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대관에 ‘잔디 훼손’으로 유치 무산되자 책임 논란…‘잔디 정상화’ 면피용 대책도 비난
칠레 실사단 방문 당시 아시아드주경기장의 잔디 모습. 육안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최악이라는 것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일요신문] 부산시가 무려 14년 만에 유치한 A매치 축구경기를 준비 부족으로 무산시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체제 출범이란 사변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근시안적인 행정이 여전하다는 지적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축구협회와 부산시축구협회는 오는 9월 11일 사직동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한국과 칠레 국가대표팀 간 A매치 축구경기가 열린다고 지난 7월말 발표했다. 2004년 12월 열린 독일과의 평가전 이후 14년 만에 비로소 부산에서 A매치가 성사된다고 밝힌 것이다.
이번 A매치 유치는 대한축구협회와 부산시축구협회가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에 따른 성과였다. 특히 부산시축구협회는 정정복 회장이 부임한 이후 A매치 유치를 지상과제로 삼고 이에 매진해왔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7일 부산 A매치 개최 계획을 갑작스레 거둬들였다. 아시아드주경기장의 잔디 상태가 원인이었다. 경기장 점검을 위해 부산을 찾은 칠레 실사단은 잔디 상태를 이유로 경기가 열리는 것을 거부했다.
아시아드주경기장의 잔디는 지난 7월 가수 싸이의 콘서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됐다. 부산시와 체육시설관리사업소는 A매치 개최가 무산되자 “관중이 많이 운집한 데다 폭염까지 겹쳐 잔디가 심하게 망가졌다. A매치 전까지는 복구할 수 없게 됐다”고 해명했다.
부산시의 이 같은 해명은 비난에서 비켜서기에는 근거가 약해 보인다. 부산시축구협회가 이미 올해 초부터 A매치를 공론화하고 부산시 측에 지속적으로 협조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부산시로서는 시설 관리를 잘못해 애써 유치한 A매치도 놓치고, 국제적인 망신도 자초한 꼴이 됐다.
부산축구협회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정복 부산시축구협회장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지원 아래 지난 2월부터 A매치 유치에 본격 나섰다. 이 과정에서 부산시에 수시로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어렵게 유치한 대회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며 울분을 토했다.
부산시축구협회는 오는 10월경에 A매치를 다시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부산시도 이때까지 잔디 상태를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잔디의 현재 상태 및 생육 기간 등을 감안하면, 대회 유치가 어렵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A매치 무산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부산시를 향한다. 부산시가 잔디 정상화 계획을 밝혔지만, 이 역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장기적인 청사진도 없이 마구잡이로 체육시설을 대관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면피용 계획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같이 잔디를 카펫처럼 깔았다가 공연이 있으면 다시 걷는 방식으로 운영하든지, 아니면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내구성이 뛰어난 하이브리드 잔디를 심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신기술인 하이브리드 잔디는 유럽과 미국에서 이미 도입 중이며, FIFA가 승인하면서 지난 러시아 월드컵 당시에도 도입됐다. 관리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어 세계적으로 활용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다.
아시아드주경기장은 스포츠와 상관없는 공연으로 인해 잔디가 망가지는 악순환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처지에 놓인 아시아드주경기장은 A매치와 같은 국제경기 개최가 가능한 부산 유일의 시설이다. 이에 따라 이 같은 전문가들의 주장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