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법까지 부경대 출신 맞춤식으로 개정했을까
이를 두고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A 씨가 2013년 11월 수협중앙회를 그만 둔 이유가 조직 내부에서 발생한 추문 때문이었던 까닭이었다. 복수 이상의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A 씨는 2011년 9월 국외 출장 때 함께 갔던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위력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지속됐다. 피해 직원이 2013년 5월쯤 A 씨의 지속된 악행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었다“며 “이 사실이 조직에 알려져 크게 문제된 바 있었다. 문제가 불거진 뒤 A 씨는 사표를 냈다. 하지만 몇 해 뒤 조용히 복직해 중국에서 근무하고 나서 수협중앙회 본사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A 씨의 추문 사실이 알려진 건 피해 직원이 남긴 문서 때문이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이 문서에는 A 씨의 행적이 고스란히 나와 있었다. 수협중앙회 관계자에 따르면 피해 직원은 이 문서를 회사를 그만 둔 뒤 김영태 당시 대표이사에게 보냈다. 문서를 받아 든 김 전 대표가 A 씨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려 하자 A 씨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2016년 초부터 A 씨의 수협중앙회 복귀설이 조직 안에서 돌기 시작했다. 직원 대다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본사로 바로 들어오면 거센 반발이 예상됐다. 수협중앙회는 2016년 4월 일단 A 씨를 중국에 있는 자회사로 배치했다.
중국으로 파견됐던 A 씨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수협중앙회 본사로 돌아왔다. 수협중앙회는 2017년 1월 26일 인사발령을 내 A 씨를 본사 고위 임원으로 임명했다. 인사 발령일은 설 연휴 직전이었다. 연휴 기간을 이용해 내부 반발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국내 주요 기업의 국외 지사 근무는 보통 4년이다. 2013년 사건이 불거질 당시 A 씨는 내부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수협중앙회는 A 씨의 중국 자회사 파견에 앞서서도 A 씨의 복직을 끊임 없이 시도했다고 알려졌다. 또 다른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윗선에서 집요하게 A 씨를 조직으로 불러들이려 했다. 2015년 8월 김영태 당시 대표이사는 A 씨를 수협유통 사장으로 임명하라는 압박을 계속 받았다. 김 전 대표는 ‘A 씨는 추문으로 문제된 바가 있어 어렵다’고 버텼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윗선의 채용 압박은 계속됐었다는 게 수협중앙회 관계자 증언이었다. 김영태 전 대표는 이에 분개하며 A 씨의 추문 관련 문서를 수뇌부에 넘겼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수협중앙회에서 돌던 A 씨의 추문 고발 문서였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김영태 전 대표의 버티기는 오래 가진 못했다. 2016년 1월 12일 부서장 회의 때 사퇴의 뜻을 밝혔다. 일각에선 김 전 대표의 사퇴 이유가 ‘새 술 새 부대론’으로 알려졌었다. 허나 김 전 대표는 임기를 고작 4개월 남긴 시점에서 사직서를 냈다. 새 술 새 부대론에 따르는 그였다면 2015년 3월 김임권 회장이 취임했을 때 이미 조직을 나왔어야 했다. 김 전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A 씨는 부경대 출신이라고 나타났다. A 씨 외에도 수협중앙회 내부는 현재 부경대 천하를 향한 불만이 계속 끓어 오르고 있다. 수협중앙회 관계자에 따르면 집행부 고위급 전체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부경대 출신이다. 주요 실장급도 대부분 부경대 출신이라고 알려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수협중앙회의 인사 전횡이 계속되자 정부는 회장의 역할을 이사회 운영으로만 한정하고 대표가 실무에 전담할 수 있도록 수협법을 개정했다. 임원으로 분류되던 수협중앙회 상임이사 3명은 오직 이사회 승인을 거쳐서만 임명될 수 있었다.
2016년 5월 수협법은 갑자기 개정됐다. 상임이사는 3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상임이사 두 자리는 ‘집행간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이사회 승인이 아닌 대표이사 임명으로 바뀌었다. 개정안에는 “수협중앙회의 이사회 및 상임임원을 축소해 의사결정의 효율화 및 경영의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라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
허나 실상은 상임이사 3명의 명함 석 장이 상무 2명과 상임이사 1명의 명함 석 장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고위 간부의 출신 학교밖에 없었다. 한 고위 간부는 수협법 개정으로 ‘선물’ 하나를 받았다. 추문 뒤에도 조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권리’였다.
이와 관련 A 씨는 “사실 무근이다. 당시 회사를 그만둔 건 심신이 피로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수협중앙회는 정년 2년 전에 그만 두면 명예퇴직 위로금과 퇴직금을 함께 받는다. 정년을 다 채울 때까지 받을 수 있는 월급과 퇴직금을 합한 것과 별다를 바 없다. 그런 이유로 수협중앙회 임직원 대부분은 임기 2년을 앞두고 명예퇴직을 한다. A 씨는 이런 흐름과 달리 명예퇴직을 하지 않고 2013년 정년을 1년 앞서 그만뒀다. 명예퇴직 위로금 절반을 포기한 셈이었다. A 씨는 “그건 사람마다 다른 법”이라고 해명했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당시 그 사건은 적절한 조사를 다 거친 뒤 정상적인 인사로 진행된 건”이라며 “법 개정은 해양수산부에서 한 거지 우리가 뭘 어떻게 하는 게 아니다. 부경대 출신 챙기기가 아니라 부경대 출신 자체가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