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부터 사극 스릴러 호러까지…“이런 상차림 또 없습니다”
제8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최종심 심사위원단. 왼쪽부터 김형남 재담미디어 기획이사, 이종규 작가, 이현세 심사위원장, 오태엽 서울미디어코믹스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대상 서바이벌을 거쳐 영예의 대상(상금 3000만 원)에는 임성훈·정보근 작가의 ‘영월동 534번지’가 최종 선정됐다. 상금 1000만 원이 수여되는 우수상에는 허윤정 작가의 ‘궁중괴물’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상금 500만 원이 수여되는 가작에는 이동화·고리 작가의 ‘디아볼릭’, 카인·마키 작가의 ‘맨하탄 게임’, 손민석 작가의 ‘살의’(가나다 순)가 선정됐다. 각 수상자들의 수상소감과 최종심 심사평을 싣는다.
#‘영월동 534번지’ 임성훈·정보근 “가볍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사회적 약자’를 조명하면서 ‘거악’의 민낯을 다룬다는 것은 웹툰이 아니더라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 주제다. 그런 주제를 큰 틀로 삼고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물 ‘영월동 534번지’를 만들면서, 작가들이 가장 고민한 것 역시 “어떻게 작품의 무게감을 덜 수 있느냐”였다.
그러나 억지로 재미를 추구하는 가벼운 작품을 만들기보다 “누군가는 우리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정 작가는 “지난해 3월부터 만들기 시작해 10개월 이상 수정 작업을 거쳐 지금의 원고를 완성했다”라며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절반을 들어내고, 그 빈 곳을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 나가길 반복했다. 그 결과로서 ‘우리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임성훈·정보근 작가의 ‘영월동 534번지’는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거대한 복지공동체를 운영하는 악인들의 추악한 과거 속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스토리의 큰 줄기로 삼고 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을 통해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능숙하게 스토리를 진행한다”는 평을 받았다.
#‘궁중괴물’ 허윤정 “포기하려던 작가의 꿈 다시 붙잡았어요”
‘사극’과 ‘호러’의 결합 장르로 우수상에 선정된 허윤정 작가는 “사실 웹툰 작가를 포기하려 했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웹툰 업계에 뛰어든 지 고작 1년 남짓 지났지만, 지난 6월 데뷔작을 처음으로 완결한 뒤부터 회의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허 작가는 “내가 계속 웹툰 작가를 할 수 있을까? 짧은 8화 연재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먹고 살려면 연재를 계속해야 하는데 내가 주간 마감 연재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차기작을 투고한다 해도 통과가 될까? 이런 저런 공포감이 나를 압도했다”고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털어 놓았다.
이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을 보게 됐고, ‘포기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실천을 하자’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 생각지도 못한 우수상 수상에 “한시름을 덜게 됐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허윤정 작가의 ‘궁중괴물’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궁중에서 출몰하는 괴물과 그로부터 사랑하는 어머니와 궁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린 왕 명종의 이야기를 그렸다. 귀신이 아닌 ‘크리처’가 등장하는 사극 호러인 데다 작가의 철저한 조사와 역사 공부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디아볼릭’ 이동화·고리 “꼭 해보고 싶었던 공포·스릴러로 수상 기쁨 두 배”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는 해도 ‘호러’는 늘 마니아들의 변함없는 선택을 받아 온 인기 장르다. 한국의 무속 신앙과 여기서 발현되는 특유의 전통 귀신(?)을 소재로 한 이동화·고리 작가의 ‘디아볼릭’은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호러 가운데서도 ‘퇴마’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중인격 사이코패스 살인자와 무당의 딸, 두 여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초자연적 에피소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모으는 것이 작품의 주 내용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은사셨던 이동화 작가님과 졸업 후에도 함께 작업을 하며 의견을 주고받았고, 그렇게 해서 준비하게 된 작품이 ‘디아볼릭’이다”라며 “졸업 작품으로 준비했던 작품을 큰 공모전에 낸다는 것이 걱정스러웠지만 입상의 결과롤 마주하게 돼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스토리를 맡은 이동화 작가는 지난 제7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당시 수상작 ‘보일러’는 현재 ‘일요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다.
