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숏 슬리퍼’ 아닌 대다수 잠 줄이면 부작용 더 많아…8시간이 ‘적당’ 6시간 ‘능률 뚝’ 4시간 ‘날 샌 컨디션’
성공한 삶을 말할 때마다 아마 이런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잠을 많이 자는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게으르고 나태하다는 인상을 주는 반면, 잠을 적게 자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똑똑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성공한 CEO들 가운데 하루 수면 시간이 여섯 시간이 넘는 경우가 드문 것 역시 이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과연 꼭 그럴까. 이런 전제에 대해 최근 몇몇 과학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반드시 잠을 적게 자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잠을 많이 자거나 적게 자는 것은 유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모두가 수면 시간을 억지로 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수면 시간을 줄이면 능률과 생산성이 저하되고, 이로 인한 부작용도 더 많이 나타나게 된다.
태생적으로 잠을 적게 자도 괜찮은 사람들을 가리켜 ‘숏 슬리퍼(short sleeper)’ 혹은 ‘엘리트 슬리퍼(elite sleeper)’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런 ‘엘리트 슬리퍼’들은 극히 드물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여덟 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과 두뇌에 좋다고 말한다. 무조건 ‘적게 자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나에게 맞는 수면 습관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펩시 앤 코’의 CEO에서 물러난 인드라 누이는 하루 네 시간만 자는 ‘숏 슬리퍼’로 유명하다. AP/연합뉴스
지난 8월 초, 12년 동안 몸담았던 ‘펩시 앤 코’의 CEO직에서 물러난 인도 출신의 인드라 누이(62)는 전통적인 CEO상에서는 많이 벗어난 인물이었다. 여성인 데다 워킹맘이었으며, 인도계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동료 CEO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하나 갖고 있었으니, 바로 ‘적게 자는 습관’이 그것이었다.
하루 네 시간만 자는 ‘숏 슬리퍼’로 유명한 누이에 대해 ‘디 애틀랜틱’은 “가장 존경받는 누이의 습관 가운데 하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자정까지 일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이 외에 네 시간만 자는 것으로 유명한 CEO들로는 버진그룹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 야후! CEO인 마리사 메이어,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공개적으로 “적게 자야 성공한다”고 말해왔으며, 이들이 말하는 최적의 수면 시간은 세 시간, 네 시간 혹은 다섯 시간이었다.
이렇게 적게 자면서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숏 슬리퍼’를 다년간 연구해온 캘리포니아대학의 생물학자 및 유전학자인 잉후이 푸는 “분명히 하루에 4~6시간만 자고도 능률적으로 일하고, 장수하며,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이처럼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의 경우에는 하루 네 시간만 자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푸는 “이런 사람들은 매우 낙천적이고 활기가 넘친다. 일도 잘하고 또 장수할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이에 대해 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숏 슬리퍼’로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간혹 꾸준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 수면 시간을 줄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드문 경우다.
푸는 자신을 예로 들었다. “나는 하루에 여덟 시간 자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매일 여덟 시간을 잘 수는 없다. 그래서 최소한 여섯 시간은 잘 수 있도록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아침 싸우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이렇게 잠을 줄일 경우에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푸는 “2주가 지나자 내 인지력이 70%로 떨어졌고, 생활이 영향을 받았다. 계속 이렇게 잠을 적게 잔다면, 아마 장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면 부족은 각종 질병을 야기한다. 선천적으로 ‘숏 슬리퍼’가 아니라면, 수면 부족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잠을 줄이는 것이 반드시 효율적이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과학자는 또 있다. 수면 및 시간생물학 분야의 수석 연구원인 데이비드 딩즈는 제한된 수면 사이클을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대학의 학자다. 현재 그의 연구팀은 수면 사이클이 생체 리듬과 인간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딩즈는 수면 시간을 억지로 줄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매일 네 시간씩 자야 성공한다는 CEO들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데일리비스트’를 통해 이렇게 주장한 딩즈는 자신이 진행했던 실험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팀이 수백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 결과, 의도적으로 수면 시간을 줄인 경우 능률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건강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실험은 무작위로 선정한 건강한 성인을 △여덟 시간 자는 사람 △여섯 시간 자는 사람 △네 시간 자는 사람 △72~80시간 동안 깨어있는 사람 등 네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이런 수면 패턴으로 생활한 각 그룹들을 관찰한 결과 이들의 인지력, 생체 리듬, 건강 등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잠을 적게 잔 그룹들이 더 예민했으며, 기본적인 일을 처리하는 속도도 느렸다. 반면, 여덟 시간 잠을 잔 그룹들은 하루종일 별다른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고, 기억력과 인지력에서도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여섯 시간 잠을 잔 그룹이었다. 고작 두 시간 차이긴 하지만 여섯 시간 잠을 잔 그룹과 여덟 시간 잠을 잔 그룹 사이에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여섯 시간 잠을 잔 사람들은 여덟 시간 잠을 잔 사람보다 주의력과 능률이 저하됐으며, 네 시간 잠을 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딩즈는 “이들은 상태가 매우 나빴으며, 예민해졌고, 사고력도 둔화됐다”라고 말했다.
