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지검장 “수사 의지” 암시 속 법조계 전망은 엇갈려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가 6일 오전 평양 중앙식물원의 10.4 선언 기념 소나무( ‘노무현 소나무’) 앞에서 봉하마을의 흙과 물을 뿌린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 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의혹에 대한 수사 중에서 500만 달러는 아들 노건호 씨, 조카사위 연철호 씨와 관련됐다. 2009년 3월 말 태광실업 홍콩현지법인의 500만 달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 씨와 노건호 씨에게 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이 돈 거래에 대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요구해 건넨 돈”이라고 주장했고, 노 씨와 연 씨는 ‘투자 목적’이라고 주장해 돈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핵심이었다.
노건호 씨 사건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야당 측에서 검찰이 일방적인 ‘정치보복’을 한다며 맞불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소시효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던 노건호 씨 수사도 같이 하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를 꾸려 맞서고 있다. 이 와중에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알려졌던 500만 달러 건이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고 확인돼 다시 불이 지펴지고 있다.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알려졌던 이유는 적용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로 법은 같지만 1억 원 이하까지는 5년 이하의 징역이 적용돼 공소시효는 10년에 해당된다. 반면 500만 달러가 뇌물로 인정될 경우 앞서의 법에 따라 1억 원 이상이 된다. 이때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 적용돼 공소시효가 15년까지 늘어나게 된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같은 뇌물죄라도 받은 돈에 따라(수수금액) 적용되는 법조문과 법에 규정된 장기형(제일 높은 형)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록을 자세히 봐야 알겠지만 수수액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고 예상된다. 예를 들어서 뇌물로 10억 원을 받고 1년 있다가 문제 되니까 10억을 갚으면서 ‘난 빌린 거고 돌려준 거다’라고 주장하면 당사자들밖에 모르는 범죄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증거가 없다면 10억 원의 연 5% 이자를 계산해 5000만 원 상당의 이익을 뇌물로 취득한 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소시효가 얼마나 되는지 의견이 갈리게 된다는 얘기였다.
한국당 내에서도 공소시효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 내 검사 출신 국회의원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갔다고 한다. ‘공소시효 10년’이 다수파였다. 김성태 원내대표, A 의원이 10년을 주장했다. 소수파는 15년을 주장했다. 주광덕 의원, B 의원이 15년을 지지했다.
김 원내대표 측의 주장이 당론으로 채택됐다. 2017년에는 공소시효가 지나기 직전이라고 하다가 ‘2018년 2월 21일부로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만료될 때까지 뭐했나’고 공격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이 이 사건은 15년 공소시효라고 확인해줬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2023년까지 공소시효가 남아있다고 사실상 확정됐다.
확인이 되자 곧바로 한국당이 반격에 나섰다. 15일 김성태 원내대표는 15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노건호 씨가 500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에 대해 지금이라도 검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정치공세에서 그치는 수준이었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도 이 사건을 검토했다고 밝히면서다. 19일 국정감사에서 주광덕 의원이 윤 지검장에게 “왜 지금까지 고발인 조사도 안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윤 지검장은 “저희가 배당은 형사6부에다 해놨지만 특수부 부장검사들과 함께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했을 때 이것이 과연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다각도로 검토를 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에 주 의원은 윤 지검장에게 ‘언제부터 검찰이 수사하기 전에 미리 정무적, 정치적인 검토부터 하냐’며 질책했다. 윤 지검장은 “수사 의지를 보여 달라고 말씀을 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고 답했다. ‘수사 의지’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지만 기존의 입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준 사람인 박연차 회장의 증언이 기존에 있고 돈 거래만큼은 이미 인정된 만큼 수사만 하면 쉽게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쪽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뇌물과 성범죄는 한 쪽의 진술만 있어도 유죄가 나올 수 있다”며 “이미 중수부가 달라붙어 수사를 한 만큼 대검 캐비닛을 열면 쉽게 기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쉽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윤 지검장의 말을 두고 ‘윤석열 지검장이 괜히 특수부와 재수사 검토하다 접은 게 아니지 않겠나’라는 해석이다. 형사사건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진술도 중요하지만 당시 ‘정치적인 역학관계’, ‘진술의 신빙성’을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며 “또한 이미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인 선택을 해 공소권이 없어 가장 중요한 수사도 불가능하고 10년이 지난 사건 수사가 쉬울 리 없다”고 주장했다.
노건호 씨에게 공소시효와 관련한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