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2심서 뇌물 관련 유죄도 ‘불리’…재판 분리·사건 병합됐지만 “실형 면키 어렵다”
8월 29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결심 공판을 지켜본 한 법조계 관계자의 평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경영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뒤, 국정농단 관련 뇌물 제공 혐의가 드러나 2차례 기소된 신동빈 회장. 각각 별건의 재판마다 불구속 상태로 기소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정농단 1심 재판에서 법정 구속돼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다. 궁지에 몰리자 어떻게든 구속만은 피하겠다는 전략을 선택한 신동빈 회장. 최선으로 볼 수 있는 법정 전략을 선택했지만, 현재 상황은 신 회장에게 불리해 보인다. 검찰이 2심 결심공판에서 구형한 징역 14년은, 지난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형한 징역 12년보다 높다.
# 검찰 징역 14년 구형, 이재용 부회장보다 많아
검찰은 29일 서울고법 형사8부(강승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 회장 등 롯데 총수 일가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신 회장에게 두 사건을 합해 총 징역 14년과 벌금 1000억 원과 추징금 70억 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신 회장의 혐의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롯데그룹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총수 일가에 500억 원대 ‘공짜 급여’를 지급(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하고, 롯데시네마 매점에 영업이익을 몰아주거나 부실화한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타 계열사를 동원하는 등 1300억 원대 손해(특경법 배임)를 입힌 혐의다. 나머지 하나는 국정농단 1심 재판에서 면세점 특허 청탁 대가로 최순실 씨가 실질적으로 만들고 운영한 K스포츠재단 등에 70억 원을 추가 지원한 뇌물 혐의다.
최순실 국정농단 재판 1심 선고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돼 서울중앙지법에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준필 기자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시점에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3년 차였던 지난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 등은 롯데그룹 경영비리 수사를 본격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앞선 롯데그룹 내 횡령과 배임 혐의가 드러났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가까스로 기각되며 불구속 기소됐다. 그리고 1심 재판부는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신 회장이 원했던 불구속을 선사했다.
하지만 변수는 가볍게 봤던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벌어진다. 신동빈 회장은 구속만은 면하고자 검찰과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면세점 특허 청탁 대가로 신 회장의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2년 6월의 실형과 함께 법정구속을 선택했다.
두 사건의 양형을 모두 합치면, 4년 2개월 동안 구속되어 있어야 하는 신동빈 회장. 신 회장은 유일한 타개책으로 재판 분리 및 사건 병합을 신청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재판을 받지 않고자 재판을 분리해달라는 신청과 함께, 앞서 1심 선고가 끝나 항소심이 진행 중인 롯데그룹 비리 사건 재판부에 국정농단 뇌물 사건을 병합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된 2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14년이라는 무거운 처벌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신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의 경영 전반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그룹을 배신하고 총수 일가의 사익을 위해 행동했다”며 “관련 증거들이 명백한 만큼 1심이 무죄 판단한 부분을 바로 잡아달라”고 설명했다. 검찰의 이 같은 무거운 구형은 예상된 흐름이었다.
이미 2심 재판이 결심을 향해 갈 때부터, 징역 10년 이상의 무거운 구형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앞선 사건에서 신 회장과 관련된 경영 비리 금액 규모가 수백억 원을 넘어서고, 뇌물 사건 범죄 금액 역시 70억 원에 달하지 않냐”며 “삼성이 아닌 롯데라서 구형이 센 게 아니라 혐의 금액이 많아서 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박영수 특검팀이 구형한 징역 12년보다도 높은 형량이기도 하다.
# 신 회장 입장 최선은?…“무죄 나오기 쉽지 않아”
그렇다면 신동빈 회장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수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구속을 피하기는 힘들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집행유예를 받으려면 징역 3년 이하의 양형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사건 혐의가 너무 무겁다는 평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검찰 구형량을 듣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영 비리 사건 1심에서 무죄가 상당 부분 나온 상황임에도 두 사건 양형을 합치면 징역이 3년이 넘지 않냐, 추가로 무죄가 나지 않는 이상 양형이 줄어들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기에 집행유예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내다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 2심 판결에서 뇌물 관련 유죄로 판단을 받은 것도 불리하다. 앞선 24일, 서울고법 형사4부는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롯데그룹 관련 혐의에 대한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2016년 3월 단독면담에서 신 회장이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라는 그룹 현안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을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신 회장에게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추가 지원을 요구해 청탁과 추가 지원 사이에 대가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다른 판사는 이에 대해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다른 재판부와 비슷한 결의 결론을 내리는 게 더 익숙하다. 1심보다 상급심인 2심 재판부마다 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오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며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가 이미 뇌물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마당에 1심에서 유죄가 나온 신동빈 회장 혐의를 무죄로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항소심 재판부가 국외재산도피죄에 대해 유죄에서 무죄,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은 전부 유죄에서 일부 유죄로 판단을 바꾼 덕분에,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 선고와 함께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죄가 무죄로 바뀔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신 회장은 형을 낮출 가능성이 이재용 부회장보다 낮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 측도 이 같은 분위기를 고려, 더 적극적으로 변론에 나섰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 케이스를 참고해 ‘피해자’였음을 강조했다. 신 회장의 변호인은 최종 변론에서 “피고인에게 대통령이나 아버지는 절대 권력자였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박 전 대통령이나 신 명예회장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박 전 대통령 재판 결과와 다른 맥락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도 재판부에 강조했다. 변호인 측은 “박 전 대통령이 유죄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올림픽 훈련시설 지원 요구를 뇌물로 생각하지 못했던 피고인에 대해서는 그와 별도로 무죄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며 무죄를 요청했다.
하지만 검찰 측은 ‘집행유예를 바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두 사건을 합쳐 징역 4년 2개월을 받았던 케이스에서, 유죄가 무죄로 바뀌지 않는 한 3년 6개월 이상은 나와야 한다”며 “14년이라는 구형량을 기준으로, 보통 50~60% 정도의 양형이 나오는 것을 감안해도 6년 이상은 나와야 하지 않냐. 3년대 양형만 나와도 신 회장 측에서는 만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나머지 롯데그룹 오너 일가는 어떻게?
한편 검찰은 신 회장과 함께 경영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신격호 명예회장에게는 징역 10년,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이어 개인 비리 사건과 병합 재판을 받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는 징역 10년과 벌금 2200억 원을, 신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에게는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미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신격호 명예회장.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각종 횡령 등의 주범으로 지목된 신 명예회장이지만, 치매 등 건강 상태를 감안할 때 실제 형을 집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원래 대기업 비리 사건에서는 오너 일가 중 한 명만 구속하는 게 나름의 예의다. 수사 단계부터 신동빈 회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안재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