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자회 측 “학살지 둔갑” 베트남 간부들 고소…한베평화재단 “학살지 맞아”
베트남 꽝남성의 하미마을에 위치한 하미위령비. 사진=한베평화재단
최근 위령비를 두고 두 단체의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한베평화재단에서 하미마을 위령비에 참배하는 코스로 ‘베트남 평화기행’이라는 이름의 여행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전자회 측에서는 ‘학살지가 아닌데 학살지로 둔갑해 영리 목적의 여행 상품에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 평화기행은 1회당 30인 기준 1인당 약 165만 원의 참가비를 받고 있다. 반면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는 ‘학살지가 맞고, 추모비를 세운 이후에는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의 것이다’라고 맞서고 있다.
‘하미 위령비’는 16년 전인 2001년 김문구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이사장이 사비를 들여 만들었다. 김 이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베트남에 가게 된 계기는 2000년 한 방송에서 하미마을에서 한국군 학살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1968년 2월 하미마을에 주둔했던 청룡부대(해병 제2여단)가 135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이었다.
김 이사장은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파악해보고자 갔다”며 “당시 하미마을에서 한국군 학살이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미마을은 격전지라 여러 부대가 지나갔다”며 학살 주장을 부인했다. 김 이사장은 위령비를 지은 이유도 한국군이 학살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희생자 가족들이 희생자들을 제사 지낼 제단 하나 없다고 해서 만들게 됐다. 희생자도 불쌍하고 8년 8개월 베트남전 기간에 5049명이 전사한 한국 군인들도 불쌍해 양쪽 모두를 위로할 이름으로 최초에는 ‘화해의탑’이었다”며 “양쪽에 베트남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리고 양쪽 추진위원 이름 5명을 넣기로 했는데 나중에 이 부분은 협상이 결렬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가치와 베트남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비교적 큰 돈인 약 3000만 원을 공사비로 넘겼다.
이 돈은 그가 직접 전했고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않고 마련한 돈이었다. 그는 이 돈 이외에도 베트남에 위령탑 건립 문제로 여러 번 방문하면서 청바지, 홍삼, 화장품, 손목시계 등을 위로차 선물로 건넸다. 그는 “우리도 6·25 전쟁 이후 못 먹고 살던 때를 생각하면서 18년간 전쟁을 겪으며 너무 못사는 나라에 선물이나마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위령탑이 문제가 된 건 준공식 바로 직전이었다. 위령비 뒤에 ‘1968년 이른 봄, 정월 24일에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 선량한 주민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하미마을 30가구, 135명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마을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지는 걸 알게 되면서다. 김 이사장을 포함한 베트남참전자회는 ‘이런 비문으로는 도저히 준공식을 할 수 없다’며 준공식을 보이콧했다. 2001년 4월 당시 한겨레는 응웬 반 하이 디엔증사 인민위원회 주석이 “위령비를 지어준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비문내용까지 간섭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우리의 역사이고 과거이며 진실이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비문을 두고 갈등을 겪다, 준공식 직전 비문 위에 평화를 상징하는 연꽃 그림으로 덮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 과정을 두고 구 이사와 김 이사장의 말이 엇갈린다. 김 이사장은 “이들이 비문에 학살을 운운한 건 참전자회에서 대접을 받기 위한 수작이었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김 이사장은 응웬 주석이 비문 삭제 대가를 요구하며 10명의 베트남 간부가 한국 관광을 다녀갔다고 폭로했다.
김문구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이사장이 응웬 주석 등을 초청해 관광시켰다는 증거 사진. 사진=김문구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이사장 제공
그는 응웬 주석 외 9명이 한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김 이사장은 “처음에는 한국군 학살 같은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한국 관광 및 접대가 그들의 목적이었다”며 “10명이 한국으로 와서 7일간 관광하며 쓴 항공비, 숙박비, 체류비, 여행 경비 등에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이후 비문을 삭제한다고 말했는데 최근에서야 삭제한 게 아니라 비문을 덮는데 그친 것으로 알고 사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이 한국을 다녀간 이후 비문은 연꽃 그림으로 덮여 존재를 알 수 없게 됐다.
반면 구 이사는 “참전자회 등의 압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삭제됐다”며 “올해가 학살 50주기 위령제였다. 이후에는 비문이 해방됐으면 한다”며 비문을 가린 연꽃이 치워지기를 희망했다. 응웬 주석의 한국 관광 이야기에 구 이사는 “처음 들은 이야기지만 결국 고위직에게 향응을 접대해 삭제했다는 이야기밖에 안된다”며 “마을 주민들은 비문 사태로 마음이 다들 돌아섰다”고 반박했다.
