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표본 확대 설명 제대로 안해“ ”정치적 이용은 더 잘못된 행동“
정치권은 연일 ‘통계청장 경질’ 의혹을 제기하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통계청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사진은 황수경 전 통계청장. 연합뉴스
야권은 황 전 청장의 인사를 두고 문재인 정권이 원하지 않는 통계 결과를 내놓아 경질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황 전 청장의 ‘눈물’이었다. 그는 지난 8월 27일 이임식 내내 눈물을 보였다. 황 전 청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1년 2개월 동안 큰 과오 없이 청장직을 수행했다”고 책임론을 반박했다. 그러면서 “통계청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통계청의 독립성, 전문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중심을 잡으려 노력해 왔다”고 그간의 고충도 호소했다. 그의 의미심장한 발언들은 마치 그가 ‘보복성 인사’로 경질된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논란이 끊이질 않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1년 2~3개월이 차관의 평균 재임기간”이라며 ‘일반적인 인사의 일환’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정치권 안팎에선 그간 황 전 청장을 둘러싼 인사설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통계청의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청와대가 통계청장을 경질시키고 새로운 ‘코드인사’를 감행한 것인지, 단순히 통계 결과 발표와 인사의 시기가 의도치 않게 겹쳐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처럼 보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통계청장 인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 사이에 본질은 따로 있다.
문제의 시작은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2분기(4~6월)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다. 당시 통계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통계와의 시계열 유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표본을 확대 개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약 5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는 올해 약 8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2인 이상, 월평균)이 132만 5000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7.6% 감소했다. 지난 1분기(-8.0%)보다는 감소폭이 줄었지만, 2분기만 놓고 보면 지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이다. 반면, 소득 최상위 20%(5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913만 4900원을 기록하며 10.3%나 증가했다. 통계 집계 이래 첫 두 자릿수 증가율을 찍으며 역대 최대 폭으로 늘었다. 결국 전형적인 소득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내에선 ‘통계청이 표본을 늘린 것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득분배 악화가 두드러졌다’라는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통계청은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하며 그 배경을 설명하는 데에 소홀히 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새로 편입된 표본가구를 중심으로 1인 가구와 고령층 가구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여, 전년도와 올해의 결과를 직접 비교하여 결과를 해석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라고 한 줄 덧붙였을 뿐이었다.
통계학자들은 이에 오류를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계학과 교수는 “통계학에서 결과를 분석할 때는 배경에 대해 잘 짚어줘야 하는데, (통계청은) 이를 설명하지 않고 발표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분모에는 표본집단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약 8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했으니 분모에는 8000이라는 수가 들어가는데, 이 중에서 소득활동을 하지 않는 노인가구가 많이 들어갔다면 결과적인 값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고령사회로 접어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통계 오류로 고령인구와 1인가구가 지나치게 크게 반영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었다”고 꼬집었다.
통계‧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원씨앤아이’ 김대진 대표도 “이번 통계에서 1인 가구와 노인가구가 추가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반대로 통계의 오류로 과하게 집계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통계청의) 설명은 없었다”며 “만약 (통계의 오류로 노인이 과도하게 잡혀)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면, 또 다른 통계를 통해 올바른 수치를 제시해줬어야 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연일 공격하며 폐지를 요구하는 자유한국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욱 압박을 가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지 못한 통계청장을 경질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정부에 맞게 통계를 조작하려고 작정한 게 아니고는 어떻게 이런 인사를 할 수 있냐”고 비판했고,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위해 통계에 손을 대는 어떤 시도라도 있다면, 국민으로부터 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당대표 후보도 “가계소득 통계가 마음에 안 들면 통계청장을 경질하면 된다는 발상은 누가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 판단을 한 순간 앞으로 통계청에서 좋게 나오는 통계들이 있다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라고 힐난했다. 앞서의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론을 두고 통계 결과를 참고해야 하는데, (일부에선) 이 통계를 공격하려 덤벼들고 있다”며 “(야권은) 이 사건을 문제시하며 이용해선 안 된다. 통계라는 것은 언제나 정확할 수는 없다. 공격의 소지로 삼으려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데 이처럼 흠잡으며 흔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흔들자는 세력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나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선) 청와대보다 야당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언론도 이 같은 통계 결과가 발표됐을 때 왜 표본을 늘렸는지, 숫자적인 의도인지 정치적인 의도인지, 고령층의 기준이 뭔지를 취재했어야 했다”며 “통계자료는 덧셈밖에 안 되는 것인데, 언론이 여기에 취재가 아닌 해석을 더 넣어 보도해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통계 결과로 예민한 시점에 굳이 인사를 감행한 청와대에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란 말은 의심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