이 작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입상을 해 기쁨이 두 배다”라며 “꼭 해보고 싶었던 공포, 스릴러 장르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응모했는데, 고리 작가의 임팩트 있는 그림 덕분에 수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맨하탄 게임’ 카인·마키 “힘든 시간 끝에 나온 첫 작품 감회 새로워”
웹툰을 보며 ‘머리를 쓰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추리 서바이벌 장르를 다루고 있는 카인·마키 작가의 ‘맨하탄 게임’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리게 한다. 섬으로 납치된 캐릭터들이 목숨을 건 두뇌 게임을 통해 진범과 게임의 진행자를 밝혀내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로 심사위원들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림을 담당한 마키 작가는 이번 ‘맨하탄 게임’이 첫 작품이다. 그는 “막연히 잘될 거란 기대감을 갖지는 않았지만 카인 작가의 좋은 스토리가 작품 전체에 많은 영향을 끼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라며 “첫 작품이 가작을 수상하게 돼 매우 기쁘다. 작품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살의’ 손민석 “전통 있는 공모전 수상 너무 기뻐요”
“살의를 찾아 헤매는 살인설계사.” 손민석 작가의 작품 ‘살의’가 다루고 있는 캐릭터는 다소 생소하다. 스스로가 살인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살의를 조종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설계한다. 살인 범죄라는 조금은 전형적인 소재에서 신선한 캐릭터 구성으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끈 ‘살의’는 “몰입도 있게 스토리텔링을 이끄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선택한 웹툰 작가의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좌절을 거듭한 끝에 올해에서야 웹툰 지원 사업 선정과 공모전 당선이 이어지는 등 빛을 보게 됐다. 손 작가는 “이제까지 꿈을 좇는 남편을 지켜봐 주고 격려해 준 아내, 작품에 많은 도움을 주신 멘토님들께 너무 감사하다”라며 “아직 작가로선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실력이지만 계속 노력하고 성장해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좋은 만화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심사 총평] “스토리 수준 높아지고 여성향 작품 늘어” 2011년부터 시작된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은 그간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발굴하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만화공모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올해 역시 도약을 꿈꾸는 많은 작가들의 관심을 받아 우수한 작품들이 접수됐다. 특히 예년보다 더욱 다양한 장르의 스토리와 신선한 아이디어의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먼저 대상을 수상한 임성훈, 정보근 작가의 ‘영월동 534번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기억을 잃어버린 입양아 여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작가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을 통해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능숙하게 스토리를 진행한다. 또한 정성스럽고 탄탄한 작화력이 더해져 몰입도 높은 수작이 탄생했다. 특히 만화 연재 이후의 영상화에도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다만 다소 산만한 초반 전개와 캐릭터에 대한 정서적 이입이 약한 부분이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럼에도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대상으로 손색이 없는 매우 높은 수준의 작품이었기에, 심사위원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우수상을 받은 ‘궁중괴물’은 치밀한 스토리 구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조선 궁궐에 의문의 괴물이 존재한다는 소재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다뤄진 적이 있어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작가는 치밀한 인물묘사와 자료조사로 탁월한 몰입도를 보여준다. 작품 내에서 진행되는 사소한 복선과 대화 속의 팽팽한 긴장감은 전체 출품작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흡입력을 보여줬다. 다만 이러한 수준 높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다소 부족한 그림과 장면 연출의 기본기가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가작을 수상한 ‘디아볼릭’은 안정적이고 능숙한 작화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 역시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전개가 필요하다고 평가됐다. 그럼에도 놀라울 만큼 매 장면의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다만 이야기와 그림의 장르적 결합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심사위원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역시 가작을 수상한 ‘맨하탄 게임’은 실제 게임을 하는 듯한 흥미로운 전개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에게 상업적인 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재미와 몰입도 측면에서 탁월한 작품으로 꼽혔다. 다만 이야기의 설정과 캐릭터의 디자인이 기존의 여러 작품을 통해 이미 대중들에게 많이 소모돼 흥미가 반감된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러한 부분이 보완된다면 더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가작을 수상한 ‘살의’는 누군가의 살인을 설계해주는 ‘살인 설계자’가 등장하는 범죄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다. 출품된 내용만으로 평가했을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소재를 몰입도 있게 다루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러한 장르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유지시켜주는 작화력이 아쉬웠다. 인물의 표현과 배경의 어울림 등이 조금 더 자연스러웠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8회 일요신문 만화 공모전에서는 스토리의 수준이 높은 작품들 여러 편이 경쟁을 벌였다. 과거와 비교해 작화의 비중보다 스토리의 비중이 높아지는 웹툰의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여성향 작품의 출품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폭넓게 경쟁하는 공모전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공모전 역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다수 발굴됐고, 작가들은 수상과 연재라는 소중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됐다. 좋은 작가와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큰 즐거움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만화와 콘텐츠 산업 전체에 새로운 활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이종규 작가, 정리=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