사실이 어떻게 됐든, 김 이사장은 비문 사태로 위령비에서 마음이 떠나 준공식이 끝난 이후에는 발길을 끊는다. 구 이사가 본격적으로 위령비를 찾고 위령제를 지낸 건 2013년 45주기 위령제부터라고 한다. 하미마을 위령비에 들렀는데 담장도 무너져 있고 동물 분뇨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보수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 이사는 “비문 삭제 사태 등으로 마을 사람들도 등을 돌려 버려진 상태였다”며 “몇 번이나 찾아 뵙고 마음을 전하면서 누그러졌고 재건 사업도 해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구 이사는 이후 이곳을 자주 찾게 됐고 한베평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코스에도 넣게 된다. 참전자회에서 문제를 삼는 한베평화재단의 주요 사업인 베트남 평화기행이다. 베트남 평화기행 신청 페이지에는 하미 위령비 사진이 걸려 있다.
하미 위령비 뒷면. 비문은 사라지고 연꽃 그림으로 덮여 있다. 사진=한베평화재단.
이를 두고 김 이사장은 “내가 어렵게 세운 하미 위령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큰돈을 들여 지었기 때문에 모든 위령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지 하미 위령비를 여러 군데 사진에 쓰고 있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반면 구 이사는 “기념비, 기념물을 누군가가 세웠더라도 세운 이후에는 그 사람 소유가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소녀상을 세운 사람이 소녀상이 자기 것이라고 못 오게 하는 게 말이 되냐. 한베평화재단에서 다른 곳에 세운 또 다른 기념비는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고 사진도 찍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2017년에는 오랜만에 베트남참전자회가 하미 위령비를 방문했지만 지을 때 새겨둔 명패가 없어진 것을 두고 소란이 일기도 했다. 준공식 때까지는 문을 기준으로 좌우로 한쪽에는 하미마을 인민위원회 이름이 또 다른쪽에는 설립자인 김 이사장의 명패가 걸려 있었다. 참전자회 측에서는 ‘명패가 왜 없어졌냐’고 묻자 하미마을 측에서 도로 확장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참전자회는 이 같은 요구를 거절했고 발길을 돌려 인근 사찰에서 위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도로 확장은 한베평화재단에서 하미 50주기 사업으로 채택해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구 이사는 준공 직후에는 명패가 있었지만 비문 삭제로 인해 버려졌을 때 이미 사라졌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베평화재단의 주요 사업인 ‘평화기행’에서 하미 위령비를 방문하는 모습. 사진=한베평화재단.
이번 문제는 단순히 두 단체의 갈등을 넘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전망이다. 최근 한 방송에서 구 이사가 하미마을 위령탑을 두고 ‘양민학살 내용의 비문이 삭제된 게 아니라 연꽃 그림으로 가려지기만 했다’고 설명한 것을 듣고 김 이사장이 문제제기에 나섰다. 약 한 달 전 김 이사장은 베트남 대사관에 찾아가 당시 관광을 대접받았던 10명 중 주요 인물 세 명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삭제 조건으로 한국 방문을 하고도 연꽃으로 위장했을 뿐 삭제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베트남 대사관은 이 같은 고소장을 접수한 상태다. 이번 고소 결과는 약 3개월 후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김 이사장은 “좋은 의도에서 지은 위령비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심지어 참전자회에서는 나와 구 이사장이 같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무 관련도 없는 데다 앞으로 베트남에 접수한 고소 결과를 보고 한베평화재단과도 다툴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구 이사는 “하미마을 학살은 국내 연구와 시민참여재판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됐다고 말할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죄를 하는 게 양국 간의 관계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고 답했다.
대체로 참전용사 사회에서는 김 이사장의 지적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이를 두고 베트남 참전용사들 사이에서도 참전자회가 작은 것에 집착하고 대승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베트남 참전용사는 “비문이 삭제됐든 안 됐든, 한베평화재단이 상업적으로 이용했든 안 했든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우리와 큰 상관도 없는 나라에 가서 전쟁하면서 많은 잘못을 했다”며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간 군인들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크게 보면 그때 참전을 결정하고 젊은이를 내몰고 관리에 실패한 정부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대승적으로 잘못한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사죄를 해야 양국 간의 발전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씁쓸하게 털어놨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