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북한맥주 국내 유통하고 웅진음료 수출 계획”…현대 “대북제재 안 풀린 상황에서 불가능”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 빌딩. 사진=최준필 기자
5년 만에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웅진식품 인수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7월 말 진행된 웅진식품 예비입찰에 국내외 전략적투자자(SI), 재무적투자자(FI) 등 6~7개 업체가 참여했으며, 대만 제과업체 왕왕그룹 등이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로 추려졌다. 이 가운데 현대투자파트너스도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현대투자파트너스는 유망한 신기술을 가진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현대그룹 내 투자전문 회사다. 계열사 컨설팅과 투자자문을 하던 ‘현대투자네트워크’에서 지난해 5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주도로 사명과 업종을 변경했다. 10억 원이던 자본금도 현 회장이 직접 사재를 털어 현대엘리베이터와 함께 유상증자에 참여함으로써 1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식음료사업과 큰 인연이 없는 현대그룹이 웅진그룹 인수전에 나선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고 있다. 앞서 2016년 현대아산이 탄산수 수입과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제협력이 논의될 것으로 보이면서 현대그룹이 웅진식품 인수를 발판 삼아 대북사업을 진행할 것을 검토했다는 말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북한의 대동강맥주 판권을 구매해 국내에 유통시키고 웅진식품 음료 등을 북한에 수출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그룹은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남북경협 태스크포스를 출범, 대북사업 재개를 위한 준비작업을 착수했다.
현대그룹 측은 웅진식품 인수 검토는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투자파트너스가 투자금을 모아 검토·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투자사가 수익성 있고 유망한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현대그룹이 인수하는 걸로 확대해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은 대동강맥주 판권 구매와 관련해서도 강하게 부인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아직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 맥주를 수입할 수 있겠느냐”며 “설사 판권을 사오려 한다 해도 대북사업을 담당하고 식음료 사업을 해본 현대아산을 통해 하면 되는데, 이 때문에 굳이 웅진식품을 인수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현대투자파트너스에 현정은 회장은 지분율 43.57%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또 사내이사로도 등재돼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들 정영선 씨도 3.96%의 지분을 보유하고, 비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총수와 경영수업 중인 아들이 관여하고 있는 현대투자파트너스의 웅진식품 인수전 참여를 계열사만의 결정이라고 선을 그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과거 대북사업을 주도한 현대그룹이 남북경협 최대 수혜기업으로 주목받았지만 그 사이 사업이 많이 축소돼 경협이 재개돼도 현대그룹이 당장 진행할 만한 사업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대동강맥주 판권도 알아본 것 같은데,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굳이 대북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웅진식품은 매력적인 매물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기업가치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웅진식품은 2013년 웅진그룹 재무구조 개선 과정에서 국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1150억 원에 매각됐다. 이후 웅진식품은 동부팜가야, 대영식품 등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2013년 2억 원에 불과하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150억 원으로 급증했다. 웅진식품에서 나오는 ‘하늘보리’ 음료는 보리차 시장에서 점유율 75%를 차지하고, 상온주스도 시장점유율 50%에 육박한다. 이번에 매각 대상은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웅진식품 지분 74.75%. 시장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해 매각가를 3000억 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한앤컴퍼니는 기업 실사 기간을 거쳐 오는 10월 중 본입찰을 마무리할 계획을 갖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