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상상캠퍼스 민간극단에 일방적 통보 의혹…연극계 “‘갑질’ 과거부터 만연했다”
극단 신야가 경기상상캠퍼스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대관이 변경돼 연극이 무산되자, 지난 1일 수원시 경기상상캠퍼스의 한 전시실에서 장례식 형식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극단 신야
지난 1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옛 서울대 농생대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의 한 전시실에서는 ‘나는야 장례식’이 열렸다. 극단 신야가 당초 공연 예정이던 연극 ‘나는야 연대기’가 ‘공연 장소를 변경하라’는 경기상상캠퍼스 측의 일방적 통보로 무산되자 이 같은 퍼포먼스를 펼친 것이다. 경기도 산하기관인 경기상상캠퍼스는 경기문화재단이 위탁 관리하고 있다.
극단 신야에 따르면 연극 ‘나는야 연대기’는 ‘수원시 문화예술발전기금 지원사업’에 선정돼 지난 3월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 대관한 장소는 경기상상캠퍼스 내 공연장. 신야는 지난 7월 경기상상캠퍼스와 이 공연장을 8월 27일~9월 2일 일 주일간 이용하기로 계약했다.
그런데 공연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8월 23일, 경기상상캠퍼스는 신야에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경기도에서 경기상상캠퍼스 행사를 연기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으니 ‘나는야 연대기도’ 대관 일정을 일주일 연기하라”는 통보했다. 공연을 일 주일 연기하면 배우와 스태프의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고, 이미 날짜가 명시된 인쇄물들을 수정해야 하며 예약한 관객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거나 환불도 해야 한다. 사실상 공연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신야 측은 “재단 측이 오히려 다른 장소를 찾거나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자체 프로그램 일정이 밀린다고 미리 대관한 팀들의 일정을 일방적으로 연기시키는 건 부당하다”고 항의했다. 신야 측에 따르면 경기상상캠퍼스 대관 담당자는 ‘이건 천재지변이다’, ‘위에서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럼에도 신야는 다른 공연장을 물색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공연장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또 다른 곳에서 연극을 올리려면 기존 공연장에 맞춘 조명·음향 등 기술적 부분과 배우들의 동선·퍼포먼스를 모두 다시 구성해야 한다. 신야 측은 “다른 공연장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상호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조율이 되지 않았다. 신야 측은 계약서에 ‘프로그램이 적합하지 않을 시 경기상상캠퍼스 측에서 공연을 중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의 조항이 포함됐을 뿐 아니라 경기상상캠퍼스가 마치 큰 ‘특혜’를 주는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한다.
참다 못한 신야는 공연 당일 연극 대신 장례식을 치렀다. 연출과 배우가 상복을 입고 관객들의 조문을 받았다. 사건 개요를 설명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신야 관계자는 “대관료 입금까지 마친 상태에서 우리가 일정을 변경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경기상상캠퍼스의 일방적인 행동이 너무나도 불쾌하고 부당했으며 사실상 사기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는 오해와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따로 전달받은 내용이 전혀 없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도 행사를 취소하는 등 해결하지 않았겠느냐”며 “기관별 의사소통과 보고가 제대로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상상캠퍼스 관계자는 “신야에는 도의적으로 죄송한 일이지만 태풍 때문에 경기도의 지시로 산하 모든 행사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도민을 위한 일이었을 뿐 갑질은 말도 안 된다”고 해명했다.
극단 불의전차가 연극 ‘낙화’의 제30회 거창국제연극제의 일방적인 경연참가 무산 결정에 항의하는 팜플렛을 작성해 공개했다. 사진=극단 불의전차 페이스북
연극계에서는 이 같은 일들이 예전부터 비일비재했다고 토로한다. 연극계 한 관계자는 “연극판에서 이러한 일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동안은 연극판이 워낙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탓에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쉬쉬해왔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거창국제연극제 파행 및 ‘만주전선’ 심사 배제 사태 등에 대해 젊은 연극인들이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등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8월 열린 거창국제연극제에서는 개막을 일 주일가량 앞두고 집행위가 일부 참가 극단에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공연을 취소해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집행위 측은 거창군의회와 갈등으로 예산이 삭감돼 행사 규모가 축소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참가가 무산된 극단들에 제시한 것은 보상금 20만 원과 내년 연극제에 초청한다는 게 전부였다. 극단 불의전차의 경우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쓴 연습실 대관료, 소품, 배우 및 스태프 최저시급 등을 합해 이미 약 1160만 원을 사용한 상황이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