작용이 덜하고 가격이 저렴한 스마트 드럭이 나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약을 복용하게 될 것이며, 이기적인 사람도 늘어나게 된다”면서 “그들을 도덕적인 구성원으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도덕 알약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물론 그의 의견에 반박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인간의 본성을 ‘개조’ ‘개선’하려는 시도가 과거 독일 나치의 우생학을 연상시킨다”며 “거부감이 든다”는 의견도 꽤 있다. 또 일각에서는 “도덕 알약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개인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든지 자유의 일부”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다만 “자유의 가치를 과장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조지워싱턴 대학의 디그라치아(David DeGrazia)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령 도덕 알약으로 평소 자유도에 비해 25% 정도 자유가 감소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전쟁과 범죄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활필수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게다가 도덕적인 행동이 진정으로 환영받는 세상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자유의 감소를 받아들일 수 있다.”
도덕 알약에 대한 찬반은 아직 뚜렷이 갈린다. 과연 당신은 어느 쪽인가. 이에 대해 일본의 정치사회학자 호리우치 신노스케는 “적어도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정치가들에게는 도덕 알약을 권하고 싶다”고 말해 큰 공감을 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