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따라 변화 커…지켜보는 단계”vs“대북사업 TF팀 만들고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 중”
지난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2차남북정상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경제통일 구현’ 구상을 내놨다. 환서해벨트-접경지역 평화벨트-환동해벨트를 이어 ‘H자 형태’의 경제벨트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통일부를 비롯해 정부 각 부처는 TF를 구성하고 실현을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나섰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하고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한다는 ‘통일경제특구’ 구상을 밝혔다.
정부가 지난 11일 국회에 제출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중 남북경협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남북은 양측 당국자가 거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고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을 적극 추진해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대책을 취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남북협력기금 사업비 2986억 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는 비용추계서를 첨부했다.
재계는 정부의 시그널을 읽기 바쁘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 전후 기업들은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보다 “지켜봐야 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대북사업 참여가 예측되는 주요 대기업들도 “구체적인 진행 내용은 없다”고 답했다. 일부 기업은 “대북사업 관련 준비를 시작했다”면서도 “정치적 이슈가 남아 있어 입장을 언급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재계가 대북사업 계획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5·26 2차 남북정상회담과 지난 6월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나서다. 북미정상회담 개최 당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논평을 통해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롯데그룹은 ‘북방TF’ 공식 출범을 알렸고 KT는 ‘남북협력사업개발TF’를 신설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대북사업을 진행하는 TF를 꾸린 사실을 밝혔다.
지난 8월 금강산에서 두 차례 열린 제21회 이산가족상봉행사 지원에 직접 뛰어든 기업도 많았다. 현대아산의 현장 지원과 CJ대한통운의 물자 운송, 현대그린푸드와 CJ제일제당, 동서식품 등의 출장조리서비스 및 식품 후원이 이어졌다.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은 임시환전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중순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반입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급랭하기도 했다. 북한과 관계는 정치적·국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상기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예정된 상황임에도 국내 주요 기업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3차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동행할 경제사절단을 청와대가 선정해 초청했다는 이야기가 돌자 일부 기업은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 따르면 청와대는 방북을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13일경부터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 총수를 비롯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경제단체장 등을 초청했다. 경제사절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기업들은 “청와대에서 연락이 온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재계 일부에서는 이 같은 과정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정세에서 리스크가 큰 대북사업을 정부의 요구에 따라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개성공단의 전례 때문에 전향적 결단이 없으면 투자 결정을 하기 어렵다”며 “북측은 본인들이 보여준 것에 대한 리액션을 독촉하는 모양새지만, 유엔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는 경협이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4대 그룹에서는 이번 경제사절단이 북측을 안심시키려는 일종의 ‘보여주기식’ 전략으로 보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 이슈 때마다 재계에서 사업계획을 검토하거나 투자 기회를 보는 등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북사업은 국제정세나 정권에 따라 변화가 커 일반적 논리로 사업을 진행하거나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SOC 사업 관련 계열사가 없거나 적은 기업은 남북경협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알 수 없다”며 “기업들 대부분 정부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아직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단계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그간 꾸준히 대북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여온 기업들은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금강산 관광 사업권과 북한 7대 SOC 개발 독점권, 개성공단 사업 독점권을 보유한 현대그룹의 기대는 더 크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그룹 차원의 TF와 현대아산 내 TF를 구성해 준비하고 있다”며 “확보된 SOC 사업권을 토대로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 등 과거 진행해오던 사업 또한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상시체제로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9월 평양공동선언’에 재계의 분위기는 다시 환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동선언에서 남북경협과 관련해 비교적 구체적 내용이 언급됐기 때문이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남북의 철도 및 도로 연내 착공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사업의 우선 정상화가 명시됐다.
이번 방북에 총수가 동행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성공단이 재가동하면 앞선 경협 때처럼 중소기업들의 참여가 우선되고, SOC 관련 공기업들의 참여가 먼저일 것”이라며 “현재 속도로 볼 때 대기업의 대북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후속조치가 어느 정도 진행된 3~5년 이후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지자체도 ‘남북경협’ 준비 열풍? 전국지방자치단체(지자체)도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와 열의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 지자체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남북경협을 준비하고 있으며 남북간 교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강원도는 ‘강원평화특별자치도’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 유일 분단도인 강원도 접경지역 일대를 평화특별자치도로 지정해 남북이 함께 지방정부 차원의 자치적 교류를 하며 통일을 대비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강원평화특별자치도’ 추진을 위해 도는 ‘강원도 남북교육협력 추진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남북교류협력 추진과제 최우선 10대 과제를 선정했다. 강원도는 ‘응답하라 1998’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1998년 전국 최초로 남북교류사업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조직을 구성하는 등 제도화에 앞장섰던 만큼 남북교류 제2의 도약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부산시는 지난 5월 해운항만·수산·기간산업·일자리 관련 TF를 구성했다. 부산항을 남북 경제협력의 거점으로 삼고 한국과 중국, 러시아를 잇는 복합물류 루트 사업을 추진한다. 부산시는 ‘수산분야 남북 경제교류협력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수산분야 경협도 추진한다. 북한 수역 내 신규 어장을 확보하고 수산분야 교류협력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이밖에 울산시는 철도와 항만을 활용해 경협 사업 발굴에 나섰으며, 인천시는 한강 하구를 활용한 공동 관광 사업을 추진 중이다. 경기도는 결핵 치료제 지원을 비롯해 어린이 충치 치료 및 취약계층 의료지원 등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재개하고 올해 남북교류협력기금 55억 원을 사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주시교육청이 추진 중인 남북교육 교류사업이다. 광주시교육청은 지난 8월 24일 평양시 인민위원회 교육처에 일제 강점기 항일학생운동에 관한 공동교육을 제안했다. 광주시교육청은 남북 공동교육 및 교육교류사업을 위해 지난 4월부터 ‘남북교육교류기획단’을 출범해 준비해왔다. 남북 수학여행과 남북 초·중·고등학생 교류 추진 등도 준비 중이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남북교육교류사업은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의 공약”이라며 “항일학생운동 공동교육 건은 현재 통일부의 승인을 거쳐 북측에 사업계획서를 전달했으며, 답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