선천적인 ‘숏 슬리퍼’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지로 수면시간을 줄일 경우 업무능률이 떨어지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처럼 잠을 적게 잔 사람들이 피곤해 하고 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제대로 된 수면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통 수면 단계는 1~5단계로 나뉘어지는데, 옅은 수면으로 진행하는 1단계부터 그보다 조금 더 깊은 2단계, 그리고 깊은 수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단계와 가장 깊고 편안한 4단계를 거쳐 마지막으로 꿈을 꾸는 5단계인 ‘렘수면’ 단계에 이르게 된다.
사람은 보통 아홉 시간 동안 잠을 잘 경우 이 과정을 다섯 차례 정도 반복한다. 하지만 수면 시간이 짧을 경우에는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우리 몸은 깊은 수면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우 특히 뇌는 충분히 회복될 수 없는데, 잠이 부족하면 하루종일 나른하고 머리가 멍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3일 내내 잠을 못 잔 그룹의 상태가 가장 나빴다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 시간 잔 사람들의 경우에도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사람들과 거의 비슷한 상태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CEO들이 하는 ‘수면 다이어트’를 할 경우, 밤을 꼬박 새는 것과 신체 기능면에서 거의 동일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속하는데, 이는 앞서 말했듯 ‘숏 슬리퍼’ 혹은 ‘엘리트 슬리퍼’는 지극히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엘리트 슬리퍼’들에게서는 잠을 적게 잘 경우 나타나는 신체의 부정적인 증상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령 집중력이나 인지력 등에 전혀 문제가 나타나지 않으며, 아무리 잠을 적게 자도 하루종일 정신이 또렷하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엘리트 슬리퍼’들은 아무리 잠을 오래 자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더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억지로 잠을 적게 자는 습관을 키운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르다. 바로 대부분의 성공한 CEO들이 이런 경우에 속할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잠이 부족하기 때문에 낮잠을 자는 경우가 많으며, 아침에 일어날 때도 몸은 더 누워있길 원하지만 억지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딩즈는 CEO들 가운데 잠을 적게 자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사실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바로 ‘수면 허세’를 부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말하는 것보다 실제 수면 시간은 더 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잠을 자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사실을 상대에게 미묘하게 암시하고, 또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수면 시간을 줄여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런 CEO들의 경우, 낮잠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틈틈이 쉬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딩즈는 말했다.
미 노동통계국의 자료 역시 이와 비슷하다. 조사 결과, 미국인들은 실제 응답한 시간보다 사실은 잠을 더 많이 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딩즈는 “잠을 적게 잔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추적한 결과, 실제로는 하루종일 낮잠을 자거나 졸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물론 최소 몇몇 CEO들은 ‘엘리트 슬리퍼’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모두가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수면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딩즈는 말했다. 문제는 ‘수면 허세’를 부릴 경우 자칫 몸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딩즈는 하루 네 시간 자는 사람만이 강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수면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 역시 버리라고 말한다. 선천적으로 ‘엘리트 슬리퍼’로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는 한, 잠자는 시간은 결코 쓸데 없는 시간이 아니다. 하루 가운데 3분의 1을 잠을 자는 데 쓰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더 좋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요즘 현대인들은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하라’는 충고를 귀가 따갑게 듣는다. 가령 ‘채소를 먹어라’ ‘하루에 최소 30분씩 운동을 해라’ ‘설탕과 지방 섭취를 줄여라’ 등이 그렇다. 하지만 딩즈는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 그리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깊은 잠을 자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능력 있는 CEO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은 아주 쉽다는 것이다. 딩즈가 말한 이 방법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여덟 시간 잠을 자라”.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