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고령자 취업시스템 갖춰 ‘부럽네’…펫시터 등 1인 창업하거나 부업하듯 주식 장기투자
길어진 노후를 안정적이고 활기차게 보내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진은 서울 탑골공원의 노인들. 박정훈 기자
60대 일본인 부부의 가구당 평균 저축액은 2억 2000만 원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매월 연금 수입만으로는 부족해 적금을 깨며 생활하는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파이낸셜 플래너인 이도 미에(井戸 美枝) 씨는 “흔히 고령자의 삶이라 하면 소박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요즘 고령자들은 소비성향이 높다”고 말했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2017년 가계수지’에 따르면 “직업이 없는 노인 부부(남편 65세 이상, 아내 60세 이상)의 경우 매월 55만 원의 적자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 등을 포함한 수입은 월 21만 엔(약 210만 원)인 데 반해, 지출은 26.5만 엔(약 265만 원)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도 씨는 “현장에서 느끼는 바로는 무직 고령자 부부의 월 적자액은 80만~100만 원 정도로, 20년 이내 가지고 있던 돈이 모두 바닥날 가정이 많다”고 전했다. 예컨대 65세에 완전히 은퇴하면 85세 이내 저축액이 제로가 된다는 계산이다. 그는 “100세 시대를 맞아 진지하게 노후에도 절약 및 가계 자산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일본 경제지 ‘프레지던트’는 길어진 노후를 안정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해 관심을 모았다.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째는 매월 저축액 늘리기, 둘째는 연금 수급액을 추가하기, 셋째는 자산 운용, 넷째는 65세 이후에도 일을 해 수입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은퇴 후에도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65세부터는 연금을 받기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할 필요는 없다. 연금과 퇴직금을 사용하고, 경제활동은 매달 적자 분을 보충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관건은 ‘65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돼 있느냐’다. 일본의 경우 고령자 취업이 쉽도록 전반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가령 일본은 2004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정년 연령이 65세 미만인 기업은 ‘정년제 폐지’ ‘65세까지 정년 연장’ ‘계속 고용제도 도입’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200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2017년 내각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 중 99.5%가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를 도입했다고 한다. 또 종업원들 중 희망자에 한해 66세 이상이 돼도 일할 수 있는 회사는 전체의 6.7%였다.
각 회사별로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올해 4월 샐러드점을 운영하는 기업 록필드는 “정년 후 재고용 연령을 75세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화장품 기업인 폴라는 “재고용 시 연령제한을 아예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65세 이후 재고용은 정사원이었던 현역 시절보다 급여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해 퇴직 전후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일례로 도쿄에 사는 59세 여성 A 씨는 1인 창업가가 됐다. 동물을 좋아하는 성격을 살려 ‘반려동물관리사(펫시터)’로 일하고 있는 것. 주인이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집을 비울 때 베이비시터처럼 방문해 반려동물을 돌봐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최근에는 반려동물이 병에 걸렸거나 고령으로 움직이지 못하니 대신 간병해달라는 의뢰가 많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 식품회사에서 근무했던 A 씨는 처음엔 본업과 병행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착실하게 일을 배운 다음, 본업을 관두고 창업전선에 뛰어든 케이스다. A 씨는 “노하우를 익혔기 때문에 사업을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며 “월수입은 식품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못 미치지만, 스트레스가 없어 무척 즐겁다”고 전했다.
한편 ‘프레지던트’는 창업할 때 주의점도 함께 소개했다. 일단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재고 관리가 어렵지 않은 직종을 선택하는 것이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위험성이 높은 건 음식점 경영이다. 지난해 조사한 ‘업종별 폐업 상황’을 살펴보면, 폐업률이 가장 높은 업종은 음식업(18.9%)인 것으로 확인됐다.
음식점은 이익률이 낮은 데다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흔히 매스컴에서는 “퇴직 후 시골에 식당을 차려 대박이 났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레스토랑을 열어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등등 몇몇 성공사례를 가지고 일반적인 얘기인 양 떠들지만, 실은 음식점 창업으로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에 대해 ‘프레지던트’는 “음식점 창업엔 반드시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사업계획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노후 대비책으로 투자를 부업으로 삼기도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단기간 주식 매매나 FX(외환) 거래는 투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투기는 가격변동에 의해 이익을 얻는 것으로 다시 말해 누군가 이익을 보면, 그 이익분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이러한 구조는 장기적인 이익을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부업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베스트셀러 ‘사고의 정리학(思考の整理學)’의 저자이자, 일본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도야마 시게히코 교수(94)는 “노후 자금 마련에는 주식 투자가 알맞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애초 주식이란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덧붙였다. 즉 “투기성 매매를 반복하지 말고, 저축의 일환으로 구입해 두면 10년 후 10배 가까운 수익도 남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는 65년 전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해, 현재도 주식거래를 계속하고 있는 ‘베테랑 개인투자가’다. 교수의 투자방식은 앞서 언급했듯이 한번 주식을 사면 잘 팔지 않는다는 것. 주식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도 투자원칙으로 “10년 이상 보유하지 않으려면 단 10분도 투자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어, 두 사람의 철학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도야마 교수는 “많은 일본인들이 은행이 아니라 집 안에 보관하는 돈, 이른바 장롱예금을 선호해 규모가 40조 엔(약 400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그 돈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나이를 먹으면 신체 건강도, 두뇌 사고력도 점차 저하된다. 그가 고령자들에게 주식투자를 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사고하면서 인생을 끝까지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로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설령 그 돈이 사라져도 곤란하지 않은 금액만큼만 투자하는 것이 기본. 또 투자의 밑천으로 빚을 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끝으로 그는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새 시대의 도래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스스로 사고하면서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생에 정년은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보라는 조언이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