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이름·인플루언서 사진 도용해 밴드 만들어…철저하게 비공개로 가입받아 사설토토 사이트로 유도
최근 박 아무개 씨가 받은 초대 메시지 내용이다. 해당 내용에는 지난해 화제가 됐던 주식으로 400억 원을 벌고 수십억 원을 기부했다고 나섰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속칭 ‘청년 버핏’ 박철상 씨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에는 ‘또 13억 기부한 400억대 자산가’라는 설명도 붙어 있었다.
박철상 씨를 내세운 밴드 화면. 전부 박 씨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는 내용이다.
10월 중순까지 이 카페는 100여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카페에 가입하면 ‘자신은 박철상이며 나눔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소개하는 사이트에 가입해 자신이 말하는 방법으로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현혹한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자 당국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사설도박 사이트였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한국야구부터 시작해서 일본 야구, 빅리구 축구뿐만 아니라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동유럽 해외축구나 작은 나라 배구 경기까지 돈을 걸 수 있었다. 또한 사다리 게임, 홀짝 등 스포츠와 관계 없는 도박도 있었다.
이들의 목적인 사설사이트 유도까지는 몇 가지 단계로 구성돼 있었다. 먼저 쉽게 속을 만한 사람을 1차로 걸러 초대장을 보내 밴드로 오게 한다. 밴드에는 온통 ‘덕분에 인생이 달라졌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내용의 글로 가득차 있다. 이를 보고 맹목적으로 밴드 주인을 믿게 된다. 특히 이번 케이스처럼 박 씨같이 알려진 사람을 내세우는 이유도 ‘믿음’을 주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이후 글을 보고 ‘정보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 요청하면 자신은 ‘나눔을 위해 이런 정보를 공유한다’며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를 보고 정보를 계속 얻길 바란다고 하면 사이트를 알려준다. 나눔을 위해 정보를 나눈다는 방장의 말처럼 베팅사이트 이름도 ‘나눔XX’였다. 무엇을 나누는지 몰라도 로고는 ‘나눔로또’를 따왔다.
사이트 가입 이후에도 이상 행동이나 의심 가는 행동을 하면 바로 차단을 한다. 기자도 직접 가입해보고 돈까지 입금했지만 초대를 누가 했는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자 ‘누가 초대했냐’며 추궁하다 결국 차단당했다. 돈보다 안전을 더 우선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 단계를 통과한 박 씨는 카카오톡 채팅방으로 초대됐다. 이 채팅방에서는 방장을 찬양하는 글이 끝없이 올라온다.
사설도박 사이트도 가입은 어떤 곳인지 알면 가입은 쉽지만 이후 지속적인 이용은 이런 일련의 행동을 거친 뒤 채팅방에서 활동하는 사람만 가능해 보였다. 최근 수사당국의 수사를 피해 사설도박 사이트가 주춤한 가운데 위험을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이들이 뽑은 ‘픽’. 예상이 적중되지 않아 예상 적중 금액은 받을 수 없었다.
카카오톡 채팅방에서는 방장이 몇 가지 경기를 뽑아서 경기 결과를 예측한다. 흔히 말하는 ‘픽’이다. 이들이 뽑은 픽은 얼마나 정확할까. 실제 이들의 픽을 받아 이후 검증해봤다. 이들은 10월 17일 오후 3시에 같은 날 6시부터 있을 일본프로야구 세이부와 소프트뱅크 경기에서 세이부 승에 거는 등 국내농구 경기까지 포함해 3게임을 예측했다. 하지만 3경기 중 첫 번째 경기에서 소프트뱅크가 이기면서 예측은 실패로 돌아갔다.
문제는 이 밴드뿐만 아니라 몇 개의 밴드가 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비공개로 초대장으로만 가입받는 데다 취재 결과 거의 유사한 내용의 다른 밴드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이 달라졌다’ 등 게시글의 내용이 비슷하고 밴드에서 유도하는 방식도 흡사했다.
해당 밴드는 박철상 씨가 아닌 아름다운 여성 사진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 사진도 ‘인스타그램’ 사용자 사진을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용자는 자주 있던 일인지 ‘도용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공지글로 올렸지만 이번에는 도박 사이트에 도용된 셈이다. 몇 개의 소스만 있다면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밴드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눔 아무개 사이트를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 신고했지만 약 1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정상적으로 접속이 가능한 상황이다.
‘일요신문’은 박철상 씨가 해당 도박 사이트의 통로인 밴드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에 연락을 취했다. 이에 박철상 씨는 “1달 전쯤 지인이 네이버 밴드 등에서 나를 사칭한다고 해 해당 포털사이트에 신고를 했고 이후 삭제됐나 찾아보니 없길래 더 이상 이런 짓을 안하는 줄 알았다. 계속될 시 경찰에도 신고접수를 할 생각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날 사칭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씨의 말을 통해서도 비공개 밴드가 이번에 밝혀진 밴드 이외에도 또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 씨는 ‘이 도박 사이트와 관련이 없다’며 “지금은 원래 계획했던 서양철학 공부를 하고 있다. 장학사업은 나이가 들어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내가 ‘오바마’라고 주장하는 건 허언증 환자로 범죄가 아니거나 명예훼손, 신용훼손 정도에 해당되겠지만 ‘내가 오바마인데 면담하려면 스위스 은행 내 계좌로 얼마 보내라’부터는 심각한 범죄다”라면서 “해당 운영자가 만약 허위로 명의를 도용하고 글을 썼다면 신용이나 명성을 허위로 올렸고 수수료까지 받은 만큼 사기죄 성립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